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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숲에 가서 자신을 세워라

신오덕 2013. 1. 2. 11:49

 

겨울에도 초록빛이 성성한 그 숲

시사INLive | 글/사진 노중훈 | 입력 2013.01.01 14:01
 
겨울에도 초록빛이 성성한 공간, 제주 애월읍 납읍리 난대림

제주에는 가보지 않았어도 들어봤음직한 명소들이 수두룩하지만 찬찬히 살펴보면 사람들의 발걸음이 상대적으로 성긴 곳도 많다.

 

그중 하나가 애월읍 납읍리에 위치한 난대림이다. 날씨가 따뜻한 제주에는 난대림이 도처에 있지만 평지에 자리한 난대림은 이곳이 유일하다.

후박나무, 동백나무, 생달나무 등이 빼곡하게 들어찬 숲은 경이로운 초록의 공간이다. 혹한의 계절에도 초록의 싱그러움을 잃지 않는다. 상록의 잎들과 이리 휘어지고 저리 구부러진 나뭇가지들이 함께 빚어내는 풍경은 신령스럽기까지 하다. 숲 터널을 걷다보면 상쾌한 기운이 온몸에 자릿자릿 배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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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 조천읍 선흘리의 곶자왈.

납읍초등학교 부근의 난대림 안으로 들어섰다. 숲은 난데없었다. 숲의 외부와 숲의 내부는 그야말로 천양지차였다. 겨울의 숲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을 만큼 강렬한 초록의 세상이었다.

숲은 계절과 무관했다. 난대림은 나무의 개별성이 아니라 숲의 익명성으로 내게 다가왔다. 숲에 들어찬 나무들의 이름을 일일이 불러주기에 내 공부는 지리멸렬했다. 수종(樹種)에 관한 한 나는 거의 까막눈 신세다.

난대림은 언젠가 읽은 김훈의 소설 < 내 젊은 날의 숲 > 의 여러 구절을 떠올리게 해주었다. 선생이 공들여 축조한 문장들, 예를 들면 '뭉쳐진 빛들의 조각이 바람에 흔들리는 잎 그림자 사이를 떠다녔다' '잎들의 사이를 지나면서 부서진 빛의 입자들이 미세한 가루로 숲의 바닥에 깔렸다' '넓은 잎은 가는 잎보다 먼저 부식해서 흙이 되었는데, 넓은 잎이 삭은 흙이 쌓여서 오래된 흙의 깊은 냄새를 뿜었다' 따위는 납읍리의 난대림을 위한 것이기도 했다. 숲 한가운데 있는 당집은 마을 사람들이 숲을 대하는 신실한 태도를 잘 보여준다. 주민들은 난대림을 제주의 신들이 노니는 신성한 숲으로 섬겨왔으며, 숲의 신령을 모신 당집 앞에 제단을 만들어 해마다 제례를 지낸다.

선흘리 곶자왈의 숲도 납읍 난대림에 못지않은 진초록의 공간이다. 자료를 뒤적여 안 사실이지만 이곳 숲의 주인은 생달나무, 참식나무, 붉가시나무, 후박나무, 동백나무 등과 같은 상록 활엽 교목이다. 넓은 잎사귀들이 사철 푸름을 유지하는 나무들인 것이다. 곶자왈의 말맛이 독특하다. '나무와 덩굴식물과 암석 등이 뒤섞여 수풀처럼 어수선하게 된 곳'을 가리키는 제주 방언이라고 한다. 실제 숲에 안겨보니 양치식물과 온갖 나무들이 얽히고설켜 기묘한 광채를 뿜어냈다. 그렇다고 해서 어수선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세상의 모든 숲이 그렇듯 고요하고 평온했다. 숲의 정온으로 나의 불온을 다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