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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오덕 2014. 6. 28. 16:06

 

[@뉴스룸/이재명]대통령의 발바닥

기사입력 2014-06-26 03:00:00 기사수정 2014-06-26 03:00:00

 

이재명 정치부 차장

 

지난주 박근혜 대통령을 따라 방문한 투르크메니스탄은 이름만큼 낯선 국가였다. 수도 아시가바트(구칭 아슈하바트)는 ‘하얀 도시’다. 미사여구가 아니다. 거의 모든 건물이 하얀 대리석으로 지어졌다. 세계에서 하얀 건물이 가장 밀집한 곳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됐을 정도다. 어둠이 깔리자 모든 건물이 휘황찬란한 조명으로 물들었다. 도시 전체가 놀이공원 같았다. 석유와 가스가 풍부해 전기가 공짜라니 밤마다 빛의 축제를 여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낯설다 못해 기괴한 제도도 많았다. 그 나라 국민은 금니를 할 수 없다. 뉴스 진행자의 화장도 금지돼 있다. 전임 대통령의 지시다. 금니를 한 한 여대생의 발표를 듣다가, 남성 앵커의 짙은 화장이 눈에 거슬려 내린 결정이란다.

이런 낯선 곳에서 더 강렬한 낯섦을 만났다. 정상회담 때였다. 우연찮게 박 대통령의 발바닥을 봤다. 탁자 밑에서 구두를 살짝 벗고 있었다. 일부러 탁자 밑을 봤다면 국가원수 모독죄로 잡혀가도 할 말이 없다. 하지만 불가피했다. 박 대통령 뒤에서 두 정상의 대화를 노트북으로 받아치는데 기자가 앉을 의자는 없었다. 결국 바닥에 주저앉았고 탁자 밑이 훤히 보였다.

박 대통령도 발에 땀이 나면 구두를 벗을 수 있다는 당연함이 낯설게 다가오는 건 그의 반듯한 이미지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 이미지는 점점 변질돼 그가 발 딛고 있는 땅이 우리와 같은 곳인가 하는 의구심마저 들게 한다.

중앙아시아 순방 중 관심은 온통 국내에 머물렀다. 문창극 전 국무총리 후보자의 사퇴 여부 때문이다. 그러자 박 대통령은 순방 중 외교에 집중하고 귀국 후 결정하겠다고 선을 그었다. 귀국 사흘 만에 문 전 후보자는 사퇴했다. 그래서 모든 게 정리됐나?

정반대다. 박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때보다 더 큰 위기를 맞고 있다. 바로 보수층의 실망이다. 문 전 후보자를 옹호한 보수층은 박 대통령이 비겁했다고 쏘아붙인다. 박 대통령의 정치적 자산인 원칙과 신뢰마저 금이 가고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광우병 괴담 전선(戰線)에서 시위대의 ‘아침이슬’을 들으며 자책했다고 밝히자 보수층이 등을 돌릴 때와 흡사하다.
 
왜 이런 상황을 맞았을까. 박 대통령의 지지층조차 답답할 것이다. 새누리당의 당권 주자인 서청원 의원은 왜 문 전 후보자의 사퇴를 종용했나? 이완구 원내대표는 왜 손을 놔버렸을까? 박 대통령은 이들을 설득하려고 노력했나? 박 대통령은 문 전 후보자에게 직접 양해를 구했을까? 모든 게 의문이다. 그런데도 문 전 후보자가 사퇴하자 박 대통령은 “인사청문회는 열려야 한다”는 ‘뒷북 소회’를 내놨다. 이게 ‘문창극 사태’에서 박 대통령이 보인 유일한 소통이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총리직을 수락할까. 박 대통령이 총리 후보를 국민 앞에 직접 선보이며 이해를 구한다면 모를까. 자신이 직접 야당에 협조를 구하겠다고 약속하면 모를까. 자신의 발바닥까지 보여주겠다는 각오가 없다면 새 총리 인선은 더 깊은 수렁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