시철과 신념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말아라 본문

성공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말아라

신오덕 2014. 7. 1. 08:16

윤태호 "완생이 있을까요..나를 잃지 않고 살아야죠"

[노컷이 만난 사람] '미생' '인천상륙작전' 윤태호 만화가 노컷뉴스 | 입력 2014.07.01 01:45
[CBS노컷뉴스 신진아 기자]

만화 '이끼'가 영화화될 때만 해도 윤태호(45) 작가는 평단이 주목하는 작가에 가까웠다. 하지만 직장인의 필독서로 등극한 웹툰 '미생'(2012-2013)이 무려 10억 건의 누적 조회수에 단행본이 70만부가 팔리면서 대중적 작가로 거듭났다.

최근 경기도 분당에 있는 작업실에서 만난 윤 작가는 "지난 1년간 부유한 독지가부터 기업체까지 다양한 곳에서 특강 섭외가 쏟아졌고 인터뷰도 정말 많이 했다"고 달라진 환경을 인정했다.

외국에도 남극, 요르단 등 두달에 한번꼴로 나갔다. 남극은 극지연구소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후원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한달 반 가량 머물렀고, 요르단은 미생 시즌1에서 요르단 에피소드가 나오면서 요르단대사관의 초청으로 첫 방문했다.

현재 진행형인 일도 많다. 연재 중인 '인천상륙작전'의 단행본 3권이 최근 출간됐고, 7월부터 1976년 신안 앞바다에서 발견된 보물선을 소재로 한 '신안(가제)' 연재가 시작된다. 이밖에 드라마 미생이 올 하반기 케이블채널 tvN에서 방영되며 자신의 동명만화가 원작인 이병헌·조승우 주연의 영화 '내부자들'이 내달 15일부터 촬영된다.

돈도 좀 벌었다. 그는 "만화로 난생 처음 목돈을 벌었다"며 "연재해서 받은 돈은 화실운영과 생활비로 쓰면 빠듯했는데 이번에 단행본이 70만부나 팔리면서 지난 10년간 떠안고 있던 빚을 한방에 다 갚았다"고 했다.

하지만 윤 작가의 가장 큰 변화는 다른데 있었다. 한시적일 수 있으나 무려 28년간 애음하던 술을 끊고 한 달전부터 새벽 5시에 검도를 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건강 문제냐는 물음에 그는 "문제가 생길까봐 끊었다"면서 말을 아꼈다. 지나가듯 '자기혐오'라는 표현을 썼는데, 이는 유명해진 요즘 행여나 술에 잠식돼 자신을 잃을까봐 경계하는 극기(克己)가 아닐지 추측됐다.

 

■ 아버지를 '극복'하고 스토리 있는 만화가가 되다

한때 강풀 작가가 "가난한 이야기를 하면 태호 형을 따라갈 수가 없다"고 말할 정도로 윤 작가는 자수성가한 대표적인 만화가다.

군 면제를 받을 정도로 피부가 약해 외톨이로 자랐고 가난한 가정형편상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만화가가 되겠다며 무일푼에 상경해 노숙을 한 적도 있지만 허영만 작가의 문하생으로 들어가 5년 만에, 남들보다 이른 24살에 데뷔했다.

탁월한 그림 실력과 윤 작가 표현에 따르면 '탐욕스러울' 정도로 열의를 불태운 결과다. 하지만 데뷔작을 연재하면서 지옥 같은 시간을 보냈는데 그림에 비해 한참 부족한 이야기 솜씨에 좌절을 맛봤다.

드라마 '모래시계' 대본을 필사하고 이문열, 조정래 작가의 작품을 연대기 순으로 읽으면서 그는 '창작의 기본은 작가의 관점과 문제의식'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문제의식이란 나로부터 시작되는 만큼 그는 자신을 탐구했다. 이 과정에서 낮은 자존감과 열등감의 근원이 된 '아버지'를 극복했다.

윤 작가가 기억하는 아버지는 매우 엄하고 무서운 존재였고, 키 작고 왜소한 자신과 달리 건장한 몸에 싸움 꽤나 잘하던 상남자였다. 그는 무서운 아버지가 싫으면서도 아버지의 눈에 안차는 아들이라는 자격지심을 안고 살았다.

"무슨 판단을 할 때마다 아버지가 제 상투를 잡고 흔든다는 느낌이 있었죠. 20대 초반 헌책방을 뒤지던 시절, 한 정신과 의사의 '실존적 자기분석'이라는 무시무시한 제목의 책을 발견했죠." 자기분석을 하려면 아버지를 분석해야한다는 내용에 따라 그는 무려 반 년간 아버지의 입장에서 건조하게 '아버지의 일기'를 썼다.

"아버지가 19살에 큰 형을 낳았는데 아버지의 이기적인 입장에서 보니까 그게 얼마나 답답했을지 왜 우리를 폭력적으로 대했는지 이해가 됐죠. 그거 쓰면서 많이 울었어요." 이후 사주 관상 별자리까지 공부하며 자신뿐만 아니라 보통사람들의 내면을 이해했다. 그가 스토리텔링의 시작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다.

그는 데뷔 6년 만에 대표작 '야후'(1999)로 문화관광부 오늘의 우리만화상을 수상했다. 지금의 아내에게 시나리오 검사를 받아야 그림을 그리기 시작할 정도로 스토리에 만전을 기했던 바로 그 작품. 그의 나이 서른이었다.

미생 후기를 보면 요르단에서 윤 작가가 아버지의 젊은 시절 사진을 들고 인증샷을 찍는 모습이 담겨있다. 1980년대 요르단으로 돈 벌러 갔던 아버지의 사진이다.

"드라마 미생 제작진과 두 번째 요르단에 갔을 때는 가족이 동행했는데 아버지 사진을 찍은 그 장소에서 저와 애들까지 3대의 모습을 한 컷에 담았죠."

"■ 치밀하게 파고들되 중요한 것은 '주제'

윤 작가에게는 '아버지의 일기'로 상징되는 자기극복의 의지와 집요함의 흔적이 구석구석 발견됐다. 캐릭터를 구축할때는 장점보다 단점을 먼저 설정하고, 등장인물의 개인사는 세세하나 마치 이력서를 쓰듯 건조하게 쓴다.

신안 연재를 앞둔 그가 또박또박 쓴 창작노트에는 자료조사를 위해 읽은 책들의 핵심이 주제별로 정리돼 있었다. 신안의 시간적 배경인 1976년과 1977년, 실제 국내에서 일어난 사기·범죄사건은 옛날신문에서 전부 다 검색, 정리해뒀는데 지나가는 말 한마디도 사실성이 중요하기 때문이란다.

"완벽주의라기보다는 무식에 대한 공포랄까요? 내가 혹시 뭘 빠뜨렸나, 내 상상의 나래에 빠져 희희덕거리지 않나, 항상 의심하죠. 쉽게 성취하는 사람을 보면 너무 부러워요."

미생 댓글을 보면 자신을 중소기업 임원이라고 밝힌 한 직장인이 "지난 30년간 제가 회사생활하면서 만났던 사람이 이 만화에 다 나온다"고 써놓았다. 직장생활 무경험자인 작가가 어떻게 이렇게 직장인의 생리나 속내를 속속들이 아는지 감탄스럽다는 반응도 쏟아졌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미생을 위해 그는 주인공 장그래처럼 종합상사에 다니는 지인의 친구에게 하나부터 열까지 궁금한 모든 것을 취재했다. '회사에 가면 맨 처음에 뭐해요?' '왜 노트북은 서랍에 있죠?' '회사 것은 집에 안 가져가요?' '노트북은 누가 줘요?' 등 지독하게 세세하게 질문했다.

당시 취재파일에는 이런 글도 있었다. '대리-일을 가장 많이 한다' '과장-이직 고민이 많다, 회사에서는 잡으려 한다' '차장 -애매한 위치. 이직하기 힘들어진다' '부장-이직하긴 늦은 나이, 처신을 조심한다, 인맥을 많이 쌓아둔다' 등 직장인라면 누구나 공감할 내용이 담겨있다.

그는 연재하는 동안에도 취재원을 매달 2-3번씩 6-9시간을 만났고, 때로는 9시간 인터뷰해 겨우 대사 2줄을 얻기도 했다.

무엇보다 주제가 정해져야 항해를 시작하는 그다. 미생은 원래 출판사에서 바둑을 매개로 한 처세술 만화로 제안된 프로젝트였다.

3년 만에 자신만의 주제가 잡혀서 수락한 그는 "어렵게 공부해서 들어온 직장에서 왜 일하기가 힘든가, 가족과 행복하기 위해 직장에 다니는데 왜 회사를 위해 집에 잠깐 들르는가, 그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했다.

한국의 비극적 근현대사를 다룬 인천상륙작전은 선거 때마다 불거지는 이념대립을 보면서 시작점이 언제인지를 생각하다 시작한 작품이다. "분단 상황에서 시작됐는데, 알고 보면 광복 이후 세팅이 잘 안돼서, 그때 제대로 된 규칙이 없다보니 이렇게 됐고 그게 아직도 유효하다고 생각됐죠."

신안 연재가 코앞이나 그는 "아직 테마가 안 잡혔다"고 답답해했다. "신안은 70년대가 산업화시대니까 도굴꾼도 근면성실한 캐릭터로 잡았는데 그렇게 모인 5명이 무엇을 위해 그렇게 하는지가 안 잡혔죠."

그는 "어떤 시대를 다루건 결국은 지금을 말하지 않으면 무의미하다"고 했다. 윤 작가의 만화가 동시대성을 지닌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는 이유일 것이다.

이끼로 다시 주목받기 전까지 한 3년간 가장으로서 체면이 안 설 정도로 경제적으로 힘들었고, 슬럼프에 빠져 허덕이기도 했지만 만화 밖에 할 줄 몰라 다른 대안은 생각해본 적이 없단다. 그런 그에게 만화란 무엇일까? 사회와 소통하는 '나의 거울, 삶의 반영'이면서 궁극적으로는 "좀 더 나은 사람이 되는 매개"라고 했다.

"미생은 특히 여럿사람들의 도움을 많이 받은 작품으로, 제 취재원과 만나서 토론하면서 많이 배웠죠. 개인적으로 무리하게 삶을 살아온 사람으로서 과거의 후회나 마련도 많이 녹아있죠.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가 사과하고 오해를 풀 생각은 없고 인생이란 흘러가니까, 앞으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면 된다고 봐요."

그는 "시간이 지나서도 읽힐 수 있는 작품을 하면서, 한편씩 할때마다 스스로가 나아지길 바란다"고 했다. 두 아이의 아빠이기도 한 그는 "제가 잘살면 그게 좋은 교육이 아닐까요"라고도 했다.

"완생(完生)이란 있을까요? 제 인생이야 죽을 때까지 고민하겠죠. 한 살 먹을 때마다 스스로에게 정확하게 화두를 던지는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비겁한 이유로 안하는 일이 없길 바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