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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키스탄 브로드피크를 트레킹하고 생각한다

신오덕 2022. 9. 13. 14:25

[추념 트레킹] 김홍빈의 마지막 여정을 따라가다

문종국 선앤문등산학교장 입력 2022.09.13. 09:35
 
 
 
김홍빈 대장 1주기 브로드피크BC 추념 트레킹

당시 포터들의 행적 의문 풀려
브로드피크가 정면에 보이는 콩코르디아

장애인 세계 최초의 대기록

'2021년 7월 18일 오후 4시 58분, 김홍빈 대장과 4명의 파키스탄 고소포터가 브로드피크(8,047m) 정상을 등정하며 장애인 세계 최초 8,000m 14좌 완등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하산 중 조난, 다음날인 7월 19일 오전 11시경 구조작업 중 중국 쪽 절벽으로 추락해 영원히 우리 곁을 떠나고 말았다.'

 

김홍빈 대장이 열 손가락 절단이라는 장애를 입고도 계속 산악등반을 고집했던 것은 자신의 행위가 곧 공동체의 희망이 되었기 때문이다. 김홍빈 대장의 이러한 대기록은 국가적 자랑이라 할 만한 큰 업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터넷에는 편견에서 비롯된 부정적 댓글들이 적지 않다.

 

진단컨대 첫째는 장애인에 대한 인식 부족이고, 둘째는 8,000미터 봉 등정이 별거 아닌 것처럼 히말라야 등반을 낮춰 보는 데에 있다고 본다.

 

언젠가 김홍빈 대장에 대한 오해가 풀려 모두 인정하는 날이 오게 되면 그때는 더 큰 희망의 불꽃으로 활활 타오를 것이라 믿는다.

드넓은 초지의 데오사이 고원.

김홍빈 대장의 보고서 기록자로서 작년 브로드피크 원정에 대한 현지 정보 수집과 명확하지 않은 당시 조난상황을 확인하고자 브로드피크 베이스캠프를 다녀왔다.

 

이번 방문은 출국 날짜를 채 한 달도 남기지 않은 상황에서 결정됐다. 이 소식을 들은 몇몇 사람들이 같이 가자는 의사를 전해 왔지만 일정을 맞추기에는 너무 늦은 뒤였다. 처음부터 1주기 추모방문단을 모집해 준비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카라코룸 발토로 지역은 트레킹 허가가 필요하다. 그러나 길면 한 달 이상까지 걸리는 트레킹 허가를 기다릴 시간적 여유가 없어 파키스탄 e-비자만 받은 후 현지 대행사에 의뢰해 놓고 7월 6일 이슬라마바드행 비행기에 먼저 올랐다. 그런데 이드Eid-ul-Azhar 축제 기간이 겹쳐 7월 8일 저녁부터 7월 12일 저녁까지 관공서 휴무로 인해 트레킹 퍼밋 발급이 지연됐다. 설상가상으로 아스콜리까지 가는 도로 여러 곳이 산사태로 붕괴되어 카라반 출발이 지연됐다. 그래서 7월 8일에 도착한 스카루드에서만 1주일을 기다려야 했다. 발토로 트레킹 이후 개인적으로 준비한 모든 일정이 틀어지는 순간이었다.

 

데오사이Deosai 고원 트레킹

 

20여 년 만에 힘들게 만든 귀중한 시간을 막연히 기다리느라 헛되이 보내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지프를 빌려 스카루드에서 아스토르계곡으로 넘어가 타리싱에서 1박 후 다음날 낭가파르바트 루팔벽 BC를 다녀오고, 돌아오는 길은 데오사이고원의 중간에서 내려 스카루드까지 걸어오는 계획을 세웠다.

 

가이드 아딜Adil은 "데오사이 트레킹은 안 된다"고 극구 말린다. 사실 현지인들은 조금 힘들다 싶으면 불가능이라고 얘기하는 습관이 있다. 파키스탄에서 트레킹하려면 이 습관을 고려해 다른 정보와 종합, 판단해야 한다.

K2 베이스캠프촌

7월 10일 아침 일찍 데오사이국립공원을 향해 출발, 8시간 걸려 오후 4시경 타리싱의 루팔 호텔에 도착했다. 다음날 오전은 낭가파르바트 루팔벽의 헤를리히코퍼 B.C를 지나 2005년 한국 루팔벽 원정대(대장 이성원)의 B.C 근처까지 다녀왔다. 그리고 바로 지프를 타고 출발해 오후 5시, 구글지도 상의 데오사이 톱Deosai top에서 혼자 내려 캠핑을 한다.

7월 12일, 간밤에 내린 비에 젖은 텐트를 말리느라 아침 8시 출발, 부기와이 룽마Bugiwai lungma를 따라 오르다 부르지 라Burji La로 들어가는 입구의 언덕(4,200m)에서 1박을 했다.

 

고원이 완만하니 물이 넓게 퍼져 흐른다. 자연스레 늪지대가 형성되고 곳곳에 야생화가 피어 있다. 제주도 오름 같기도 하고 대관령 목장 같기도 한 그림 같은 풍경들이 펼쳐져 있다.

7월 13일 오전, 눈보라 치는 다리 라Dari La(4,480m)를 넘어 다리 룽마Dari lungma를 따라 내려가다 시가르탕 룽마Shigarthang lungma의 합류점에서 허벅지까지 빠지는 강물을 건너면서 옷이 젖어 버렸다. 설상가상 비까지 내려 온몸이 젖은 상태로 계속 하산했다.

 

양치기 산장 여러 개를 지나 저녁 7시경 불초Boolcho마을에 도착했다. 이곳부터는 차가 다닐 수 있을 정도로 길이 넓다. 하산을 계속해 밤 9시 사타크춘 시가르탕Satakchun Shigarthang마을에 도착했다. 약 40km 거리를 아침 6시부터 15시간 동안 젖은 상태에서 걸었더니 몸은 지칠 대로 지쳐 버렸다.

 

허락을 받고 마당에 텐트를 치기 위해 불 켜진 아무 집이나 문을 두드렸다. 그런데 의외로 집주인은 낯선 객을 집 안으로 들여 넓은 방으로 안내해 이부자리를 깔아주고 따뜻한 차와 늦은 저녁 식사까지 대접해 준다. 지치고 힘들었을 때 집주인 이사칸Essa Khan의 환대로 편안한 밤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인연도 김홍빈 대장의 보살핌 덕분이라 생각하고 할 수 있는 한 가장 정중하면서도 정성껏 브로드피크 BC에서 1주기 의식을 치르리라 다짐했다.

K2 길키 메모리얼에서 후세인과 필자.

다음날 아침 7시, 아이의 주머니에 3,000루피를 넣어주고 배낭을 꾸려 출발했다. 시가르탕 룽마를 따라 10여 km 하산을 계속하니 11시경 속 계곡Soq valley의 카츄라Kachura마을이 보인다. 속 계곡은 샹그릴라 호텔로 유명한 카츄라계곡과 이어지는데 푸른 목초지와 작은 호수가 어우러진 아름다운 계곡이다. 이렇게 2박 3일의 데오사이 고원 트레킹을 마치고 7월 14일 스카루드로 무사히 귀환했다.

발토로 빙하

7월 15일 오전, 스카루드 호텔에서 느긋하게 짐을 정리하고 있는데 대행사에서 갑자기 1시간 후 출발한다는 연락이 왔다. 원래 내일로 예정되어 있었는데 마침 오늘 아스콜리로 출발하는 사람이 있어 같이 가야 한다는 것이다. 급하게 짐을 챙겨 12시경 지프에 몸을 싣는다. 오후 3시쯤 늦은 점심을 먹은 식당에서 그 마을에 살고 있는 현지 지적장애인을 만났다. 김홍빈 대장은 선진국인 대한민국에서조차 장애인에 대한 사회의 편견과 싸워야 했는데 이런 오지에서 장애인으로 살아가려면 얼마나 힘이 들까? 그의 해맑은 미소가 한동안 잊히지 않는다.

도로 사정이 좋지 않아 2번이나 지프를 바꿔 타며 밤 8시경 아스콜리에 도착했다. 젊었을 때는 언제든지 이곳에 또 올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2000년 K2 등반 이후 22년 만에야 다시 오게 되었다. 너무 많이 변한 아스콜리 마을의 변화상을 보며 앞으로 또 올 기회는 없을 것이란 예감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모든 풍경이 각별해진다.

K2 길키 메모리얼에서 추모제를 지내는 필자와 후세인.

7월 16일 빠유, 7월 17일 우르두카스에서 숙박을 했다. 두 곳 모두 더 이상 자리가 없을 정도로 키친텐트, 다이닝텐트, 개인 천막 등이 꽉꽉 들어차 번잡스럽기 그지없다. 화장실이나 취사 환경이 위생적이지 못하다. 텐트 사이트에서는 말똥 냄새가 진동을 한다. 차라리 각 포인트에 산장을 세우고 헬기로 식량을 날라 기준인원만 받도록 제한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7월 18일, 이게 웬일? 가셔브룸4가 한눈에 보이는 우르두카스와 고로1 중간지점에서 와이파이 신호가 잡힌다. 고로1 지나서부터는 에스콤SCOM 통신 시그널이 뜨니 사람들이 전화 통화한다고 난리다. 오늘은 이탈리아 가족 팀의 트레킹 일정에 맞춰 고로2에서 운행을 일찍 끝냈다. 적어도 콩코르디아까진 갔어야 했는데 그만큼 내일은 많이 걸어야 한다. 저녁을 먹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는데 빙하 위라 그런지 매트 위로 냉기가 올라온다. 바닥에 재킷을 깔고 잠을 청한다.

콩코르디아 빙하수에서 보이는 브로드피크와 가셔브룸4

7월 19일 고로2를 출발, 콩코르디아에 도착해 차를 한잔 마시고 다시 길을 재촉한 지 20여 분이 지난 지점에서 짐을 지고 내려오는 유숩 알리Yousaf Ali를 만났다. 작년 고소포터 중 한 명이다. 길 중간에서 그냥 지나치지 않고 운 좋게 만난 것이다. 그는 지금 이번 시즌 낭가파르바트 등반을 끝낸 후 발토로 쪽으로 넘어와 포터로 일하는 중이라고 한다.

김홍빈 대장의 작년 원정대 기록을 정리하면서 당시 조난상황에서 이해가 안 되는 것이 있었다. 원정대원들은 운행 일정상 구조 현장에 없어 사건의 전말을 제대로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그때 현장에 있던 고소포터를 직접 만나 물어볼 것이 있었고, 그것이 이번 트레킹의 가장 큰 목적 중 하나였다.

다음은 필자가 가졌던 의문들이다. 첫째는 작년 원정 기간 코로나로 네팔인의 파키스탄 입국이 금지되어 셰르파 대신 고용한 파키스탄 고소포터들의 행방이다. 함께 정상을 등정했던 고소포터 4명은 김 대장이 조난된 당시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둘째는 김 대장의 조난 이후 캠프4(7,500m)로 내려온 고소포터 4명의 하산 시각이 각각 다르고, 그들의 행로가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김 대장을 내버려 두고 먼저 내려와 버린 네 명의 고소포터는 자신의 의무를 다한 건가?

셋째는 러시아 산악인 라조Vitally Lazo와 고소포터 3명이 조난 다음날 새벽에 구조대로 올라갔는데 실제 구조 활동은 라조와 고소포터 2명만 했다. 구조 활동에서 빠진 사람은 누구이고 그 이유는 무엇인가?

유숩 알리와 인터뷰하는 필자

1시간여 인터뷰를 통해 이들의 등반 궤적을 따라가 본 바에 따라 내린 결론은 "모두가 의무를 성실히 수행했다"였다. 유숩 알리를 포함해 리틀 후세인Hussain, 임디아즈Imtiyaz 모두 헌신적인 구조 노력을 했다. 또 구조 활동에서 빠진 1명의 고소포터 또한 체력이 다해 캠프3로 퇴각한 것이라 비난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됐다. 7,900m란 도덕적 의무를 바랄 수 있는 높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밤하늘에 빛나는 이렇게 많은 별들을 오랜만에 본다. 발전기 소음과 천막이 바람에 펄럭이는 소리, 저 멀리 고소캠프에서 움직이는 작은 랜턴 불빛들이 낯설지 않은 브로드피크 BC의 모습이다.

친근하면서도 위대했던 인간, 김홍빈

7월 20일, 아침 식사 후 과일과 제수용품을 챙겨 K2 길키 메모리얼로 향한다. 1시간여 오르니 K2 베이스캠프 촌이 보인다. 산에 직업을 가진 파키스탄 현지인 스태프들은 올해도 역시 각 산의 베이스캠프에서 쿡, 포터, 고소포터 등으로 채용되어 일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한결같이 김홍빈 대장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고, 만나는 사람마다 김홍빈 대장의 조난 사고에 애도를 표했다. 그곳에서 뜻밖에도 작년 브로드피크 원정대 쿡이었던 후세인M. Hussain을 만났다.

파키스탄알파인클럽 사무실에서 카라 하이드리Karrar Haidri 서기와 함께.

후세인은 김홍빈 대장 추모를 같이하고 싶다며, 향과 양초 등 추모제에 필요한 제수용품들을 챙긴 무거운 배낭을 자진해서 메고 K2 메모리얼로 앞장서서 걷는다. 참 고마운 사람이다. 그렇게 후세인과 정성껏 추모제를 지내고 준비해 간 제문을 낭독했다. 그리고 추모동판을 K2 길키 메모리얼 상단에 설치했다. 김홍빈 대장도 이제 무거운 짐 모두 내려놓고 편안히 영면하기를 기도드린다.

트레킹 내내 김홍빈 대장과의 지난날 산행을 추억하면서 형의 친근했던 인간적 모습과 장애를 극복하며 이룬 위대한 인간승리의 모습이 교차되며 떠올랐다. 그럴수록 그를 기리는 김홍빈 기념관 건립 사업이 민간뿐만 아니라 정부의 손을 빌려서라도 잘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해진다.

K2 길키 메모리얼에 설치한 추모동판.

이번 김홍빈 대장 1주기 브로드피크 BC 방문을 물심양면 지원해 주신 (사)김홍빈과희망만들기(이사장 류재선), 배우자 유족과 이성원 부회장께 감사드린다. 그리고 출국과 귀국 일정이 비슷해 스카루드와 이슬라마바드에서 많은 시간 함께했던 동아대학교산악회 카라코룸 심샥산군shimshak의 무명봉 PK39봉 원정대(대장 이행순)와 친구 조벽래, 김홍빈 대장 기념사업에 깊은 관심과 애정을 보여 주신 부산교대산악부 이동본 선배님께도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월간산 9월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