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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마음으로 채색을 하는 단청장 김종욱씨

신오덕 2006. 6. 23. 01:08

 

 

단청은 광물성 안료(顔料)인 진채(眞彩)로 건조물(建造物)에나 조상품(造像品) 또는 공예품(工藝品)에 채색을 올리는 것을 말한다. 단호(丹護), 단벽(丹碧), 단록(丹綠), 진채(眞彩), 당채(唐彩), 오채(五彩), 화채(畵彩), 단칠(丹漆) 등의 별칭이 있고 이에 종사하는 사람을 화사(畵師), 화원(畵員), 화공(畵工), 가칠장(假漆匠), 도채장(塗彩匠)이라 했으며 승려인 경우에는 금어(金魚) 또는 화승(畵僧)으로 불렀다.

우리나라의 단청의 역사는 삼국시대 고구려 고분 등에서 이미 모습을 찾을 수가 있어서 그 유래가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으며, 주로 목조건축물에 많이 쓰였다. 단청을 하면 목재의 보존에 유리하고 또 목재부분의 조악한 것을 가릴 수가 있기도 하다. 또한 건물을 장엄히 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만봉(李萬峯)과 고 원덕문(元德文)은 다같이 승적을 지녔으며 선사(先師) 전래의 기법을 익혀 평생을 단청으로 늙어온 능수(能手)로서 쌍벽을 이루었다. 단청에 쓰이는 안료로는 장단, 석청(石靑), 삼청(三靑), 석록(石碌), 하엽(荷葉), 주사(朱砂), 석웅황(石雄黃), 호분(胡粉), 송연(松烟), 연지(燕脂), 뇌록(磊碌), 정분(丁粉), 군청(群靑), 유금(乳金)이 있으며 이밖에 아교와 법유(法油)를 갖추어야 한다.
단청의 채색에는 저필(猪筆)을 쓰는데, 먼저 바탕에 가칠(假漆)을 하고 그 다음에 초상(草像)을 그리고 채화(彩畵)를 한 다음에 목부(木部)에는 법유(法油)를 바르거나 칠(漆)을 올린다. 초상(草像)이란 모면지(毛綿紙)나 분당지(粉唐紙) 또는 저장지(楮壯紙)에 묵선(墨線)으로 무늬를 그려 놓고 그 무늬에 따라 돗바늘로 구멍을 뚫어 그것을 가칠(假漆)한 바탕에 대고 호분(胡粉)을 싼 성긴 천으로 두들겨 타분(打粉)을 하면 무늬가 옮는다. 이 공정을 초상이라 일컫는다.

단청의 무늬에는 긋기단청, 모루단청, 금단청(錦丹靑), 모루긋기단청, 금모루단청, 갖은금단청으로 나뉘어진다. 무늬의 종류에는 화문(華紋), 쇄문(쇄紋), 비선문(飛仙紋), 비조문(飛鳥紋), 주수문(走獸紋), 운문(雲紋), 훈문(暈紋)으로 구분할 수가 있으며 이를 세분하면 다음과 같다. 화문류(華紋類)에는 해석류화(海石榴華), 보상화(寶相華), 연화(蓮華), 권두합자(圈頭合子), 표각합훈, 마노지(瑪瑙地), 어린기각, 권두시(圈頭枾) 등이 있고 쇄문류(쇄紋類)에는 쇄자(쇄子), 점문(点紋), 나지귀문(羅地龜紋), 사출문(四出紋), 검환문(劒環紋), 곡수문(曲水紋) 등이 있다. 비선문(飛仙紋)에는 비원문(飛元紋), 비선문(飛先紋), 가릉빈가(迦陵頻伽) 등이 있고, 비금문(飛禽紋)에는 봉황문(鳳凰紋), 앵무문, 원앙문(鴛鴦紋) 등이 있다. 단청문양의 종류는 천변만화(千變萬化)의 호(好)를 보여주는 극채색의 세계라 할 수가 있다.

1999년 10월 18일자로 경기도지정 무형문화재 제26호 단청장보유자로 지정을 받은 김종욱(남, 67세. 수원시 장안구 영화동)씨를 찾았다. “13세부터 단청 일을 시작 해 지금 내 나이가 67세니 꼭 55년이 되었나보네요. 그 동안 한번도 한눈을 팔지 않고 오직 이 일에만 매달려 살아왔습니다.” 그래서인가 현재는 경기도지정 무형문화재 제26호 보유자로 인정을 받았다. “어머님이 안양 용화사 신도회 총무 일을 보셨기 때문에 늘 어머니를 따라서 절을 드나든 것이 아마 이 일에 매달리게 된 계기인 것 같습니다. 당시는 공부를 하지 못하면 어차피 기술을 배워야 살 수가 있기 때문에 단청을 시작했죠.” 처음에는 사찰 벽에 벽화를 그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넓은 의미로 보면 벽화도 단청으로 볼 수가 있습니다. 그 동안 많은 작업을 해왔지만 처음 벽화를 맡아 그린 것은 김천 직지사 벽화를 그란 것이죠.” 그렇게 그려 놓은 벽화를 보고는 감개무량했다고 한다.
여러 스승을 모셨지만 그래도 단청의 최고권위자라고 하는 김일섭 스님을 스승으로 모시고 정진을 했다. 동양고속에 재직할 때 조계종 큰스님의 부탁으로 남대문의 단청을 했다. 그 후 수원 팔달문과 장안문, 창룡문 등의 천정 홍애반자를 그렸으며 화성 행궁의 신풍루 단청을 맡아 했다.

“이 일을 하면서 참 보람된 일도 많았습니다. 요즈음은 불화를 주로 작업하고 있는데 제가 가장 주력하는 것이 바로 고려불화를 그리는 것입니다.” 이야기를 하면서 아무도 보여주지 않았다는 영산회상도(靈山會上圖)를 천수천안관세음보살 그림 위에 펼친다. 방안 가득 펼쳐진 그림 안에는 갖은 신중(神衆)들이 금방이라도 호령을 하고 그림 밖으로 나올 듯 하다. “한 6개월 정도 걸려서 그린 불화입니다. 제가 평생을 작업을 하면서 역작이라고 이야기를 할 수 있죠. 여기에 쓰여진 붉은 색은 증명주사를 풀어서 쓴 것이고 살색은 모두 금분입니다. 그리고 신장의 갑옷은 순금으로 비늘을 만든 것이죠.” 가로 5m 세로 3m의 대작을 앞에 놓고 설명을 하는 김종욱씨는 참으로 이 시대에 우리가 존경해야 할 장인임에 틀림이 없다. “이제 늘 기도하는 마음으로 내 인생의 최대 걸작을 하나 남기려고 합니다. 사람이 사는 것이 별것입니까. 있는 자나 없는 자나 다 같다는 생각입니다. 마음을 열고 그저 묵묵히 제 길을 걸어 갈 뿐이죠.” 아들 김진수(37세)에게 단청의 대물림을 하고 있다는 김종욱씨. 새해에는 절 한면 벽을 가득 장식하게 될 영산회상도를 바라다보는 모습이 흡사 자녀를 잉태한 아버지의 마음을 담은 눈길이다. “저보다 잘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제가 보유자 지정을 받은 것도 다 부처님의 가피인 것 같습니다.” 많은 불화를 보면서 기자의 마음까지도 밝아지는 듯 하다. “늘 마음을 열고 사세요. 좋은 일이 많을 것입니다.  (자료출쳐 / 문화재청. 전통예술신문)


 

출처 : 하얀구름(소운 김선옥)의 불화이야기
글쓴이 : 하얀구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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