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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철과 신념
느리고 불편하지만 새로움을 찾아라 본문
신작로·점방·변또·쫀듸기 '살아있는 추억랜드'
[노컷이 만난 사람] '득량역 70년대의 거리' 만든 공주빈씨 노컷뉴스 데일리노컷뉴스 이정 기자 입력 2013.11.04 06:03
[데일리노컷뉴스 이정 기자]
"너 땜시 우리동네가 살겄다잉. 사람이 요래 밀려드니 참 살맛난다잉."
공주빈(36)씨가 요즘 동네 어르신들에게 가장 많이 듣는 말이다.
전남 보성군 득량역에 내리면 눈앞에 1970년대가 그대로 펼쳐진다. '신작로'를 따라 역전이발관, 꾸러기문구점, 행운다방 등이 늘어서 있다. '점방' 안으로 들어가면 그 시절 물건들이 마술처럼 다가온다. 득량국민학교 교실 난로위엔 켜켜이 쌓아놓은 '변또'가 모락모락 김을 내뿜고 있는 듯하다. 이렇게 타임머신을 타고 찾아온 추억랜드를 기획하고 만든 주인공이 바로 공주빈씨다.
부모님을 위해 처음 시작한 작은 일이 어느덧 커져 문화디자인 프로젝트 공모사업에 당당히 선정됐다. 지난달 남도해양관광열차 S-트레인이 개통되면서 공씨가 지난 16년간 애지중지 모은 옛 소품들로 채워진 득량역을 찾는 발걸음이 껑충 늘었다. '추억의 거리'에 대한 관광객들의 관심도 높아져 몸은 바쁘지만 더 많은 이들과 아련한 그때를 공유할 수 있어 그저 행복하다는 공씨.
장난감을 무척 좋아하던 평범한 소년에서 빈티지의 매력에 흠뻑 빠져 자신의 생활터전 전부를 추억의 물건으로 가득 채워놓은 그의 복고 예찬론을 들어봤다.
■ 관광객 몰리면서 이젠 동네 어르신들이 사람구경
"예전에는 이 마을을 지나치는 사람이 하루 대여섯명 손에 꼽을 정도였는데 지금은 적게는 20~30명, 많게는 100~200명 정도 다녀가세요. 그러다보니 동네 어르신들이 관광객을 구경하러 내려오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하죠."
그 덕분에 침체돼 있던 마을도 활기를 되찾았다. 주민들끼리 왕래도 잦아졌고 서로 관광객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마을 사람들끼리 공통의 이야기 거리가 생긴 것이다.
지극히 개인 소품들로 채운 개인적인 공간을 공익적인 목적을 위해 전시한다는 일이 결코 쉽지만은 않은 일. 어떻게 추억의 거리를 조성하게 된 것인지, 그 시작이 궁금했다.
"어느 순간부터 부모님께서 말수도 웃음도 적어지셨어요. 일을 하지 않으시니 무기력해지셨다는 걸 느끼게 됐죠. 가슴이 참 아팠어요. 마음의 안정과 즐거움을 되찾아드리고 싶었어요. 그러던중 통합의학박람회를 다녀왔는데 한·양방 의학기술 말고도 '힐링'을 통한 마음치료가 가지는 커다란 힘을 몸소 느끼게 됐죠. 그래서 시작하게 됐어요."
부모님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대상이 필요했던 것이다. 잔치를 벌여도 문화공연을 한다해도 일회성에 그칠 뿐이었다. 오랫동안 꾸준히 더 많은 사람들이 찾아줄 방법이 뭘까 고민하다 이 공간을 마련하게 됐다. 빈티지 소품들을 수집하면서 창고에 쌓아놨던 것을 테마별로 꾸며보고 싶다는 생각도 늘 머릿속 한켠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왜 득량역이었을까.
"득량역이 저의 주무대였거든요. 어린시절 생활터전이었고 지금은 부모님이 살고 계세요. 예전에 이곳에 건물이 좀 있었어요. 오랫동안 모아온 소품들을 어디다 가져다 놓을까 생각하다가 창고에 방치하는 것보다는 테마에 맞춰서 진열하면 좋겠다 생각했어요. 마을에 뜻이 맞는 분들께서도 '이쪽도 활용해보면 좋겠다' 이렇게 의견들을 모아주셨어요. 이렇게해서 추억의 거리가 탄생하게 된거죠."
득량역을 찾는 이들이 늘면서 추억의 거리에 대한 반응도 뜨겁다.
"사실 요즘 가족 간에 대화가 너무 단절돼 있잖아요. 그런데 이곳에 오면 아빠·엄마가 주인공이 돼 '우리 어렸을 땐 이랬어' 이렇게 추억을 나누게 되죠. 부모세대는 어린시절의 추억과 향수를, 자녀세대는 부모세대의 추억을 느끼는 거죠. 서로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자연스럽게 소통하게 되는 것 같아요. 서로 추억들을 공유하며 활짝 웃는 모습을 바라보면 참 뿌듯하기도 하고, 기쁘고 그래요."
■ 5분만에 후다닥 사진 찍고 돌아가는 모습 아쉬워
10여년 넘게 발품 팔아가며 공수해 온 물건들로 채운 공간들이어서 소품 하나하나가 자식같고 애착이 상당한 듯 보였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아픈 손가락 없겠지만 그래도 가장 애착이 가는 물건이나 공간이 있을 것 같았다.
"물론 있죠. 장난감과 술이 그래요. 술은 스무살때 처음 마셨던 25도 소주, 그 어떤 양주보다 마실때 감동을 이루말할 수 없죠. 술을 수집하면서 많이 어려웠어요. 팔도의 옛술을 찾는 게 참 힘들었죠. 장난감은 희귀한 장난감이 많이 있어요. 희귀한 것이라 하면 소싯적 100원, 200원하던 성냥갑 만한 작은 장난감들인데 구하기가 아주 어렵죠. 큰 건 비싸지만 맘만 먹으면 생각보다 쉽게 구할 수 있거든요. 작은 게 어려워요."
스무살에 아르바이트를 시작해 24살에 처음 '포니'를 구입하면서 클래식카의 매력에 빠진 후 닥치는대로 빈티지 소품들을 모으기 시작했다는 공씨에게 '고물'과 '골동품'을 구분하는 나름의 기준을 물었다.
"나에게 추억이 되면, 내 기억 속에 추억으로 남아있다면 그건 무조건 오케이. 추억이 없는 물건이라면 배제시켜요. 어디에 쓰였나 전문가에게 묻기도하고 필요하다 싶으면 구매하고. 하지만 아직 그림, 서예, 도자기 등은 잘 몰라서 시도를 못하고 있어요."
"전국을 돌아다니는 직업(공씨는 남도의 맛과 멋을 알리는 리포터이자 한 이벤트 회사 소속으로 전국 각지를 돌며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을 가지고 있어서요. 그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구멍가게, 마을회관, 노인정, 장난감가게, 문구상, 고물상, 골동품 상점을 돌면서 하나씩 구해오죠. 직접 발품을 팔아야 '물건'을 건질 수 있어요. 가격도 만만치 않아요. 사실 고가의 물건들이 많거든요. 모든 물건들에는 사용한 사람들의 추억이 담겨있으니 비쌀 수밖에 없어요. 저는 물건과 함께 그분들의 추억을 함께 사는 셈이죠."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 시작한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 마을 주민들의 지원과 지지가 더해지면서 올해 문화체육관광부가 추진한 문화디자인프로젝트공모사업으로 선정되는 개가를 올렸다. 감회가 남달랐을 것 같았다.
"정말 기뻤어요. 나비효과(나비의 날개 짓처럼 작은 변화가 폭풍우와 같은 커다란 변화를 유발시키는 현상)라는 말도 있잖아요. 부모님의 웃음을 되찾아드리고자 시작한 작은 일이 마을주민들의 뜻이 모아지면서 그 의의도, 규모도 커졌어요. 언론에서도 조명되고, 그 덕분에 군에서 먼저 디자인 사업 공모 제의가 왔어요. 전국을 대상으로 했기 때문에 경쟁자도 상당히 많았지만 자신은 있었죠."
부모님 몰래 봤던 만화책, 달콤한 맛이 입안가득 퍼지던 쫀듸기와 눈깔사탕, 보물보다 더 소중했던 딱지부터 청춘남녀의 접선장소였던 다방까지 추억의 거리에는 그 시절 아련한 향수를 느낄 수 있는 다양한 볼거리가 준비돼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이를 활용한 문화프로그램들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이어진다.
"S-트레인 정차 시간이 15분이에요. 플랫폼 내려서 화장실 다녀오고 사진 찍고 '아 이런 곳이 있네'하고 다시 돌아들가세요. 우리나라 사람들 '빨리빨리' 문화때문에 꼭 5분 전에 다시 기차로 돌아들가세요. 이렇게 되면 관람할 수 있는 시간은 고작 5분 이내죠. 추억에 젖어들 수 있는 시간이 너무 짧죠. 개인적으로 30분이면 적당할 것 같은데. 추억에 젖어들기엔 너무 짧은 시간이 많이 아쉽죠."
■ '찐계란과 사이다의 그시절' 추억 공유하는 공간
인터뷰 중에도 쉴새없이 공씨에게 행사섭외 전화가 걸려왔다. 게다가 추억의 거리가 입소문을 타면서 최근에는 소품 대여 여부를 묻는 문의 전화도 부쩍 늘었다고 한다. 추억의 거리를 조성하고 나서부터는 가족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줄어 안타깝다는 그지만 가장 든든한 지원군이자 조력자는 '가족'이라며 특히 부인 김선아씨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가족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해 아쉬워요. 하지만 나의 빈 자리를 허전하지 않게끔 때로는 아들이 되고, 때로는 아빠가 되어주는 안사람에게 무척 고마워요. 그리고 언제나 묵묵히 아들을 믿고 힘이 돼주시는 부모님께 감사해요."
인터뷰 내내 아들과 아내자랑에 여념이 없던 공씨, 그리고 그런 공씨를 시종일관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어머니 최수라씨까지, 이들에게서 가족의 끈끈한 정이 느껴졌다. 애착이 큰 만큼 그에게 가족이 가지는 의미도 남다를 것 같았다.
"솔직히 힘들 때도 많이 있었어요. 일도 바쁜데 몸이 아프면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힘들었지만 가족이 있기에 버틸수 있었던 것 같아요. 예전엔 행복의 필수조건이 '돈'이라고 생각했는데 몇 해 전 큰 사고를 당하면서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정말 소중하다는 것 깨닫게 됐어요. 예전에는 언제나 앞만 보고,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이리저리 뛰어다녔는데 사고 당시 내가 만약 지금 이 자리에 없다면 우리 가족들에게 무엇이 남을까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그 일을 계기로 가족들과 함께 보내는 1분 1초가 너무 소중해졌어요."
남들이 가지지 못하는 것들을 소장하는 데서 오는 즐거움에서 시작한 빈티지 소품 수집이었지만 지금은 많은 사람들과 추억을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다는 자부심으로 가득하다는 그에게 '꿈'을 물었다.
"첫번째는 좋은 아빠가 되는 것, 두번째는 언제나 웃는 가족의 모습을 그리는 것, 세번째는 부모님 건강하게 오래 사시는 것, 마지막은 이 추억의 거리가 또 하나의 추억의 관광명소가 되는 거에요. '살아 숨쉬는 박물관' 그런 이미지를 각인시켜주고 싶어요."
"현대화의 물결 속에 너도나도 '빨리빨리'만 외치고 계시는 것 같아 안타까워요. 조금은 느리고 불편하겠지만 하루쯤은 자동차를 내려놓고 온 식구와 함께 기차를 타고 찐계란과 사이다를 마시며 추억을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어요. 이 곳 득량역에 추억을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 있으니 즐기시면 좋겠습니다. 그시절 창문너머로만 바라봤던 다방에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설레는 마음 가득 안고 따뜻한 차 한 잔의 여유를 느껴보는 건 어떨까요?"
"너 땜시 우리동네가 살겄다잉. 사람이 요래 밀려드니 참 살맛난다잉."
공주빈(36)씨가 요즘 동네 어르신들에게 가장 많이 듣는 말이다.
전남 보성군 득량역에 내리면 눈앞에 1970년대가 그대로 펼쳐진다. '신작로'를 따라 역전이발관, 꾸러기문구점, 행운다방 등이 늘어서 있다. '점방' 안으로 들어가면 그 시절 물건들이 마술처럼 다가온다. 득량국민학교 교실 난로위엔 켜켜이 쌓아놓은 '변또'가 모락모락 김을 내뿜고 있는 듯하다. 이렇게 타임머신을 타고 찾아온 추억랜드를 기획하고 만든 주인공이 바로 공주빈씨다.
부모님을 위해 처음 시작한 작은 일이 어느덧 커져 문화디자인 프로젝트 공모사업에 당당히 선정됐다. 지난달 남도해양관광열차 S-트레인이 개통되면서 공씨가 지난 16년간 애지중지 모은 옛 소품들로 채워진 득량역을 찾는 발걸음이 껑충 늘었다. '추억의 거리'에 대한 관광객들의 관심도 높아져 몸은 바쁘지만 더 많은 이들과 아련한 그때를 공유할 수 있어 그저 행복하다는 공씨.
장난감을 무척 좋아하던 평범한 소년에서 빈티지의 매력에 흠뻑 빠져 자신의 생활터전 전부를 추억의 물건으로 가득 채워놓은 그의 복고 예찬론을 들어봤다.
■ 관광객 몰리면서 이젠 동네 어르신들이 사람구경
그 덕분에 침체돼 있던 마을도 활기를 되찾았다. 주민들끼리 왕래도 잦아졌고 서로 관광객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마을 사람들끼리 공통의 이야기 거리가 생긴 것이다.
지극히 개인 소품들로 채운 개인적인 공간을 공익적인 목적을 위해 전시한다는 일이 결코 쉽지만은 않은 일. 어떻게 추억의 거리를 조성하게 된 것인지, 그 시작이 궁금했다.
"어느 순간부터 부모님께서 말수도 웃음도 적어지셨어요. 일을 하지 않으시니 무기력해지셨다는 걸 느끼게 됐죠. 가슴이 참 아팠어요. 마음의 안정과 즐거움을 되찾아드리고 싶었어요. 그러던중 통합의학박람회를 다녀왔는데 한·양방 의학기술 말고도 '힐링'을 통한 마음치료가 가지는 커다란 힘을 몸소 느끼게 됐죠. 그래서 시작하게 됐어요."
부모님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대상이 필요했던 것이다. 잔치를 벌여도 문화공연을 한다해도 일회성에 그칠 뿐이었다. 오랫동안 꾸준히 더 많은 사람들이 찾아줄 방법이 뭘까 고민하다 이 공간을 마련하게 됐다. 빈티지 소품들을 수집하면서 창고에 쌓아놨던 것을 테마별로 꾸며보고 싶다는 생각도 늘 머릿속 한켠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왜 득량역이었을까.
"득량역이 저의 주무대였거든요. 어린시절 생활터전이었고 지금은 부모님이 살고 계세요. 예전에 이곳에 건물이 좀 있었어요. 오랫동안 모아온 소품들을 어디다 가져다 놓을까 생각하다가 창고에 방치하는 것보다는 테마에 맞춰서 진열하면 좋겠다 생각했어요. 마을에 뜻이 맞는 분들께서도 '이쪽도 활용해보면 좋겠다' 이렇게 의견들을 모아주셨어요. 이렇게해서 추억의 거리가 탄생하게 된거죠."
득량역을 찾는 이들이 늘면서 추억의 거리에 대한 반응도 뜨겁다.
"사실 요즘 가족 간에 대화가 너무 단절돼 있잖아요. 그런데 이곳에 오면 아빠·엄마가 주인공이 돼 '우리 어렸을 땐 이랬어' 이렇게 추억을 나누게 되죠. 부모세대는 어린시절의 추억과 향수를, 자녀세대는 부모세대의 추억을 느끼는 거죠. 서로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자연스럽게 소통하게 되는 것 같아요. 서로 추억들을 공유하며 활짝 웃는 모습을 바라보면 참 뿌듯하기도 하고, 기쁘고 그래요."
■ 5분만에 후다닥 사진 찍고 돌아가는 모습 아쉬워
"물론 있죠. 장난감과 술이 그래요. 술은 스무살때 처음 마셨던 25도 소주, 그 어떤 양주보다 마실때 감동을 이루말할 수 없죠. 술을 수집하면서 많이 어려웠어요. 팔도의 옛술을 찾는 게 참 힘들었죠. 장난감은 희귀한 장난감이 많이 있어요. 희귀한 것이라 하면 소싯적 100원, 200원하던 성냥갑 만한 작은 장난감들인데 구하기가 아주 어렵죠. 큰 건 비싸지만 맘만 먹으면 생각보다 쉽게 구할 수 있거든요. 작은 게 어려워요."
스무살에 아르바이트를 시작해 24살에 처음 '포니'를 구입하면서 클래식카의 매력에 빠진 후 닥치는대로 빈티지 소품들을 모으기 시작했다는 공씨에게 '고물'과 '골동품'을 구분하는 나름의 기준을 물었다.
"나에게 추억이 되면, 내 기억 속에 추억으로 남아있다면 그건 무조건 오케이. 추억이 없는 물건이라면 배제시켜요. 어디에 쓰였나 전문가에게 묻기도하고 필요하다 싶으면 구매하고. 하지만 아직 그림, 서예, 도자기 등은 잘 몰라서 시도를 못하고 있어요."
"전국을 돌아다니는 직업(공씨는 남도의 맛과 멋을 알리는 리포터이자 한 이벤트 회사 소속으로 전국 각지를 돌며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을 가지고 있어서요. 그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구멍가게, 마을회관, 노인정, 장난감가게, 문구상, 고물상, 골동품 상점을 돌면서 하나씩 구해오죠. 직접 발품을 팔아야 '물건'을 건질 수 있어요. 가격도 만만치 않아요. 사실 고가의 물건들이 많거든요. 모든 물건들에는 사용한 사람들의 추억이 담겨있으니 비쌀 수밖에 없어요. 저는 물건과 함께 그분들의 추억을 함께 사는 셈이죠."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 시작한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 마을 주민들의 지원과 지지가 더해지면서 올해 문화체육관광부가 추진한 문화디자인프로젝트공모사업으로 선정되는 개가를 올렸다. 감회가 남달랐을 것 같았다.
"정말 기뻤어요. 나비효과(나비의 날개 짓처럼 작은 변화가 폭풍우와 같은 커다란 변화를 유발시키는 현상)라는 말도 있잖아요. 부모님의 웃음을 되찾아드리고자 시작한 작은 일이 마을주민들의 뜻이 모아지면서 그 의의도, 규모도 커졌어요. 언론에서도 조명되고, 그 덕분에 군에서 먼저 디자인 사업 공모 제의가 왔어요. 전국을 대상으로 했기 때문에 경쟁자도 상당히 많았지만 자신은 있었죠."
부모님 몰래 봤던 만화책, 달콤한 맛이 입안가득 퍼지던 쫀듸기와 눈깔사탕, 보물보다 더 소중했던 딱지부터 청춘남녀의 접선장소였던 다방까지 추억의 거리에는 그 시절 아련한 향수를 느낄 수 있는 다양한 볼거리가 준비돼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이를 활용한 문화프로그램들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이어진다.
"S-트레인 정차 시간이 15분이에요. 플랫폼 내려서 화장실 다녀오고 사진 찍고 '아 이런 곳이 있네'하고 다시 돌아들가세요. 우리나라 사람들 '빨리빨리' 문화때문에 꼭 5분 전에 다시 기차로 돌아들가세요. 이렇게 되면 관람할 수 있는 시간은 고작 5분 이내죠. 추억에 젖어들 수 있는 시간이 너무 짧죠. 개인적으로 30분이면 적당할 것 같은데. 추억에 젖어들기엔 너무 짧은 시간이 많이 아쉽죠."
■ '찐계란과 사이다의 그시절' 추억 공유하는 공간
"가족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해 아쉬워요. 하지만 나의 빈 자리를 허전하지 않게끔 때로는 아들이 되고, 때로는 아빠가 되어주는 안사람에게 무척 고마워요. 그리고 언제나 묵묵히 아들을 믿고 힘이 돼주시는 부모님께 감사해요."
인터뷰 내내 아들과 아내자랑에 여념이 없던 공씨, 그리고 그런 공씨를 시종일관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어머니 최수라씨까지, 이들에게서 가족의 끈끈한 정이 느껴졌다. 애착이 큰 만큼 그에게 가족이 가지는 의미도 남다를 것 같았다.
"솔직히 힘들 때도 많이 있었어요. 일도 바쁜데 몸이 아프면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힘들었지만 가족이 있기에 버틸수 있었던 것 같아요. 예전엔 행복의 필수조건이 '돈'이라고 생각했는데 몇 해 전 큰 사고를 당하면서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정말 소중하다는 것 깨닫게 됐어요. 예전에는 언제나 앞만 보고,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이리저리 뛰어다녔는데 사고 당시 내가 만약 지금 이 자리에 없다면 우리 가족들에게 무엇이 남을까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그 일을 계기로 가족들과 함께 보내는 1분 1초가 너무 소중해졌어요."
남들이 가지지 못하는 것들을 소장하는 데서 오는 즐거움에서 시작한 빈티지 소품 수집이었지만 지금은 많은 사람들과 추억을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다는 자부심으로 가득하다는 그에게 '꿈'을 물었다.
"첫번째는 좋은 아빠가 되는 것, 두번째는 언제나 웃는 가족의 모습을 그리는 것, 세번째는 부모님 건강하게 오래 사시는 것, 마지막은 이 추억의 거리가 또 하나의 추억의 관광명소가 되는 거에요. '살아 숨쉬는 박물관' 그런 이미지를 각인시켜주고 싶어요."
"현대화의 물결 속에 너도나도 '빨리빨리'만 외치고 계시는 것 같아 안타까워요. 조금은 느리고 불편하겠지만 하루쯤은 자동차를 내려놓고 온 식구와 함께 기차를 타고 찐계란과 사이다를 마시며 추억을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어요. 이 곳 득량역에 추억을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 있으니 즐기시면 좋겠습니다. 그시절 창문너머로만 바라봤던 다방에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설레는 마음 가득 안고 따뜻한 차 한 잔의 여유를 느껴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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