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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성보검의 지혜를 배워라

신오덕 2006. 12. 11. 13:18
  • [이덕일사랑] 효종(孝宗)을 생각함
  •  

  • 이덕일·역사평론가 newhis19@hanmail.net
  • 입력 : 2006.12.08 07:08
    • 중국 운남성(雲南省) 곤명(昆明)시 동북쪽에는
    • 명봉산(鳴鳳山)이 있다.
    • 앵무산(鸚鵡山)이라고도 하는 이 산자락에는
    • 도교 사원인 금전(金殿)이 있다.
    • 금전에서 효종이 생각나는 것은 오삼계(吳三
    • 桂) 때문이다.
    • 금전에는 오삼계가 사용했다는 칠성보검(七星
    • 寶劍)과 그가 250t의 동을 사용해 건축한 중국
    • 최대의 동전(銅殿)이 있다.

       

    •  

    • 북벌 군주 효종은 재위 10년(1659) 송시열과

    •  

    • 독대(獨對)해 북벌에 적극 나서줄 것을 요청했

    •  

    • 다.

    •  

    • 이때 효종은 ‘주색을 끊고 경계하여 정신이 맑

    •  

    • 고 몸도 건강해졌으니 어찌 앞으로 10년을 보

    •  

    • 장할 수 없겠는가’라면서 ‘정예 포병(砲兵) 10

    •  

    • 만을 기른 다음 기회를 봐서 곧장 쳐들어갈 계

    •  

    • 획’이라고 토로했다.

    •  

    • 효종은 ‘그러면 중원의 의사(義士)와 호걸 중

    •  

    • 에 어찌 호응하는 자가 없겠는가’라고도 했다.

    •  

    • 효종은 독대 한 달 후 의문의 죽음을 당하지만

    •  

    • 15년 후인 현종 15년(1674)에 실제 그런 일이

    •  

    • 발생했다.

    •  

    • 오삼계가 주도한 ‘삼번(三藩)의 난’이 그것이

    •  

    • 다.

       

    • 오삼계는 청나라와 맞서 싸우던 명나라의 마

    •  

    • 지막 주력군 사령관이었으나 이자성(李自成)

    •  

    • 이 북경을 점령하고, 의종(毅宗)이 자살하자

    •  

    • 황제의 원수를 갚는다며 되레 청나라와 손잡

    •  

    • 고 이자성을 공격했다.

    •  

    • 오삼계의 황제 복수 운운이 허위라는 것은

    •  

    • 1662년 신종(神宗)의 아들인 계왕(桂王)을 곤

    •  

    • 명에서 목을 벤 사실에서도 알 수 있다.

    •  

    • 이로써 청나라의 신임을 얻은 오삼계는 평서

    •  

    • 왕(平西王)에 봉해져 운남과 귀주(貴州)를 다

    •  

    • 스리게 된다.

       

    • 그러나 강희제가 철번령(撤藩令)을 내리자 이

    •  

    • 에 반발해 봉기했고, 정남왕(靖南王) 경정충

    •  

    • (耿精忠), 평남왕(平南王) 상가희(尙可喜)가 동

    •  

    • 조해 ‘삼번의 난’으로 확대된다.

    •  

    • 이때 백호(白湖) 윤휴(尹?)는 밀소(密疏·비밀

    •  

    • 상소)를 올려 하늘에서 내려준 기회라며 북벌

    •  

    • 을 주장했다.

    •  

    • 효종이 생존했다면 서슴없이 북벌했을 것이지

    •  

    • 만 이미 문약화(文弱化)된 조선 사대부들에게

    •  

    • 북벌은 구호로서 족한 것이었다.

    •  

    • 이 머나먼 곤명시 금전에서 난무하는 이념만

    •  

    • 큼이나 문약화된 조국의 현실을 우려하며 효

    •  

    • 종을 되새기는 소이가 여기에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