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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을 허무는 일을 지금하라

신오덕 2013. 2. 1. 14:16

[분수대] 재밌는 주말 보내는 법

[중앙일보] 입력 2013.01.31 00:39 / 수정 2013.01.31 09:31

보고 싶던 드라마를 하루 종일 뒹굴뒹굴 보는 거다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이상하게 요즘은 주말만 되면 날이 더 추워진다. 추운 주말에 나가기는 싫고, 딱히 오라는 곳도 없을 때. 돈 들이지 않고 재미있게 시간을 보내는 방법이 있다. 일단 호박고구마를 구워 쟁반에 담아 소파 옆에 놓는다. 그런 다음 소파에서 뒹굴뒹굴. 보고 싶었던 드라마를 하루 종일 보는 거다. 감질나게 기다리지 않아도, 혹은 놓쳤어도, 지난 TV 드라마를 공짜로 다시 볼 수 있는 방법들이 많기 때문이다. 참 좋~은 세상이다. 지난 주말, ‘무자식 상팔자’ 드라마를 연속해서 여덟 편을 봤다. 눈은 침침하고 허리는 아팠지만 참 ‘보글거리는’ 주말을 보냈다.

 부부를 중심으로 세 아들네 부부와 그 아이들의 인생살이가 드라마의 주제다. 세 아들네 부부 모두 한동네에 모여 살아간다는 설정 자체가 구태의연하고, 가부장 우두머리 노릇을 하는 이순재 빼고는 행복해 보이는 사람 하나 없는 것 같고, 또 인물들 모두 이순재 할아버지에게 쩔쩔매는 모습도 그리 유쾌하지 않아, 그동안은 챙겨 보지 않았다. 그런데 ‘두 자릿수 시청률 임박, 종편 시청률 1위 기록’이라고 난리들도 떨고, 미혼모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궁금하기도 하고. 그래서 시간 난 김에 연결해서 보기 시작했는데.

 온 가족의 자랑인 판사 손녀가 미혼모가 되어 판사직도 내던지고 집에 들어온 사실을 알게 된 호랑이 할아버지. 모두들 불호령을 예상했건만 사랑으로 감싸주는 할아버지. 밖에서 상처 입고 돌아온 가족들에게 그는, 가부장 호랑이가 아닌 따뜻한 큰 어른이었던 거다. 고부 갈등, 미혼모가 되어 앞으로 사회의 편견을 안고 살아갈 엄친딸, 동거 먼저 해보고 결혼하겠다는 아들. 이 모든 고민과 갈등이 가족 안에서 지지고 볶고 소통되고 해결되는 모습이 가족 드라마답게 훈훈하긴 하지만, 너무 가족끼리 똘똘 뭉쳐 ‘가족 이기주의’로 흐를까 은근 겁도 난다.

 김수현 작가는 그동안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의 문제를 드라마를 통해 메시지 전달을 해 왔다. 지난번 ‘인생은 아름다워’에서는 동성애자 얘기더니, 이번엔 미혼모와 동거 커플 얘기다.

 작가는, 그들이 평범한 부모 밑에서 평범하게 자란 우리들의 아들딸일 수도 있다 한다. 그녀가 민감한 이슈들을 드라마를 통해 대중과 소통하겠다는 건 ‘모두 함께 소통하며 더불어 살자’는 말일 게다. 이제 우리 모두 소외된 우리 주위 사람들까지 가족으로 포함시켜 가족의 틀을 넓히자. 틀 넓히고 벽 허물 곳은 어디든 있다. 미혼모나 동거 문제는 세대 간의 벽, 호남·영남으로 대변되는 문제는 지역 간의 벽, 있는 자와 없는 자는 빈부 간의 벽. ‘국민 대통합’이 뭐 별건가. 가족, 세대, 지역, 빈부 간의 벽을 허물고 틀을 깨뜨리면 되겠지. 난 앞으로 그런 일이나 하며 살련다.
 
엄을순 객원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