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상품 전행 대응 TF를 구성한다
"기업은행 믿었는데 90억이 30억됐다" 장하성 동생 펀드 논란
손해용 입력 2020.04.13. 00:03 수정 2020.04.13. 07:00
판매 땐 "손실위험 없고 안전" 설명
피해자들 정치권 개입설도 주장
또다른 펀드 손실사태 번질 우려
지난 7일 서울 중구 IBK기업은행 본점 앞. 기업은행이 판매한 펀드에 가입했다가 투자금을 날릴 위기에 처한 고객 20여명이 ‘불완전 판매 보상하라’ 등의 피켓을 목에 걸고 시위를 벌였다.
이들이 가입한 펀드는 디스커버리자산운용(이하 디스커버리)이 지난해 4월 원리금 상환을 중단한 ‘US핀테크글로벌채권’ 펀드. 이들은 “은행에서 안전한 상품이라고 설명해 투자했는데, 되려 큰 손실을 봤다”며 “제2의 라임사태나 마찬가지”라고 주장했다.
디스커버리의 주요 펀드가 ‘디폴트’(채무불이행)되면서 투자자들의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12일 금융권·금융감독원 등에 따르면 ‘US핀테크글로벌채권’ 펀드는 기업·하나은행이 각각 3612억원·240억원가량 판매했다.
하지만 일부는 이미 만기가 지났는데도 수익은커녕 원금도 돌려받지 못하고 있다. 이 펀드의 미국 현지 운용사인 DLI가 수익률, 자산의 실제가치 등을 허위로 보고한 것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적발돼 자산이 묶여버리면서다.
기업은행은 200여명의 투자자에게 695억원을 돌려주지 못했으며, 하나은행은 상환을 모두 중단했다.
아우성이 큰 곳은 국책은행인 기업은행이다. 지난달이 돼서야 ‘60~70% 또는 그 이상의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고 원금 손실 가능성을 알리면서 반발이 거세졌다.
경기도에서 40여년간 회사를 일군 A씨는 2018년 말부터 지난해 2월까지 순차적으로 90여억원을 투자했다. 오랜 기간 거래해온 기업은행 지점의 간곡한 부탁에 평생 모은 돈을 넣었지만, 지금은 3분의 2 이상을 날릴 위기에 처했다. 스트레스가 극도로 심해진 A씨는 최근 건강이 악화해 암 수술까지 받았다.
A씨의 아들은 중앙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아버지께서 원래 국채에 투자하려다가, 은행에서 ‘그보다 높은 3%의 세전 수익이 가능하고, 담보 등 확실한 안전장치가 확보돼 있다’고 말해 가입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지난해 2월 8일 DLI에서 문제가 발생했는데도, 2월 13일에 아버지께 펀드를 팔았다”면서 “그래놓고 불과 5일 뒤인 2월 18일에 펀드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알았다고 하는데, 금융을 모르는 고객을 농락한 것”이라고 항변했다.
불완전 판매 논란도 커지고 있다. 디스커버리가 제공한 ‘판매사 사내한’ 자료를 보면 이 펀드는 펀드 위험 등급이 6등급 중 1등급으로 ‘매우 높은 위험’이라고 적시돼 있다. 그런데도 이를 고객에게 알리지 않고 ‘일반 고위험-고수익 펀드가 아니며, 손실 위험이 없는 대신 연 3%의 안정적인 수익을 내는 펀드’라고 판매했다는 게 피해자들의 한결같은 목소리다. ‘펀드 계약서의 본인 확인이 없었다’ ‘대리 사인을 받았다’ 등의 주장도 나오고 있다.
피해자 모임에 따르면 피해자들은 대부분 기업은행과 오랜 기간 거래해온 60대 이상의 기업가·상공인들이다.
설비투자·공장이전·아파트 구입 자금 등을 6개월 정도 단기간 굴리기 위해 펀드에 가입했다.
불완전 판매 외에도 ▶1년 가까이 피해를 제대로 알리지 않았고 ▶공기업을 믿고 투자했음에도, 다른 민간 금융사와 달리 피해 보상 등에 소극적이며 ▶은행은 법률적으로 아무 책임이 없다는 말만 반복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이에 대해 금감원 관계자는 “고객 자산을 해외 운용사에 맡겨두고, 제대로 된 감독·관리 및 후속 조치 등이 이뤄지지 않은 점 등에 대해 살펴보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디스커버리의 장하원 대표가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낸 장하성 주중 대사의 동생이라는 점에서 논란은 더 확산하고 있다. 피해자들은 정치권 개입설까지 제기하고 있다. 디스커버리는 2017년 4월 전문사모집합투자업을 등록한 신생 운용사인데, 기업은행 등을 주요 판매처로 두면서 단기간에 빠르게 성장했다는 것이다.
금감원 “은행의 관리부실 점검 중” 윤종원 “문제 해결에 최선”
문제는 디스커버리의 ‘US핀테크부동산담보부채권’ 펀드와 ‘US부동산선순위채권’ 펀드 등 다른 펀드도 최근 환매가 연기됐다는 점이다.
신한·기업은행과 주요 증권사 등에서 판매한 이 펀드들은 약 1000억원 규모로 추산된다. 손실을 보는 투자자가 더 늘어날 수 있다는 얘기다. 해외 펀드에 투자했다가 논란이 발생, 환매 중단으로 이어졌다는 점은 라임사태와도 유사하다.
또 다른 피해자인 B씨는 “디스커버리가 은행 측에만 제공한 자료를 보면 ‘펀드에 대한 특성을 충분히 이해하고, 위험을 감수할 수 있는 사람만 투자하라’고 돼 있다”면서 “이런 펀드를 제대로 된 설명도 없이 일반 고객에게 적극적으로 판매한 배경을 이해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연 10%대의 수익을 기대하는 주식형 펀드라면 모를까, 세전 연 3%의 낮은 수익을 기대하는 펀드를 이렇게 설계하고 판매한 것 자체가 넌센스”라고 덧붙였다.
윤종원(사진) 기업은행장은 이에 대해 “전무이사를 단장으로 하는 ‘투자상품 전행 대응 TF’를 구성해 정보를 신속히 제공하고 있다”며 “법률 검토 등 다각적인 방안을 강구하고 있으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기업은행 관계자는 “내부적으로 불완전 판매에 대해 조사 중이지만, 피해자들 주장과는 다른 부분이 많다”며 “예컨대 가입자 본인 사인을 받기 힘든 경우에는 전화로 투자 위험성을 알리고 녹음을 했다”고 설명했다.
장 전 실장의 영향력 의혹에 대해서도 그는 “그의 청와대 입성(2017년 5월) 전부터 판매했다”며 “사실무근”이라고 해명했다. 하나은행은 “디스커버리에 투자금 상환을 독촉하면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