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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유가를 조사하라

신오덕 2014. 12. 16. 08:58

요즘 기름값 왜 이렇게 싸지?

시사INLive | 오세신 | 입력 2014.12.16 08:37

 

기름값이 계속해서 추락하고 있다. 12월2일 두바이 원유 가격은 배럴당 66.49달러로 2009년 9월 이후 5년2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올해 국제 유가는 하반기부터 줄기차게 하락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가장 빠른 급락세를 기록 중이다.

이러한 유가 하락의 이유는 석유의 공급과 수요 모두에서 찾을 수 있다. 가장 먼저 불씨를 댕긴 것은 7월 들어 회복된 리비아의 원유 생산과 미국의 개입으로 진정된 이라크 사태다. 2012년부터 북미 지역의 원유 생산이 급증했는데도 고유가가 지속된 것은 아랍의 봄 이후 중동과 북아프리카 산유국들의 정세 불안 및 이로 인한 공급 차질 때문이었다. 이 부분이 크게 완화되면서 유가 하락을 촉발시켰다.

세계경제 상황이 올해 들어 더욱 안 좋아지면서 석유 수요 증가세가 대폭 둔화된 것도 유가 하락세를 가속화했다. 올해 세계 석유 수요 증가량은 지난해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며 올해의 공급 증가량에 견주어도 절반에 못 미치고 있다. 이 때문에 올해 석유 시장에서는 공급이 수요보다 많은 과잉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 2008년 금융위기로 국제 유가가 폭락했을 당시에도 문제는 석유 수요의 붕괴였다.

여기에 주요국 통화 대비 10% 이상 급등한 미국 달러화의 강세도 한몫을 했다. 국제 원유는 달러화로 거래되기 때문에 달러화 강세는 원유 가치 상승으로 이어져 유가 하락 요인이 된다.

↑ ⓒAFP : 11월27일 석유수출국기구 총회는 감산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기존 원유 생산량을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물론 최근의 유가 하락을 두고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가 러시아와 이란을 조이기 위해 공모한 결과라는 음모론도 있다. 결과적으로 러시아와 이란이 경제위기에 봉착하기는 했다. 하지만 과연 미국의 셰일오일 생산이 고유가와 기술 개발 때문이 아니라 이러한 음모의 산물일까? 또한 사우디의 산유량이 재정지출 상황이나 자체 생산능력을 고려할 때 음모론을 제기할 만큼 무리한 수준일까? 미국과 사우디가 정치적 동기로 과연 세계경제를 망가뜨렸거나 앞으로 망가뜨릴 수 있을까? 여기에 대한 합리적인 대답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음모론은 그냥 술자리에서 나누는 흥밋거리에 그칠 뿐이다.

지난 11월27일에 열린 석유수출국기구(OPEC) 총회에서 사우디아라비아 주도로 산유량을 유지하기로 결정한 것에 대해서도 사우디가 미국의 셰일오일을 견제하기 위함이라는 뉴스 분석이 주를 이루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전 세계 비전통 원유와 신재생 에너지에 대한 견제'라 할 수 있다.

무리한 감산을 통해 유가를 높여봤자 자국의 시장점유율은 크게 줄고 정작 이익은 비(非)OPEC 산유국들이 가져갈 것이라고, 사우디는 판단했을 것이다. 이미 1970년대 두 차례의 석유파동과 2008년 금융위기를 통해 경제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고유

↑ ⓒ연합뉴스 : 국제 유가 급락으로 휘발유가 ℓ당 1500원대까지 판매된다.

가는 세계 경제위기와 석유 수요 감소를 초래한다고 배운 것도 작용했을 것이다. 사우디는 수차례에 걸쳐 시장에 순응해야 한다는 의사를 표명해왔다.

OPEC의 이번 결정으로 사우디는 이란의 핵 개발 견제라는 덤을 내심 기대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핵 개발 문제로 이란이 서방으로부터 원유 수출 규제 등 경제제재를 받으면서 심각한 경제난을 겪고 있기 때문에 최근의 유가 급락은 더욱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그동안 사우디 등 수니파 이슬람 나라들은 시아파 국가인 이란의 핵 개발에 반대해왔기 때문에, OPEC의 산유량 유지가 유가 하락으로 이어져 서방이 이란과의 협상에서 핵 개발을 최대한 포기하게끔 만들 것이라는 기대를 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이 산유량 유지의 핵심 이유가 아니라는 것은, 여유 생산능력을 충분히 보유한 사우디가 산유량을 늘려서 이란을 더욱 궁지로 몰아넣을 수 있지만 그러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알 수 있다.

국제 유가 하락이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

향후 국제 유가는 여전히 세계경제의 불황 우려와 미국 달러화 강세로 추가 하락 압력에 시달릴 것으로 보인다. 이로 인해 한국에 미칠 경제적 영향에 대해서도 시선이 쏠리고 있다. 기본적으로 원유를 100% 수입에 의존하는 한국으로서 원유 가격 하락은 매우 좋은 일이다. 다만 유가가 하락하는 기간에 국내 정유사들은 비싼 값에 수입한 원유를 석유 제품으로 만들어 싼값에 판매해야 하므로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유가 하락으로 원유 수출에 대한 경제의존도가 높은 중동·중남미·러시아 등이 경제위기에 처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한국의 수출 악화에 대한 염려도 존재한다.

여기에 원자재와 곡물 시장에서도 수요 둔화에 따른 동시다발적인 가격 하락세가 나타나 전 세계 디플레이션 우려도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가격 하락세 지속으로 자원 수출국들의 경제 타격도 문제지만 그동안 이러한 자산들을 바탕으로 형성되어온 금융 시장의 불안도 커지고 있기 때문에 단기적으로 국내 경제에 부정적일 가능성도 상당하다.

하지만 이는 그동안 과잉 투자와 자산 버블에 따른 부작용이 조정되는 과정으로도 볼 수 있어서 중장기적으로는 세계경제에 오히려 유리하다. 비록 이들 국가에서의 수요는 악화되더라도 다른 지역에서 더 많은 수요를 창출하게 되기 때문에 결국 한국의 수출 환경도 개선될 소지가 많다.

만일 인위적인 석유 공급 개입으로 유가를 상승시킨다면 오히려 부작용이 심해질 것이다. 따라서 최근 유가 하락이 세계경제 악화로 인한 수요 부족이 원인인 만큼, 사우디가 주장하듯 당분간은 시장에 맡길 필요가 있다.

다만 지금의 유가 수준이 계속 유지된다면, 이미 북미 지역의 오일샌드와 셰일오일에 대한 투자 손실이 본격화되고 있어 비OPEC 석유 공급 둔화가 가시화되고 유가 하락에도 제동이 걸릴 시점이 점점 가까워지는 것은 주지할 필요가 있다.

한편 내년 7월1일로 연장된 이란과 서방 간 이란 핵 협상 결과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라늄 농축 수준과 제재 해제 시점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안이 합의된 만큼, 만약 둘 간의 협상이 타결된다면 이란의 원유 공급 물량이 쏟아지면서 유가가 심한 하락 압력을 받을 것이다. 반대로 협상이 결렬되어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는다면 또다시 유가 100달러 시대로 회귀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