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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극적 정신자세로 미래를 개척하라

신오덕 2013. 11. 6. 11:35

 

가까운 사람들의 말에는 늘 귀를 기울인다. 독자들이 전화나 이메일을 보내오면 성의껏 답하고, 좋은 의견은 나중에 글에 반영하려고 애쓴다. 반면에 댓글은 되도록 보지 않고, 어쩌다 보게 되더라도 애써 무시한다. 트윗이나 페이스북 등은 가끔씩 들어가 그들이 무슨 얘기를 하며 사는지를 살필 뿐, 친한 사람들과의 대화를 제외하고는 글을 올리거나 댓글을 달지 않는다. 인터넷과 SNS 시대를 살아오면서 굳힌 나름대로의 원칙이자 꾀다. 재미 삼아, 또는 화풀이 하듯 던진 말에 무슨 무게가 있을 것이며, 그것이 전화요금이건 시간이건 자기 부담 없이 던진 말에 무슨 값어치가 있을까. 공연히 논란에 말려들어 정신만 사나워지거나 특정 성향의 주장에 불필요하게 기울어 행복의 지표로 삼아온 평정심만 해치게 된다. 이런 소극적 원칙은 개인에게는 꽤나 유용하다. 정서적 안정을 유지할 수 있다는 주관적 이점에 덧붙여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기에 객관적 부작용도 없다.

그러나 외부 자극에 대한 소극적 대응의 유용성은 개인에 한정된다. 공인이라면, 특히 무위(無爲)조차 분명한 의미를 갖는 정치지도자라면 그것은 회피나 방어가 되고 만다. 검찰총장 중도 하차, 국군사이버사령부 댓글 의혹, 검찰 항명, 법무장관 유감 표명 등으로 파급돼 온 국정원 댓글 사건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자세가 좋은 예다. 일련의 사건을 묶어보는 것부터 언짢을 사람도 있겠지만, 개별 사건이나 각각의 의혹과는 무관하게 많은 국민은 이미 커다란 그림에 익숙하다. 그런 대중의 인식에 기대어 야당이 대선 불복 카드까지 꺼내 들 기미인 걸 보면 부정할 수도 무관심할 수도 없는 정치 현실이다.
애초에 국정원 댓글 사건이 터졌을 때만 해도 선거 때면 늘 나오는 잡음쯤으로 여길 만했다. 고질적 지역갈등에, 선거 후 확인된 세대갈등이 교차한 선거지형에서 너저분한 댓글이 유권자의 선택에 '고려할 만한' 영향을 미치리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선거 결과도 대다수 여론조사 추이와 일치했다. 더욱이 야당의 문제제기 자체가 내부자 제보에 따른 것이듯, 국정원 내부에서 조직적인 선거부정을 시도했을 개연성도 낮았다. 그런데도 경찰은 축소수사 의혹은 물론이고 여당과의 사전조율 의혹을 피하지 못했다. 검찰이 국정원법 위반을 넘어 선거법 위반 사건으로 다룬 직후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혼외 친자 의혹이 터져 나온 것도 공교로웠다. 공소장 변경과 겹친 검찰의 항명 파동은 의문을 더욱 키웠다. 검찰 문제는 내부의 주도권 다툼이나 특정지역 출신의 세력확장 기도가 배경이라는 관측도 있지만, 댓글 사건이 직접적 계기라는 점에서 따로 떼어보기 힘들다. 그 결과 댓글 사건이 투표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퍼져나갔고, 야당의 대선 불복 조짐까지 나타났다. 야당은 말로는 불복이 아니라지만, 연기를 피우다 보면 언제 불길이 솟을지 알 수 없다.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못 막을 지경이 된 셈이다.

 


현재 박 대통령이 맞은 위기는 이명박 정부가 광우병 파동으로 겪어야 했던 신뢰의 위기만큼이나 심각하다. 아직은 야당조차 함부로 입에 담지 못하지만, '부정선거로 탄생한 정권'이라는 인식의 씨앗이 뿌려진 것만으로도 지도력 위기의 핵심인 신뢰의 위기가 아닐 수 없다. 댓글이 투표에 미친 영향을 구체적으로 검증할 길이 없다는 점은 더욱 심각하다. 자신은 깨끗하고 정당하게 집권했기에 특별히 사과할 일이 없고, 국민은 반드시 진실을 알아 줄 것이라는 소극적 대응의 결과다. 그러니 이런 불신의 확대 구조를 끊고, 흔들리는 국민의 믿음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적극적 행동이 필요하다. 그 동안의 미적지근했던 사과와 달리 문제를 허술히 다뤄온 데 대해 국민에게 직접 사과하고, 이미 의혹의 핵으로 떠오른 법무장관을 경질하는 등의 상징적 조치로 반대파들에 공격의 빌미를 주지 말아야 한다. 진정한 원칙주의자는 자신과 자신의 주변에 대해 우선 혹독한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