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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

신오덕 2005. 4. 30. 19:53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


어느 날 갑자기 일상을 벗어나 아무도 몰래 홀연히 여행을 떠난다면 얼마나 좋을까?   오늘같이 이렇게 좋은 날씨면 내게 불쑥 불쑥 떠오르는 생각이다.

(며칠 전에 이 글을 쓸 때에는 날씨가 좋았는데, 오늘은 별로다) 

내가 만약 그리 한다면 무슨 일이 생기게 될까?  그렇게 되면 집에서는 아마 2~3일 기다려 보다가 실종신고를 하게 될 것이고, 직장에서는 며칠간은 휴가로 정리하다가, 휴가일수를 채우게 되면 무단결근으로 처리하고 또 적당한 시일이 경과하면 징계위원회를 열어 면직을 결정할 것이다. 그런 뒤에 나는 어떻게 될까?  그 때쯤이면 경비도 떨어지고 정신적 압박감과 일말의 불안감 등으로 일단 귀가하게 되지 않을까?  그런 뒤에는?  잇딴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샘처럼 솟는다.

좀 방탕한 기분으로 이런 전개과정을 상상하다가도 내 앞에 놓인 꽉 짜인 일상사를 대하면 금세 그런 생각은 사치로 치부되어 버린다.   아무래도 이런 틀 속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생활할 기회는 영영 잡을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평범한 사람들은 늘 뛰쳐나가고 싶지만 자의반 타의반 문지방에 걸려 넘어져 제자리에 머물게 마련이다.   혹 퇴직 후에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이것이 내가 5년 동안이나 묵혀 두었던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을 문득―아니, 갑자기라는 표현이 맞을 듯 하다 ― 꺼내 읽으면서 내내 느꼈던 생각이다.  어느 날 홀연히 고향을 떠나 이탈리아까지 단숨에 달려간 괴테를 부러워하면서 말이다.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은 제목 그대로 저명한 작가이자 바이마르 공국의 정치가로서 명성을 떨치고 있었던 독일의 대문호 <괴테>가 베네치아, 피렌체, 로마, 나폴리, 시칠리아 등 이탈리아 전역을 여행하면서 남긴 여행 기록이다.  37세 생일날(8.28일)이 지난 며칠 후인 1786년 9월 3일 새벽 3시, 그는 축하객들을 남겨두고 궁정을 탈출해 아무도 모르게 이탈리아 여행을 떠난다.  이후 괴테는 익명 속에 묻힌 채 자유롭게 이탈리아를 여행하며 새로운 세계에 눈뜬다.

이 여행은 괴테에게 있어서 자신의 인간적 성숙과정뿐만 아니라 독일문학의 발전과정에서도 중요한 전환점이 된다. 이탈리아 여행의 마지막 목적지인 로마는 특히나 그에게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 같다.  로마에 도착한 날인 1786년 12월 3일의 일기에  괴테는 '나의 제2의 탄생일이자 나의 진정한 삶이 다시 시작된 날' 이라고 적고 있다.


괴테의 이탈리아 체류가 그의 삶과 문학에 끼친 영향은 엄청나다.  지인들의 도움으로 그는 미술을 공부하고 고대 로마의 유산을 답사하며 사물에 대한 통찰력을 가다듬고 정체성을 되찾았다. 괴테는 이탈리아에서 수업하는 화가로서 l,000매에 이르는 스케치를 그렸으며, 희곡『타우리스섬의 이피게니 Iphigenie auf Tauris』(1787)를 고쳐 쓰고, 『에그몬트』를 탈고하고, 『벨라별장의 클라우디네』와 『에르빈과 엘미레』를 완성시킨다. 

 

  책을 읽으면서 괴테는 전공인 문학에서 뿐만   아니라 자연과학 등 여러 분야에 걸친 다양한   지식의 소유자임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그는 이탈리아 여행 중에 식물학, 기상학, 지질학, 광물학, 동물학, 색채학 등 광범위한 영역에 걸쳐 세심한 관찰기록을 남겼다. 이런 자연탐구는 나중에 『색채론』, 『자연과학론』 등의 저술로 이어졌다.  또 만년에 발표한 『나의 식물학 연구사』 역시 이탈리아에서 만난 풍요로운 자연이 그 바탕이 되었다.

 


 

또 이 책에서는 18세기 말 이탈리아의 사회상과 문화 수준 같은 것을 엿볼 수 있는 재미도 있다. 지방 도시들에서까지 활발하게 이뤄지는 연극공연, 곳곳에 산재한 박물관과 전 유럽에서 몰려든 관광객들, 관광안내지도의 존재, 망원경을 통한 도시 전경 조망 등등 현재의 우리들의 독자들의 상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현대화` 된 이탈리아를 새롭게 만나게 된다.   또 중간 중간에 중세 르네쌍스와 17세기문화를 찬란하게 꽃피웠던 대가들의 그림, 조각, 동판화 그리고  괴테 자신이 그린 스케치도 볼거리를 제공한다.

 

책을 다 읽고 나니 좀 멍해진다.  나도 짐을 싸야 되지 않을까? 

그리고 준비가 다 되면 아무도 모르게 떠나야지 ………

언젠가는 그날이 오겠지.........

그래, 그 날을 고대하자.

   


 
가져온 곳: [글쓰기, 문학으로의 산책]  글쓴이: 유레카 바로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