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갈고 다듬고 가야 하는 인생이다

신오덕 2018. 9. 7. 08:53

"음표보다 쉼표가 더 아름답다는 걸.. 리스트가 알려줬죠"

김경은 기자 입력 2018.09.07. 03:05

 

새 음반 낸 첼리스트 양성원, 엔리코 파체와 리스트·쇼팽 연주
다음 달 26일부터 듀오 공연도

"저의 30년이 어제와 오늘처럼 압축돼 있어요."


지적인 해석, 꾸준한 연주로 기억되는 첼리스트 양성원(51·연세대 교수)이 음악 지기(知己)인 이탈리아 피아니스트 엔리코 파체(51)와 6일 새 음반을 냈다.


지난 3월 경남 통영국제음악당에서 녹음한 '사랑의 찬가(Cantique d'Amour)'(데카)다.


같은 시대를 살아낸 헝가리 작곡가 리스트, 폴란드 작곡가 쇼팽의 후기 작품을 담았다. 리스트와 쇼팽은 피아노 음악으로 잘 알려진 대가들. 그러나 리스트는 드물게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잊힌 로망스' '슬픔의 곤돌라' '노넨베르트의 작은 방' 등을 썼다.


쇼팽은 서른아홉에 숨을 거두기 4년 전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를 작곡했다. 앨범 수록곡으로 다음 달 26일부터 서울·인천·수원·여수를 돌며 듀오 공연도 연다.

양성원은 “아주 어릴 때 들었던 몇몇 연주가 아직도 기억난다. 40년 전 감동이 어떻게 지금까지 날 뛰게 하는지…. 내가 이 나이까지 공연하고, 녹음하는 이유”라고 했다. /유니버설뮤직


양성원은 2015년 파체와 함께 세종문화회관에서 베토벤 소나타·변주곡 전곡(全曲)을 선보였다. 이듬해엔 명동성당에서 메시앙의 '시간의 종말을 위한 사중주'를 연주했다.


지난해엔 롯데콘서트홀에서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 전곡 연주에 도전했다. 매해 새로운 작품에 뛰어드는 만큼 음반도 부지런히 내놓았다. '쉼'을 모르는 연주자일까.

"이번에 리스트를 하면서 깨달았어요. 음악이 누군가에게 강한 감동을 주는 순간은 음표가 아닌 쉼표가 나올 때란 걸." 지난 4일 서울 정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쉼표란, 살다가 한순간 자기 삶에 깊은 의문이 생길 때 절규하듯 던지는 질문"이라며 "'피아노의 환희'라 불릴 만큼 화려한 외모와 기교를 뽐냈던 리스트가 삶의 막바지에 사랑하는 여인도, 아끼던 자식들도 떠나버리자 음악으로 무수한 질문을 던진다.


그 쉼표 같은 질문들이 내 가슴을 너무나 울려 집요하게 추적한 흔적이 이번 음반"이라고 했다.


"음반 내는 것만큼 어려운 작업도 없어요. 음반은 누구든 아무 때나 재생할 수 있으니 음표 하나하나에 대한 믿음이 확실하기 전엔 함부로 손댈 수 없죠."


그러나 연주라는 건 "어느 방향에서 보아도 아름답게 반짝이는 크리스털 글라스" 같은 것. 양성원은 "무색의 수정을 끝도 없이 깎고 갈고 다듬다 보면 어느 순간 투명한 결정이 된다.


그 크리스털이 음악가에겐 음반이고 연주이기 때문에 난 오늘도 잠에서 깨자마자 줄 네 개짜리 울림통을 껴안고 활을 든다"고 했다.


양성원은 "요즘은 다들 답만 찾으려 하는데, 때론 질문도 해야 후회도 반성도 할 수 있다"며 "리스트와 쇼팽을 통해 씨 뿌리는 농부의 마음으로 자기 삶을 돌아보는 쉼표를 얻길 바란다"고 했다.


▶양성원&엔리코 파체 듀오=11월 5일 오후 8시 서울 롯데콘서트홀, (02)599-57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