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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과 처신

신오덕 2006. 11. 27. 12:45

 

[이덕일사랑] 권력과 처신

 


‘경국대전(經國大典)’에 따르면
 
사헌부는 종2품, 사간원은 정3
 
품 관청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대간’(臺諫)이라고 불린 두 기관의 위세는
 
1품 다섯 명이 포진한 의정부에 뒤지지 않았다.
 
백관(百官)에 대한 탄핵권과 수사권(사헌부)이 있
 
는 사법기관이기 때문이다.

 

 


두 기관의 공통 특징은 가난이었다.

 

‘연려실기술’ 관직전고(官職典故)는 사헌부에 대

 

해 “심히 맑아서 물력(物力)이 없다”라고, 사간원

 

은 “제일 청한(淸寒)하다”고 적었다.

 

 

‘사간원표피’(司諫院豹皮)라는 것이 있었다.

 

표피 한 장을 여러 아문(衙門)에 돌려가면서 뀌어

 

주어서 사간원의 운영 자금으로 썼기 때문에 나온

 

말로서, 그만큼 청렴했다는 뜻이다.

 

 


이들은 ‘피혐’(避嫌)과 ‘상피’(相避)를 엄격하게 적

 

용했다.

 

본인에게 털끝만한 하자라도 있을 경우 스스로 물

 

러나는 것이 피혐이다.

 

 

성호 이익(李瀷)은 ‘대간을 논하다’에서 “나는 우

 

리나라 사람들이 관직과 녹봉을 사양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지만, 대간만은 한번 사단이 일어나

 

면 죽기를 무릅쓰고 물러난다”라고 말했다.

 

 

유관 부서에 친족(親族)이 근무할 수 없게 한 것이

 

상피이다.

 

성종 10년(1479) 대사헌(大司憲) 어세겸(魚世謙)

 

은 동생 어세공(魚世恭)이 병조판서가 되자 “사헌

 

부는 병조의 분경(奔競·엽관 운동)을 살피고 정사

 

(政事·인사권)의 잘못을 탄핵해야 한다”면서 스스

 

로 면직을 요청했다.


 

사헌부와 사간원은 국가 중대사에 대해 합동상소

 

(合同上疏)로 정국을 주도하는 것으로 협조했다.

 

하지만 두 기관은 또 치열하게 서로를 견제했다.

 

두 기관이 결탁할 경우 홍문관(弘文館)이 즉각 개

 

입했기에 결탁할 수도 없었다.


 

조선의 사헌부와 사간원의 관계여야 할 법원과 검

 

찰이 특정 사안을 놓고 밀실회동했다니 부끄럽다.

 

판결독점권이 있는 법원이 기소독점권이 있는 검

 

찰에 밀실회동을 요청한 자체가 반(反)헌법적이

 

고, 그 자리에 나간 검찰도 잘못이다. 이번에는 검

 

찰이 불구속 기소 요청을 거부했다지만 과거에도

 

그랬을 것인가?

 

그리고 법원이 힘없는 민생사범을 위해서도 이렇

 

게 집착했다는 기억은 별로 나지 않는다.

 

 

이덕일·역사평론가 newhis19@hanmail.net
 
입력 : 2006.1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