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음식의 조합은 품질과 분량에 있다

신오덕 2022. 1. 13. 13:03

BTS가 소환한 '곱빼기 예찬론'.. 1.5배 든든함의 미학

기자 입력 2022. 01. 13. 12:30 댓글 0

 

 

 

위의 큰 사진은 서울 마포 겐로쿠우동의 ‘세 곱빼기’ 메뉴. 양에 따라 보통과 곱빼기, 그리고 세 곱빼기가 있는데 모두 다 같은 가격이다.
 
아래 작은 사진 왼쪽부터 삼교리원조동치미막국수의 곱빼기, 곱빼기의 원조라 할 수 있는 짜장면, 원당국수잘하는집의 온모밀 곱빼기, 동굴칡국수의 곱빼기 국수.

■ 이우석의 푸드로지 - 곱빼기 음식들

“비빔면 2개는 많고 1개는 적어”

RM 요청에 1.2배양 출시 예정

‘양보다 질’ 논리에 소멸돼가다

오랜만에 다시 존재감 부상중

짜장면·짬뽕 등 대부분이 면류

이름은 곱빼기지만 양은 1.5배

가격은 반그릇 추가보다 더 싸

서민 주린배 채운 ‘인심의 상징’

요즘 관심을 끌고 있는 단어는 ‘곱빼기’다.

 

지난 연말 세계적 인기를 누리고 있는 방탄소년단(BTS) 멤버 RM이 곱빼기를 언급하며 갑자기 사람들 사이에 회자되기 시작했다.

 

그는 라이브 방송에 나와 “평소 (팔도)비빔면을 즐겨 먹는데 1개는 양이 적고 2개는 많다”며 “1.5배 사이즈를 좀 내주셨으면 좋겠다”고 발언해 주목받았다.

 

곱빼기 얘기다.

 

앞서 글 쓰는 셰프 박찬일이 짜장면에 관한 예찬을 묶은 신간 ‘짜장면: 곱빼기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세미콜론)도 내놓았다. 짜장면에 대한 저자의 진심 어린 예찬이 ‘곱빼기’란 단어와 마주치며 별안간 몇 곱절이 된다.

 

한 번에 두 그릇도, 사리를 추가함도 아니다.

 

처음부터 그득한 배불뚝이 곱빼기, 그 이름과 모양새가 주는 시청각적 포만감이 있다. 이것이야말로 바로 곱빼기의 매력이다.

 

언젠가부터 ‘양보다 질의 논리’에 밀려 소멸될 위기에 처했던 곱빼기가 오랜만에 다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순우리말인 곱빼기는 두 곱의 양을 한 그릇에 담아내는 것을 말한다.

 

곱(倍)에다 뭔가를 특정하는 어미 ‘배기’를 붙인 ‘곱배기’가 아닌 곱빼기가 맞는 말이다.

 

주로 면 요리에 쓰며 밥에는 곱빼기란 말을 잘 쓰지 않는다.

 

(곱빼기가 일상인 중국음식점에선 볶음밥에도 쓸 때가 있다)

 

아무튼 이런 화두가 등장한 덕인지, 경기가 어려워진 탓인지, 다시 곱빼기가 곳곳에서 회자되며 되살아나고 있는 분위기다.

 

비빔면을 생산하는 팔도 측은 BTS의 바람대로 현재보다 용량이 더 많은 팔도비빔면 컵용기 제품 개발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1.5배가 아닌 1.2배 용량의 팔도비빔면 ‘곱빼기’는 이르면 다음 달 말이나 3월 초에 출시할 예정이라고 한다.

 

라면에서 곱빼기가 등장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과거 청보식품에서 아예 ‘곱배기라면’을 출시한 바 있다.

 

1984년 등장한 청보식품은 100원짜리 라면 시대에 120원을 받는 대신 30g을 더 넣은 150g짜리 곱배기라면을 출시해 주목받았다.

 

“한 끼 식사로 충분하다”는 카피를 내세웠다. 요즘 라면은 보통 120g(신라면, 진라면 등)이다.

 

가장 작은 스낵면이 105g이다.(밥 말아 먹을 때 제일 맛있다는 이유는 혹시 양이 적어서일지도 모른다)

 

곱빼기는 푸짐하고 후한 인심의 상징이다. 먹는 양이야 사람마다 다른데 제공하는 음식량은 같다.

 

다 비우고 나서도 뭔가 모자란 이들이 생길 수 있다.

 

양을 더 내주고 약간의 값을 더해 받는 방식이 곱빼기다.

 

이름은 갑절을 뜻하는 곱(倍)빼기지만 보통은 2배가 아니라 1.5배 정도를 더 준다.

 

반대로 값은 반 그릇을 추가로 시키는 것보다 더 싸다.

 

그러니 곱빼기는 한때 서민들의 주린 배를 채워주는 훈훈한 인심의 상징이었다.

 

사리를 추가하는 요즘 방식과는 또 다르다. 면만 더 주고 짜장이나 국물은 그대로 주는 곳도 있다.

 

국숫집이나 냉면집, 국밥집 등에서도 간혹 볼 수 있지만, 곱빼기가 가장 많이 통용되던 곳은 중국음식점이다.

 

짜장면이나 우동, 짬뽕 등 면류에 많이 쓰였다.

 

2000년대 초반까지는 곱빼기 매출이 가게마다 많았다고 한다.

 

당시는 그릇도 지금보다 작은 멜라민 그릇을 썼기 때문에 ‘보통’은 아무래도 모자랐다.

 

짜장면의 경우 곱빼기에 1000원을 더 받는 집이 많다.

 

원래 가격이 비싼 집은 2000원을 더 받는 곳도 있지만 보통 가격의 5분의 1 정도를 곱빼기 값으로 낸다고 생각하면 된다.

 

가격을 받아들이면 우선 푸짐해서 좋다.

 

몹시 허기질 때 ‘보통’ 짜리는 먹다가 마는 것처럼 느껴지는 경우도 있는데 곱빼기는 그럴 일이 없다. 식당 입장에서도 좋다.

 

1명에게 2그릇을 팔면 더 낫겠지만 재료와 품, 설거지 등도 2배로 든다. 곱빼기는 추가 매출이 조금 발생하는 대신 조리 시 양만 좀 넉넉하게 잡으면 된다.

 

특짜장, 특밥, 특설렁탕 등 ‘특’이 붙는 메뉴는 곱빼기와 비슷해 보이지만 사실은 많이 다르다.

 

양이 많은 게 아니라 특별한 고명 등에 충실한 메뉴로 질을 우선시하니 오히려 상반된 개념이다.

 

또 곱빼기에 대항해 ‘보통’보다 양을 줄인 ‘반빼기’가 등장한 적도 있었다.

 

2007년 서울 강남구는 구 관내 음식점에 반빼기 메뉴를 제안했다. 음식물 쓰레기를 줄인다는 명목이었다.

 

외국에도 양이 많은 메뉴들이 있다.

 

미국 피자나 핫케이크 집의 레귤러(R), 라지(L)와 파티(P) 사이즈, 일본의 오모리(大盛) 메뉴가 그 양이나 가격이 곱빼기 시스템과 닮았다. 터키 현지 음식점에는 대부분 1과 1/2인분(Bir bucuk porsiyon) 메뉴가 따로 있다.

 

어떤 음식이든 정말 1.5배가 나온다. 다만 가격이 거의 정확하게 양과 비례한다는 것이 우리 곱빼기와의 차이점이다. 곱빼기와 비교해 별반 이득은 아니다.

 

이래저래 곱빼기는 우리에게 넉넉한 인심을 보여준다.

 

야박한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박찬일 셰프의 말마따나 듣기만 해도 언제나 가슴이 뛰는 곱빼기가 우리에게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그것에 감사할 따름이다.

 

놀고먹기연구소장

 

전국의 곱빼기 맛집들

 

◇강계봉진막국수 = 경기도 막국수로 유명한 여주 천서리에 위치한 터줏대감 집이다.

 

돼지고기 편육 꾸미를 푸짐히 얹은 메밀막국수를 물과 비빔형식으로 판다. 곱빼기를 주문하면 매끄럽고 탱글탱글한 면발을 크게 똬리 틀어 담아준다.

 

양념이나 육수까지 사리 양에 맞춰 한가득 내준다.

 

구수하고 진한 육수에 매콤한 양념을 풀면 칼칼하니 입맛을 돌게 한다.

 

면은 그때그때 직접 반죽하고 제면하니 메밀향이 좋다. 여주시 대신면 천서리길 26. 9000원(보통 8000원).

 

◇겐로쿠우동 홍대본점 = 일본 규슈(九州)식 지도리(地鳥)우동을 국내에 선보인 집이다.

 

지도리는 토종닭이란 뜻. 닭국물에 후추 등 다양한 재료를 섞어 진한 국물을 내고 여기다 수타제면한 우동을 말아준다. 이 집 음식에는 정해진 양이 없다.

 

일반 사이즈의 우동과 곱빼기, 세 곱빼기를 같은 값에 내준다. 특히 세 곱빼기는 그릇 자체가 완전히 다르다.

 

작은 대야만 한 사발에 매끈한 우동과 시원 칼칼한 육수가 들었다.

 

심지어 사리 추가도 돈을 받지 않는다. 서울 마포구 어울마당로 39. 8000원(가격 변동 없음).

 

◇경복관 = 옛날짜장과 복살깐풍기, 수제군만두 등으로 유명한 중국음식점이다.

 

인근 회사원이 많은 오피스 동네답게 점심 메뉴에 곱빼기가 있다.

 

수분이 많아 비비기 좋은 옛날짜장과 양파, 고기 등을 듬뿍 넣고 센 불에 들들 볶아낸 간짜장을 곱빼기로 주문하면 보다 푸짐하게 즐길 수 있다. 1000원을 더 내면 된다.

 

면 종류 이외에 볶음밥에도 곱빼기가 있어 양 걱정은 없는 집이다. 서울 중구 을지로3길 17. 간짜장 8000원(보통 7000원).

 

◇원당국수잘하는집 = 원래도 양이 푸짐한 집인데 곱빼기까지 있다.

 

커다란 사발에 시원한 멸치육수, 매끄러운 소면을 한가득 담아주는 잔치국수를 먹고 5000원짜리를 내면 거슬러준다.

 

곱빼기는 아예 국물 위로 불룩 튀어나왔다. 온모밀은 소면 대신 메밀을 쓸 뿐 아니라 모양새도 좀 다르다.

 

면발과 제법 어울리는 쑥갓과 유부 등 고명을 얹어 낸다.

 

국수는 모두 곱빼기가 가능하며 1000원만 더 받는다.

 

서울 마포구 동교로 22. 잔치국수 4500원, 온모밀 6000원.

 

◇동굴칡국수 = 반죽에 칡 전분을 넣어 씹을수록 쫄깃한 면발 맛이 일품인 국숫집이다.

 

고씨 동굴 앞 식당가에 위치한 이 집은 강원도 토속메뉴인 칡국수로 소문났다.

 

멸치와 해초 국물 국수에 다양한 채소를 얹고 칡 전분을 섞은 국수를 말아낸다.

 

매콤한 양념장은 시원한 육수에 포인트를 주고 아삭한 채소는 씹는 맛을 더한다.

 

주문할 때 미리 말하면 곱빼기를 추가 금액 없이 내준다.

 

영월군 김삿갓면 영월동로 1121-10. 7000원(가격 같음).

 

◇을밀대 = 마포 쪽에서 평양냉면으로 이름난 집.

 

너무 맹하지 않고 적당히 짭조름하며 구수한 소고기 육수에 점박이 메밀면을 시원하게 말아내는 집으로 이른바 ‘입문용’ 평양냉면집으로 알려졌다.

 

원래는 살얼음 낀 육수에 말아주는데 이게 싫으면 ‘거냉’을 주문하면 된다.

 

여기다 ‘양마니(양많이)’란 주문이 바로 먹힌다.

 

얼추 1.5배 분량은 족히 되는 면 사리를 따로 돈을 받지 않고 내준다. 바삭한 녹두전도 곁들이면 궁합이 참 좋다. 서울 마포구 숭문길 24. 1만3000원.

 

◇삼교리원조동치미막국수 = 강릉에서 시작해 이젠 전국적으로 유명한 막국숫집이다.

 

달달하고 구수한 맛을 내는 동치미가 인기의 주역.

 

투박한 메밀면을 뽑아내 그릇에 담고 김가루와 콩가루를 얹어 내주면 여기다 동치미 육수를 부어 말아먹으면 된다.

 

메밀 함량이 높아 툭툭 끊기는 면발을 한 움큼 입에 넣고 우물우물 씹으면 동치미의 알싸함 사이로 메밀향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양념장이 필요치 않다.

 

무와 배추김치만으로도 충분하다. 강릉시 주문진읍 신리천로 760. 8000원(보통은 7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