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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눈다

신오덕 2016. 8. 18. 08:55

[세상읽기] 거인골목

 

 

빈에서 열린 학회를 마치고 지난겨울에 머물렀던 인스부르크에 다시 잠깐 와있다.

 

`파우스트` 새 번역의 마지막 윤문을 하고 있는데 남은 질문들을 함께 의논해서 해결해줄 학자가 이곳에 있기 때문이고, 또 지난겨울에 머물렀던 `거인골목`이라는 이름의 작은 골목에 꼭 한 번 다시 오고 싶었기 때문이다.

 

지금 다시 그 작은 골목에 머물며, 십 분이면 닿는 학교에 갈 틈조차 없어 숙소에 마냥 들어앉아 일을 하고 있다.

 

(요즘 나의 자기소개는 `거인골목 안의 행복한 난쟁이`다.) 일을 참 많이 한다. 창문만 열면 작은 골목을 오가는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며 나누는 말마디, 온갖 나라 말의 토막들이, 죄다 방안으로 쏟아져 들어오는데도 전혀 방해가 되지 않는다. 이상하다. 왜 그럴까 생각해 본다.

이 작은 골목이 참으로 정다워서이다.

 

골목을 걷다가 쳐다보면 2, 3층 창턱에서, 마주 보며 사는 사람들이, 마치 손짓에 서로의 손이 닿을 듯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인스부르크 구시가 한복판, 정말로 황금으로 만든 작은 지붕이 있어 `황금지붕`이라 불리는 명물 건물 바로 앞에서 꺾어든 작은 골목인데 성탄절 무렵에는 `거인골목`이라는 이름에 맞추어 거대한 거인 인형들을 골목 여기저기에 세워두기도 한다.

 

착한 일을 안 했다가 혼이 났다는 티롤의 전설의 거인들이란다.) 험준하고도 아름다운 티롤 알프스의 명산들 한가운데 외줄기로 파인 계곡을 흘러가는 강을 따라 고운 집들이 오밀조밀 늘어선 곳이라 자연과 풍광 자체가 아름답다.

 

그런데 아마도 더 고운 것은, 그 고운 풍광에 순응하며 그것을 지켜가는 사람들이 이루어놓은 것이고, 그걸 찾아오는 사람들로 도심은 걷기도 어려울 만큼 북적인다.

이 `거인골목`으로 들어설 때, 혹은 창문을 열고 그 작은 골목 안을 내려다볼 때, 늘 먼저 보이는 것은 간판들이다.

 

내 숙소와 대문을 마주한 집은 식당 겸 카페로 이름이 `땡땡`인데, 종루가 솟은 교회 모습을 조그맣게 주물로 뜬 아주 작은 간판으로 걸려 있다. 20×30㎝ 정도 크기이다. 카페 이름이 교회 종소리인 것이다.

 

그 옆은 새벽이면 빵 굽는 고소한 냄새로 골목을 채우는 아주 작은 빵집인데, 8자 모양의 빵 브레첼 한 개가 실물 정도의 크기와 색깔로 내걸려 있다.

 

그게 간판이다. 그 브레첼 모양 아래 `빵집`이라는 글씨, 1795라는 숫자가 적힌 아주 조그만 띠가 하나 덧달려 있다.

 

그러니까 이 집은 1795년부터, 즉 프랑스혁명(1789년) 직후부터 신새벽의 노동으로 한 가문이 대대로 살아오고 있고, 매일 아침 7시면 어김없이 문을 여는 그 집의 빵을 먹으며 골목 안 사람들이 살아온 것이다.

그 빵집 옆집에는 조그만 동그란 시계가, 오가는 골목 사람들에게 시간을 알려주며 유일한 간판으로 내걸려 있고, 그 옆에는 안경이 하나 걸려 있고 또 어딘가에는 가위나 빗 하나가 걸려 있기도 하고 또 어느 골목인가에는 느닷없이 뽑힌 이(齒) 모양 하나가 내걸려 있기도 하다.

 

시계가게, 안경가게, 옷가게, 미장원, 치과 등등이 이마며 등을 맞대고들 있는 것이다. 이렇다 할 상징이 없는 가게는 아주 자그맣게 이름이 벽에 쓰여 있고, 수백 년 역사와 유명세를 자랑하는 다음 골목의 `자허` 카페도, 맞은편의 유명한 `괴테 방`이라는 식당도 1590년부터 있는 유서 깊은 `백마` 호텔도, 이곳에 본거지를 둔 세계적인 보석상 스와로브스키 본매장도 한결같이 그런 작디작은 상징 간판 아니면 이름 한 단어만 박아서 높은 격조에다 품위를 더하고 있다.

서울에서 멀지 않은 작은 도시에서 살고 있는데, 늘 안타까운 것은 제멋대로 도시를 뒤덮은 원색 초대형 간판들이다.

 

다투듯 크게만 해단 원색 간판들로 뒤덮인, 서울 변두리보다 더 황량한 풍경을 만들어내는 게 지방 소도시들의 현실이다.

 

내가 사는 곳은 `명품도시, 세종 인문도시`를 표방하는 곳인데도 그렇다.

 

나만이 튀어 보이는 게 아니라 전체도 함께 생각하고, 도시의 품격도 올리는 작은 결단이 시급해 보인다.

 

그 현란한 간판을 문제 삼는 것은, 그저 미관의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간판들이 남과 전체에 대한 일체의 고려가 없이 자기만 내세우는 삶의 자세와도 관계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오로지 자기만 내세우다가 결국 모두가 시달리고 있잖은가. 가시적인 작은 것부터 고쳐가며 사회적 안정을 회복해보는 방법은 없을까.

[전영애 서울대 독어독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