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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음식을 먹고 즐긴다

신오덕 2019. 9. 5. 09:08

"국 잘 끓였네" 아버지에게 칭찬 받은 밥상 사실은..

푸르미 입력 2019.09.04. 18:38 수정 2019.09.04. 23:33


[더,오래] 푸르미의 얹혀살기 신기술(2)


어머니가 오랜 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난 뒤 아버지와 동거를 시작했다.


팔순을 넘어서며 체력과 인지능력이 급격히 저하되는 아버지를 보며 ‘이 평화로운 동거가 언젠가 깨지겠지’ 하는 불안을 느낀다.


그 마음을 감춘 채 “아버지를 모시는 것이 아니라 제가 아버지에게 얹혀살고 있다”고 말하는 40대 비혼여성의 속 깊은 동거일기. <편집자>


나는 먹는 것에 연연하지 않는다. 혼자 집에 있으면 냉장고 열 일이 없다.


알약 몇 알로 끼니를 해결하는 것도 괜찮다 싶다. 16시간 간헐적 단식을 실천하고 육류는 내 돈 주고는 안 먹는다는 원칙도 갖고 있다. 그런 내가 삼식이와 산다.


나와 동거 중인 삼식이는 애인도 남편도 아닌 바로 아버지. 10년 전 어머니가 먼저 떠나셨고, 그때까지 독립 못 한 내가 자연스레 아버지와 남았다.


케이크 굽는 게 취미인 큰 언니도, 한식 조리 자격증이 있는 둘째 언니도 아니었다. 집에선 목욕과 취침을 주로 해오던 내가 매일 아침밥을 차린다.

요즘은 인터넷을 통해 어떤 요리든 주문해 먹을 수 있다. 이를 이용하면 직접 요리한 듯한 밥상을 만들어낼 수 있다. 사진은 전남 강진의 한 한정식 집. [중앙포토]

다행히 시대를 잘 타고 났다. 인터넷을 통해 무엇이든 주문할 수 있고, 이름난 쉐프의 고급 요리도 저렴한 가격에 조달 가능한 세상. 약간의 양념과 재료를 가미하면 마치 직접 요리한 듯 밥상을 차려낼 수 있다.
        

반찬은 강남 주부님들이 명절 때 전을 사기 위해 줄을 선다는 E 상가에서 조달한다.


오후 5시 이후 H 백화점 식품관에 가면 한 팩에 6000~7000원 하던 국이며 반찬을 3개, 7시가 넘으면 무려 5개에 만 원에 살 수 있다는 꿀 정보도 활용한다. 덕분에 10년을 버틸 수 있었다.


처음엔 아버지가 “국 참 잘 끓였다” 하시면 시선을 피했다. “달래 향 아주 좋은데?” 하시면 딸꾹질이 났다. 이것도 잠깐, 요즘은 “둘이 먹으려고 시장 보느니 사 먹는 게 더 싸” 하며 알뜰한 척도 하고, 반조리 식품에 양념과 재료를 더해 내놓고는 “내가 하면 또 제대로 한다니까” 으쓱대기도 한다.


이제는 반찬이 좀 새롭다 싶으면 아버지가 먼저 말씀하신다. “오늘 반찬 많이 사 왔구나.”


한창 직장 일 바쁠 땐 일주일 치 국과 반찬을 인터넷으로 한 번에 주문해 냉동했다가 아침에 데워 놓고 출근했다. 아침에 겨우 한두 수저 같이 뜨고 일어선 뒤 늦은 밤 귀가하니, 아버지는 하루 세끼 같은 반찬에 같은 국을 드셔야 했다. 지방사는 언니들이 김치 담그고 시장 봐서 들리는 날이 명절이고 잔칫날이었다.


하늘의 도우심은 참으로 오묘했다. 때마침 불어준 미니멀 라이프 열풍이 요리에 대한 부담을 확 줄였다. 당 수치 조절을 위해 ‘맛있는(?)’ 음식은 되도록 자제해야 하는 아버지의 상황도 한몫했다.


냉파(냉장고 파먹기)가 유행하는 등 간소한 냉장고가 미덕인 시대의 도래는 나일론 주부인 나를 세련되고 지혜로운 주부로 절로 업그레이드시켰다. 포기할 것은 포기하고 지킬 것만 최소한 지키며 버텨낼 최적의 환경이 조성된 것.


요즘 아버지 식사와 관련해 지키는 원칙은 크게 세 가지.


1. 아침은 두유에 생식, 그리고 약간의 과일 또는 채소로


2. 점심은 국을 데워 혼자 드실 수 있게 준비하고, 저녁은 퇴근 후 함께 먹는다.


3. 정기적으로 먹는 약과 견과류는 직접 챙겨 드시도록 잘 보이는 곳에 챙겨 둔다.

40대에 접어들며 약속도 회식도 줄었다. 필요한 약속은 되도록 낮에 잡으며 아버지와 저녁을 함께 하기로 정했다. [사진 푸르미]

30대엔 아버지와 저녁을 함께하는 것이 주말에 한 번 정도였지만, 40대에 접어들며 자연스럽게 약속도 줄고 회식도 줄었다.

꼭 필요한 약속은 되도록 낮에 한다.

저녁을 함께하기로 정한 건 아버지에게 필요한 것은 ‘맛있는 반찬’보다 ‘마주 앉아 밥 먹을 동무’라는 걸 깨닫고 난 후다.


퇴근 후 집에 와 냉장고를 열면 아버지의 하루가 보였다.


아무리 다양한 음식을 준비해 놓아도 별로 줄지 않았다. 입맛에 안 맞는가 하고 반찬가게를 바꿔보기도 하고 한 번 드실 양만 따로 떠 놓아 보기도 했다.


결과는 변함없었다. 혼자 드실 땐 국만 데워 밥을 말아 후루룩 드시거나, 밥에 물을 부은 뒤 반찬 한두 개 꺼내 놓고 드시는 탓이다.


이것저것 바꿔가며 고루 챙겨 드시라 했더니 “냉장고 냉기에 등골이 시려 냉장고 문도 열기 싫다” 하셨다.


등골이 시리다기보다 홀로 밥 먹어야 하는 마음이 시린 것이리라. 아니나 다를까 같은 반찬인데도 나와 함께 드신 날엔 밥 한 그릇 싹 다 비우시는 게 아닌가. 그 후 불가피한 일이 아니고는 저녁 약속을 자제키로 했다.


다행히 입맛이 까다롭진 않으시다. 막둥이가 전문가의 손길을 빌려 급조한 밥상을 “자, 맛있는 것을 오늘 또 먹어볼까요?” 하며 늘 반갑게 맞이하신다. 국 먼저 한술 뜬 뒤엔 “잘 끓였네” 하시고, 한 그릇 깨끗하게 비운 뒤엔 “잘 먹었다. 이제 네 일만 남았구나” 하며 설거지를 맡기는 미안함까지 점잖게 챙기신다.


아버지 말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 나는 ‘그래도 내가 요리에 소질은 있나 보다’ 내심 뿌듯해하곤 했는데 회를 거듭하면서 아버지의 심사평에 나름의 등급이 있음을 발견했다. (“”는 아버지 말씀, ‘’는 내가 해독해 낸 아버지 속마음)

아버지의 속마음

아버지의 별점이 궁금한 나는 오늘도 식사 마치시기를 기다려 여쭌다.
“고객님, 오늘 만찬은 어떠셨나요?”
“맛있지, 너랑 같이 먹는데!”
아버지의 외로움이 나일론 주부를 장금이로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