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가볍게 한 잔하는 것이 좋다

신오덕 2019. 4. 30. 09:20

먹태에 맥주 한잔.. 우리는 '가맥집'으로 간다

김수경 기자 입력 2019.04.30. 03:08 수정 2019.04.30. 08:44


[가게 맥주]
동네 수퍼에서 편하게 마시는 맥주.. 과자·분식 등 저렴한 안주로 손님 몰이
최근 드라마·영화서 자주 나오며 '뉴트로' 열풍에 전국으로 확산

"여기 부추전이 4000원인데 정말 맛있어요. 비좁고 허름하고 불편하지만 그게 또 재미죠. 영화에서나 봤던 서울의 옛 골목을 탐험하는 기분이랄까."

소셜미디어 홍보대행사에서 일하는 김하나(29)씨는 지난 주말 서울 종로 '서울식품'에 다녀온 이야기를 자랑했다. 김씨는 자칭 '가맥 마니아'. 가맥은 '가게 맥주'의 줄임말이다. 동네의 작은 수퍼마켓 앞에서 편하게 맥주 마시는 것을 일컫는다.

서울 이태원에 있는 가맥집 '우리슈퍼'는 각종 수입 맥주를 갖춰 유명해진 곳이다. 안주는 과자와 마른안주 정도밖에 없지만 언제나 앉을 자리가 모자랄 정도로 인기다. /영상미디어 김종연 기자

가맥은 본래 1980년대 전북 전주에서 시작됐다. 보통은 황태구이나 오징어구이처럼 내주기 손쉬운 조촐한 안주를 팔았다. 이 가맥이 최근 몇 년 새 전국으로 확산하는 분위기다.


 최근 '라이프 온 마스' 같은 TV 드라마나 영화에서 주인공들이 가맥을 즐기는 장면이 연달아 나오면서 젊은 세대에 뒤늦게 유행처럼 번졌기 때문. 과거로 회귀하는 '뉴트로'가 대세인 데다 계속되는 경기 침체에 소비자들이 그나마 지갑을 열기 쉬운 저렴하고 편한 곳이란 이점도 있다.


인기가 확산하다 보니 오래된 수퍼마켓이 매출을 올리기 위해 가맥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새롭게 문 연 식당이 아예 '가맥 스타일'을 표방하는 곳도 적지 않다.

조촐한 추억을 파는 가맥집

서울 익선동 '거북이 슈퍼'는 2015년 한옥을 개조해 문을 연 곳이다.


본래는 익선동 주민들이 오가며 들르는 구멍가게였다.


종량제 쓰레기봉투나 세제 같은 생필품을 주로 팔았다.


가게에 붙어 있는 평상에서 사람들이 삼삼오오 맥주를 먹기 시작하면서 지금의 형태가 됐다. 연탄불에 부채질해서 구워낸 먹태와 오징어, 쥐포가 대표 메뉴다.


간장 섞은 마요네즈에 썰어낸 청양 고추를 찍어 먹는 재미가 있다. 오후 3시쯤 문을 여는데 문을 열자마자 자리가 꽉 찬다.


성신여대 근처인 서울 동선동 '선화슈퍼' 역시 정말 수퍼마켓에서 술과 간단한 안주를 즐길 수 있는 장소. 계란말이 4000원, 떡볶이 3000원 같은 메뉴가 추억을 자극한다.

익선동 '거북이 슈퍼'에서 파는 먹태, 오징어와 맥주. /영상미디어 김종연 기자

서울 망원동의 '망원슈퍼', 서울 종로의 '노가리슈퍼', 대구 고성동의 '호랑이슈퍼', 경북 경주 '황남주택', 경남 김해 '가락상회', 전북 전주 '달팽이슈퍼' 등도 가맥 스타일을 표방하는 곳. 플라스틱 의자, 비좁고 소박한 내부, 꽃무늬 쟁반에 담긴 오징어구이나 황태구이 같은 조촐한 스타일을 보여주지만 20~30대들은 "새롭다"며 열광한다.

짧고 가볍고 즐겁게 한 잔!

가맥집에선 오래 앉아 술을 마시는 게 쉽지 않다. 짧고 가볍게 퇴근 후 한잔 즐기는 요즘 세대 감성과 맞아떨어진다.


가령 서울 용산구 우리슈퍼는 갖가지 맥주를 즐겨 찾는 이들에게 널리 소문난 곳으로, 대형 마트에서도 쉽게 볼 수 없는 별별 수입 맥주가 가득하지만 과자 외에는 별다른 안주를 판매하지 않는다. 주인 김영숙(59)씨는 "손님들 대부분이 맥주 한두 병 가볍게 마시고 간다"고 했다. 서울 천호동 유미마트도 다양한 수입 맥주를 갖춘 곳. 정육점과 수퍼를 같이 하고 있는 것도 독특하다.

허가를 받지 않고 야외에서 술을 마시는 건 불법이다.


상당수 가맥집이 처음엔 수퍼나 가게로 등록했다가 일반음식점으로 업종을 전환하는 이유다.


종로구청 보건위생과 김남회 주무관은 "오징어를 구워주거나 컵라면에 뜨거운 물 제공하는 정도의 음식은 허용하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