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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철과 신념
누구나 겪는 일은 무엇인가? 본문
아! 죽음은 누구나 겪는 일, 고려인이 보낸 인생 고백서 | |
문헌에 없는 생활상·감성 생생 재혼녀, 전남편 자식 교육 요구 숙종의 딸 ‘천자의 따님’ 표기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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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박물관 ‘고려시대 묘지명’
기획전
“아, 죽음은 누구나 겪는 일이다.
요, 순 등의 성인이나 우왕, 탕왕, 주공, 공자, 맹자
같이 현명한 이들도 다 죽었다.
밤 낮 바뀌고 추위와 더위가 교대하는 것과 같은데,
어찌 죽음만 싫어하고 살기만 좋아할 것인가?”
고려 중기의 문신 박황(?~1152)의 무덤
묘지명 글귀
는 이렇게 시작된다.
죽음에 대한 가장 진솔한 자기 고백 가운데
하나로
꼽힐 명언이다.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의 라틴어 경구인
‘메멘토 모리’를 선인들도 성찰했다는 증거가 아닐 수 없다. 이처럼 민족사에서 가장 개방적인 기질을 지닌 고려인들은 망자의 삶에 대해 적나라할
정도로 진솔한 고백록들을 시커먼 돌덩어리에 두루 남겼으니, 11일 개막한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 ‘다시 보는 역사편지, 고려
묘지명’(8월27일까지)에서 이를 엿보게 된다. 인상적인 박황의 묘지명으로 시작되는 전시장에는 박물관이 일제시대부터 소장해온 고려시대 묘지명 190여점 가운데 추린 30여점이 나왔다. 묘지명은 무덤 주인의 인생사 내력을 후세에 전하려고 돌에 새긴 기록물. 고려초 중국에서 온 귀화인들에게서 유래한 것으로 본다. 기획자인 서성호 학예사는 “고려 묘지석들은 문헌기록에 없는, 당대 사람들의 내면의식, 생활 감정 따위가 생생하게 기록되어 도식적 글투의 조선시대 묘지석보다 사료적 가치가 월등하다”고 말한다. 1부 ‘해동천자의 나라’, 2부 ‘가족과 여성’, 3부 ‘정신세계’ 로 나누어진 전시장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들 역시 고려 여성의 지위나 개방적인 가족관계 등을 보여주는 기록들이다. 고려 중신 이승장(1137-1191)의 묘지명을 보면 사별 뒤 재혼한 모친이 전 남편 자식인 이승장을 사립학교에 보내지 않고 일만 시키려하는 새 남편에게 이렇게 쏘아붙이는 구절이 나온다. “먹고 살고자 부끄럽게도 전 남편과의 의리를 저버렸는데, 유복자를 공부시켜 뒤를 못 잇는다면 무슨 낯으로 옛 남편을 보겠소?”결국 새 남편은 부인의 뜻을 받아들였다는 묘지석의 내용들은 당시 재혼이 흔했고, 재혼녀의 발언권도 보장되었다는 사실을 일러준다. 또 김유신 처 이씨(?~1192)의 묘지명에는 이씨가 사별한 뒤, 관리의 새 부인으로 들어간 딸을 따라 개경에서 살았다는 구절도 보여 당대엔 출가한 딸이 친정 부모와 같이 사는 것을 자연스럽게 인식했다는 것도 짐작할 수 있다. 정치사의 관련기록들도 보인다. 숙종의 네째딸 복녕궁주(1096~1133) 묘지명에는 궁주를 ‘천자의 따님이여, 보름달 같으셨네…’라고 표기해 스스로 천자의 나라로 자부했음을 보여준다. 또 묘청 일파가 평양 천도를 위해 대동강에 기름떡 주머니를 띄워 기름이 강에 뜨는 이적이 일어난 것처럼 조작하려했다고 기록한 문신 문공유 묘지명(1159), 신하 여진이 세운 금에게 거꾸로 신하의 예를 취하면 안된다고 간언한 장군 윤관의 아들 윤언이의 묘지명(1150)등은 엄혹한 당대 정세를 증언해준다. 도교에 빠져 푸른 소 타고 출근하고 밤에 불경을 왼 윤언민의 묘지석(1154)이나 땅 신에게 무덤터를 샀다는 의미의 상징물인 송천사 주지 세현의 매지석 등은 우리 선입관과 달리 고려에서 불교와 더불어 도교 등도 널리 성행했음을 보여준다. 글씨 보기는 또다른 묘미다. 정갈한 해서체가 주류이나 비뚤하고 고졸한 글씨체도 많고, 현화사 주지 천상의 매지권처럼 귀신글씨처럼 흐늘흐늘하게 새긴 괴팍한 서체도 있다. 지명 위쪽에 2명의 천인상(이중섭 그림과 비슷하다)을 거꾸로 매달아 새긴 관료 김유구의 묘지명(1158)은 보는 맛이 새롭다. 해석문을 쉬운 삽화로 설명하고, 청자, 그릇, 석관 등의 보조 유물을 곁들인 눈높이 기획전의 전범이지만, 또다른 핵심인 필체나 장식 무늬 변천에 대한 미술사적 해석이 빠진 점은 옥에 티다. 박물관 미술부의 ‘쟁쟁한’ 서예·공예사 담당 학예사들은 왜 기획에서 빠졌을까. (02)2077-9275.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북한
국보와 함께 ‘박물관 휴가’ 즐겨볼까
국립중앙박물관에는 묘지석 특별전 외에 알짜 전시가 또 하나 있다. 국보 50점을 포함한 북한의 국가 문화재 90점이 나온 ‘북녘의 문화유산’전(8월16일까지)이다. 평양 조선 중앙역사박물관과의 교류전으로 지난달 13일 개막한 이래 월드컵 열기 때문에 관객은 뜸했지만, 전시품들은 남한에는 없는 희귀한 것들이 많아 ‘휴가철 특수’가 기대된다. 전시 전부터 언론들이 눈대목으로 꼽은 고려 태조 왕건의 청동 좌상(사진)과 가장 오랜 악기인 뼈피리 등은 말할 나위도 없지만, 고고학도들의 순례 대상이 된 국내 최대 크기의 빗살무늬 토기, 조롱박 모양인 청동기 시대의 평북 미송리형 토기, 고조선 대의 팽이형 토기 등은 남한에서 볼 수 없는 북한 특유의 고고 유물들이다. 미술사 장르로는 섬세, 우아한 금속, 석조 공예품들이 압권이다. 복잡하게 늘어뜨린 옷자락과 다기한 장식들을 주무르듯 돌 위에서 빚어낸 관음사 관음보살상, 천인상의 아기자기한 면모와 삐쭉 솟은 꽃무늬상(화문)이 돋보이는 대자사 범종, 정교한 기하학적 문양이 물결치는 은제사리합 등 고려 시대 공예품들은 특히 뛰어나다. 꿈틀거리는 화염무늬의 힘을 부려넣은 고구려의 ‘영강 7년’ 연호 새김 광배, 내금강에서 출토된 조선시대 금동아미타 삼존불 등 다른 시대 명품들도 매혹적이다. 반면 청자, 백자 등의 도자기나 정선, 김홍도 작품이 포함된 회화류는 남한 것보다 다소 수준이 처진다는 평가가 많다. (02)368-1414, 2077-9462. 노형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