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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박 3일간의 노고를 생각하라

신오덕 2015. 8. 27. 09:46
[기고] 남북합의문에 숨은 뜻 읽는 법
기사입력 2015.08.26 17:15:34 | 최종수정 2015.08.27 09: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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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최후통첩으로 전쟁 일보 직전까지 갔던 정세가 남북이 극적인 합의에 도달함으로써 해소됐다. 지난 25일 새벽 2시 우리 측 대표인 김관진 국가안보실장이 청와대로 돌아와 공동보도문을 발표했고 보충 발언을 통해 합의 내용을 보다 소상하게 설명했다. 합의문에는 무박 3일간 힘들고 치열했던 협상 과정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공동보도문과 김관진 실장의 보충 설명에 따르면 이번 사태를 야기했던 북한은 목함지뢰 도발과 우리 측 확성기 대북 방송 재개에 반발해 자행했던 포격 도발에 대해 시인하고 사과했으며 재발 방지까지 약속했다고 한다. 반면 북측 대표인 황병서 북한군 총정치국장은 평양으로 귀환해 그들의 매체를 통해 공동보도문에 대한 배경을 설명했는데 우리 측 설명과는 정반대 내용이어서 몹시 당혹스럽다.

사태의 발단이 됐고 합의의 핵심 변수인 북한 도발에 대해 일언반구 언급이 없다. 오히려 우리 측이 자신들을 일방적으로 매도하고 밀어붙여 사태가 극도로 위험해졌으며 자신들의 인내와 아량으로 전쟁 위기를 겨우 벗어날 수 있었다는 주장이다. 적반하장으로 이번에 남측은 큰 교훈을 얻었을 것이라고 훈수를 두기도 했다. 물론 이 같은 배경 설명 역시 공동보도문에는 나타나 있지 않고 보도문 전체를 통해서도 이 같은 분위기는 느껴지지 않는다.

 


무박 3일간 얼굴을 맞대고, 때로는 고성을 지르면서 회담을 이어갔던 대표들이다. 분단 70년 세월 동안 언어와 관습이 달라졌지만 1949년 동갑내기 동향 출신 대표들이 우리말로 된 공동보도문까지 발표했으나 부연 설명이 매우 혼란스럽다. 양측의 의도적인 배신 도발인가 아니면 예견된 이중성인가에 따라, 그리고 이에 대한 해석에 따라 향후 남북 관계가 결정될 것이다.

우리 측 보충 설명을 통해 공동보도문을 다시 보면 제2항의 주어로 `북측`이란 용어는 북측이 유감을 표시한다로 압축할 수 있는데 굳이 북측이란 주어를 사용한 속사정이 바로 사과의 완곡한 표현인 유감의 주체로 볼 수 있다. 북측은 왜 남측 군인이 부상당했는데 유감을 표시했겠는가에 대해 그러한 원인 제공자로서 유감을 의미한다고 해석해도 무방하기 때문이다. 우리말의 함축성과 은유성을 절묘하게 활용한 언어구사로 볼 수 있고, 동시에 그렇게 보는 것이 무박 3일간 회담장의 진실을 반영했다고 할 수 있다.

제3항에서 비정상의 상태가 발생하지 않는 한 확성기 방송을 중단한다는 조건부 단서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물론 비정상에 관한 정의는 자의적일 수 있으나 북한의 도발 행위는 비정상 상태임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에 북한의 도발이 재연될 경우 언제라도 확성기를 통한 대북 방송을 재개해도 우리로서는 남북 간의 합의를 위반하지 않는 정당성을 확보한다는 단서 조항이 된다. 도발이 재연됐을 때 확성기를 통한 대북 방송을 재개해도 그 책임은 북측에 있는 것이고, 그 후 결과는 역시 북측이 책임을 질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반면 평양에서 황 국장의 보충 설명인 일방에 의한 일방적 주장으로 일방적으로 위기를 초래했다는 주장은 공동보도문에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없다. 일방의 주장으로 위기를 초래했는데 왜 북측이 유감을 표시하고, 준전시 상태를 해제하며 남측이 원하는 이산가족 상봉과 정례화를 약속했는지 연결되지 않는다. 황 국장의 발언은 북측이 회담장에서 수도 없이 반복했을 주장으로, 남측을 일방적으로 매도하던 그들이 공동보도문을 내부적으로 설득할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이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이번 공동보도문을 둘러싼 국내 논란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합의 내용과 전후 맥락을 이해했다면 이를 어떻게 이행하고 활용함으로써 한반도 평화와 안정 기반 위에 남북 관계를 발전시켜 통일의 대업을 완수할 수 있을 것인가에 집중해야 할 때다. 아무리 만족스러운 합의문도 이를 지킬 의지와 역량, 필요성이 없으면 언제라도 휴지 조각이 돼버렸던 게 남북 간 합의문의 역사라면 8·25 공동보도문의 진가는 표현 뒤에 숨은 진실을 읽는 독해법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유호열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