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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어는 것이 최고의 가치이다

신오덕 2014. 7. 3. 10:16

[역사의 향기] 목민관 정약용
기사입력 2014.07.01 17:26:10 | 최종수정 2014.07.01 18:2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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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7년 윤6월, 다산 정약용이 황해도 곡산부사로 부임하는 길에 한 남자가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사내의 이름은 이계심(李啓心). 전임 수령 시절 1000여 명의 주민을 이끌고 수령에게 거칠게 항의하다 관군을 피해 산으로 도망갔다던 사람이었다. 당시 한양에서는 이계심이 곡산부사를 들것에 담아 객사에 버렸다는 소문이 나돌기까지 했다. 배우지 못하고 가진 것 없는 천한 백성들이 지엄한 수령에게 신체적 형벌을 가했다는 소문 때문에 양반 사대부들은 분노가 극에 달했다. 이에 조정에서는 민란을 일으키고 산으로 도주한 이계심을 잡기 위해 훈련도감을 포함한 오군영의 군사들까지 파견했지만 번번이 그를 잡는 데 실패했다.

그랬던 그가 제 발로 정약용 앞에 나타난 것이다. 정약용은 이계심을 포박하거나 목에 칼을 채우지 않고 관아로 데려가 갑자기 나타난 연유를 물었다. 이계심은 정약용에게 백성들의 고통을 낱낱이 적은 12조목을 건넸다. 거기에는 정약용 부임 직전 서리들이 포보포(砲保布ㆍ포군에게 내는 군포) 대금으로 200전을 걷어야 하는데 백성들에게 무려 900전이나 걷어 뒤로 빼돌린 사실이 적혀 있었다. 이에 백성들의 원성이 이어졌고 이계심이 우두머리가 돼 1000여 명을 모아 관에 들어와 호소한 것인데, 오히려 죄인으로 몰려 고통을 당했던 것이다. 정약용은 여러 정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곧바로 이계심에게 무죄 방면을 내렸다. 그러면서 "한 고을에 모름지기 너와 같은 사람이 있어 형벌이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만백성을 위해 그들의 원통함을 폈으니, 천금은 얻을 수 있을지언정 너와 같은 사람은 얻기가 어려운 일이다. 오늘 너를 무죄로 석방한다"고 말했다.

이계심의 무죄 석방 소식이 알려지자 백성들은 반겼지만, 조정에서는 수령의 귄위를 붕괴시켰다고 그를 파직해야 한다는 정쟁까지 일었다. 하지만 현군인 정조가 정약용을 칭찬하면서 정쟁은 일단락됐다. 정약용의 판결은 관청이 백성 위에 군림하는 권위적 지배태도를 거부하고, 목민관의 임무야말로 백성의 고통을 해결해 주며 살길을 열어 주는 것이라는 근본적인 깨달음을 준 사건이다. 7월 1일부터 민선 6기 지방자치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모름지기 대한민국의 지자체장들이라면 시ㆍ도 규모가 크든 작든 간에 정약용의 목민관을 가슴 깊이 새기고 주민을 위한 참된 행정이 과연 무엇인지 한 번 더 생각해 실천해 주기 바란다.

[김준혁 한신대 正祖교양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