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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련함과 연륜으로 나아가라

신오덕 2014. 11. 5. 15:49

[매경춘추] 가을에 드는 생각
기사입력 2014.11.04 17:34:16 | 최종수정 2014.11.04 19: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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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이런저런 상념으로 마음이 뒤숭숭한 계절이다. “언젠가 무대를 내려와야 할 때가 온다면?”이라는 질문을 간혹 스스로에게 던지곤 한다. 현직 교수이지만 아직도 무대에 서서 그런지 “남자 발레리노의 정년이 언제까지인가요?”라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이 질문에 답한다는 건 모든 남자 발레리노의 입장과 나의 은퇴시기를 동시에 규정하는 것이라 꽤 신중을 기하게 된다.

“저는 제 관리를 잘해서 좀 더 오래 무대에 서고 싶습니다”라는 나름 솔직한 답변을 하고 싶다가도 자칫 괜히 나만 잘난 사람인 것처럼 인식돼 버릴까봐 신중해진다. 2000년부터 10년간 솔리스트로 활동했던 프랑스 파리국립오페라발레단의 무용수 정년은 만 42세였다. 퇴직하는 무용수 대부분이 그동안의 세월이 주는 노련함과 연륜으로 마지막 퇴직무대에서 쏟아내는 평소보다 뛰어난 기량은 동료 무용수들에게 큰 전율로 다가왔다.

퇴직한 무용수들은 장소와 장르만 다를 뿐 계속해서 무용수 생활을 해 나갔다. 또 무용과 전혀 관련 없을 것 같은 가수나 요리사, 사진가 등등 다양한 분야에 뛰어들어 어떤 편견에도 구애받지 않고 당당한 삶을 바로 연결해 나갔다. 더 놀라운 사실은 그들은 퇴직 후의 그 일을 퇴직 훨씬 전부터 서서히 준비해 왔다는 것이다.

정년, 퇴직, 퇴임 등 마지막을 암시하는 이 단어들이 던지는 명과 암이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너무 어두운 면과 단점에만 치우쳐 생각하는 게 아닌가 싶다. 끝이 아니라 새로운 삶이라 생각하고 미리 준비한다면 그것이 퇴직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언젠가는 마주해야 할 죽음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두려움만으로 다가오지는 않을 것이다.

예술가의 삶이란 되도록 오래 지속될수록 더욱 풍성한 감성과 감정을 표출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발레처럼 수명이 짧은 예술을 하는 나로서는 무대에 되도록 오래 남아 나의 예술세계를 사람들과 함께 공유하고 싶다.

하지만 40대 초반인 지금 나의 발목과 무릎, 허리는 그 좋은 소염제도 더 이상 말을 듣지 않아 마음이 서글프다.

제법 쌀쌀해진 바람에 낙엽 날리고 하늘 푸른 가을이란 계절 덕분인지 “나도 서서히 그 때를 준비해야 되는데…”라며 미리 준비하는 자세를 다듬게 된다.

[김용걸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