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고 일어나니 엄청난 스캔들이 터졌다. 하룻밤 사이에 신데렐라가 겪었던 동화같은 이야기는 아니다. 유럽 축구계 사상 최악의 '승부조작 스캔들'이다. 사건을 수사 중인 유로폴에 따르면 무려 380 경기가 승부조작에 연루된 혐의를 받고 있으며 여기에는 잉글랜드 내에서 치러진 UEFA 챔피언스리그 경기도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 'BBC'를 비롯한 주요 언론들은 유로폴에 의해 공개된 충격적인 승부조작 혐의들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며 사태를 예의주시 하고 있다.
승부조작 같은 엄청난 뉴스에 비교하면 조금 의미가 퇴색될 지도 모르지만 사실 프리미어리그는 어떤 의미에서 한 주도 '바람잘 날 없는' 리그다. 무엇보다 지난 2일(이하 한국시간)과 3일에 걸쳐 종료된 25라운드를 기점으로 리그 순위표, 팀들 간의 경쟁구도에도 조금씩 방향성이 보이기 시작했다. 역시 가장 눈에 띄는 건 '또' 1위를 달리고 있는 맨유다.
![]() 맨유는 또 리그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게 될까? ⓒ gettyimages/멀티비츠 |
퍼거슨 감독은 언젠가 시즌 중반에 이런 뉘앙스의 말을 한 적이 있다. "3월 둘째 주 쯤이면 1위로 치고 올라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얼핏 듣기엔 아무런 이상이 없는 문장 같지만, 사실 리그가 치러지고 있는 도중에 그것도 정확히 시기까지 언급하며 자신의 팀이 1위로 올라갈 것이란 예상을 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그 시즌, 맨유는 혹독한 일정을 치르면서도 퍼거슨 감독이 공언한 시기를 전후해 리그 1위 자리도 탈환했었다. 치열한 선두다툼을 벌이느라 피가 마르는 감독들은 마치 '홈런 예고'를 하듯 리그 선두자리로 유유히 올라가는 맨유를 보며 속이 타들어 갈 수 밖에 없다.
언제나 1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힘
2012/2013 시즌이 어느덧 막바지를 향해가고 있는 2월 초 현재 맨유는 '또' 1위를 달리고 있다. 지난 2011/2012 시즌 승점까지 89점으로 동률을 이뤘지만 끝내 골득실에서 밀려 리그 패권을 내줘야 했던 맨유로서는 오히려 이번 시즌에는 순조롭게 선두를 지켜가는 모습이다. 25라운드서는 '승점관리'에 무서울 정도의 일가견을 가진 퍼거슨 감독의 능력이 더욱 빛을 발했다. 리그 중위권을 달리고 있는 풀럼을 상대로 1-0 승리를 챙긴 맨유는 더욱이 팀의 주축 자원중 하나인 웨인 루니가 골맛을 봤다. 중요한 경기서 승점 3점도 챙기고, 부상 등으로 기복을 보이고 있는 팀 에이스의 컨디션도 상승세를 맛 본 셈이다. 득점포를 가동한 루니의 활약이 지속적으로 힘을 발휘할 경우 맨유는 시즌 하반기가 오면 그러했듯 다시 한번 여러 개의 타이틀에 도전할 탄력을 얻게될 가능성이 크다.
맨유가 리그 중, 후반의 어떤 시점에 단순히 한 경기를 이기는 것 이상의 효과를 볼 때 더욱 공교로운 사실, 혹은 놀라운 일들은 타이틀 경쟁을 벌이는 팀들이 결정적 순간에 승점획득에 실패한다는 점이다. 25라운드를 마친 현재 맨유를 그나마 가장 위협할 수 있는 팀은 지난 시즌 우승팀인 맨시티다. 하지만 맨시티는 자신들의 홈에서 벌어진 25라운드 경기서 리버풀과 2-2 무승부를 거두는데 그치고 말았다. '자멸'이라는 단어까지 사용해 극단적인 평가를 내릴 경기는 아니었지만 맨유가 공고히 선두를 지키기 위해 풀럼전을 치렀던 방식과 비교하면 맨시티와 리버풀전은 어떤 의미에서 해프닝의 연속이었고, 양 팀 모두에게 아쉬움이 남는 결과였다.
![]() 리버풀과 맨시티의 무승부로 맨유의 1위는 더욱 공고해 졌다. ⓒ gettyimages/멀티비츠 |
이유야 어찌됐든 맨시티가 승점추가에 실패하면서 1위 맨유(승점 62점)와 2위 맨시티(승점 53점)의 차이는 9점까지 벌어진 상태다. 선두탈환을 위해서는 단순히 생각해도 최고 3경기를 뒤집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러나 지난 2011/2012 시즌 중반 맨유가 리그 3연패를 기록한 뒤 마치 '대재앙'에 빠진 것 같은 분위기가 조성됐던 것을 생각하면 퍼거슨 감독 같은 '여우'가 또 다시 연패의 늪에 빠지게 될 가능성은 적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결정적 순간, 경쟁팀들이 자멸한다?
이번 시즌 또 다른 타이틀 경쟁자로 꼽혔던 첼시가 뉴캐슬로부터 뎀바 바를 영입한 뒤 뉴캐슬과의 경기서 2-3으로 패배하는, 어떤 의미에서 정말 '드라마 같은' 상황을 연출하는 것 또한 정말 대단한 일이다. 다른 경쟁자들이 이렇게 제 발을 찍는 동안 맨유는 정말 무섭게도 거의 매 시즌 1위 자리를 고수하고 있다. 어떤 게임이든지 헤게모니는 변하기 마련인데, 적어도 최근 10년 동안 맨유가 주도해 온 프리미어리그의 패러다임은 공고하게 유지되고 있다. 아스널(승점 41점, 6위)이나 리버풀(승점 36점, 7위) 같은 전통의 명가들이 2013년 2월 올라 있는 순위표 위치를 확인하면 상황은 더 놀랍다.
판도가 변해도 1위는 언제나 그대로라는 단순명제보다 어쩌면 더 놀라운 건 계속되는 '스토리 텔링'이다. 루니가 살아난 맨유는 공교롭게도 10일로 예정된 26라운드서 루니의 친정팀이기도 한 에버튼을 만난다. 경기 전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가 자동으로 성립된 셈이다. 오는 24일 열리는 27라운드 상대는 퀸즈파크 레인저스다. 한국팬들로서는 놓칠 수 없는 매치업이다. 14일에 UEFA 챔피언스리그 16강 1차전, 레알 마드리드와의 경기까지 예정되어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래저래 맨유가 늘 뉴스 헤드라인을 차지하는 상황을, 탓할 수 만도 없을 것 같다. 지금 리버풀이나 아스널의 팬들이 그런 것처럼, '예전에는 꽤 잘 나갔었지'하고 과거를 회상해야 하는 날이, 맨유팬들에게도 언젠가는 오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