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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만남에서 새로움을 찾아라

신오덕 2014. 8. 21. 13:42

 

[동아광장/정지은]우리 지금 만나~

 

입력 2014-08-16 03:00:00 수정 2014-08-16 03:00:00

 

정지은
사회평론가

 

얼마 전의 일이다. 아버지가 진지하게 물어오셨다. “너도 더 늦기 전에 결혼정보업체에 등록해보는 게 어떠니?” 갑자기 풋, 웃음이 터졌다. 그 덕에 일부러 결혼정보업체의 신문 광고를 찾아봤더니 광고문구가 ‘사람이 그리운 청춘들… 가족과 만남의 가치 더 많이 알려야’다. 문구 자체는 참 맞는 말인데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는 게 문제다.

그 광고를 살펴보면서 몇 해 전 여름 풍경이 겹쳐 떠올랐다. 20대 여자 셋이 떠난 남녘 여행이었다. 순천만을 구경하고 벌교에서 꼬막을 먹고 보성 녹차 밭을 들러 여수 밤바다를 거니는 코스였다. 그런데 며칠이 지났을까. 어딜 가도 우릴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갑론을박하다 결국 우리가 내린 결론은 “동네에 젊은 여자들이 없어서 그렇다”였다. 사실 대도시에서는 여자 셋이 돌아다니는 게 전혀 특별한 일이 아니다. 그런데 기억을 더듬어보니 시내에서 우리 또래의 여성을 본 일이 거의 없었다. 우리처럼 셋이 같이 다니는 건 더욱 없었다. 버스를 타든, 거리를 걸어 다니든, 식당에 가든 마찬가지였다. 눈 씻고 찾아봐도 교복을 입은 학생 아니면 아기를 들쳐 업은 젊디젊은 엄마들뿐, 말 그대로 ‘아가씨’가 없었다.

아가씨들은 다 어디로 간 걸까? 답은 분명하다. 도시로 떠난 거다. 실제 안전행정부의 2014년 5월 인구현황을 살펴보면 서울이 전국에서 남녀 대비 여성의 비율이 가장 높고(여성이 1일 때 남성이 0.97), 남성 대비 여성의 수도 가장 많은 도시다. 게다가 서울 지역 아르바이트 노동자의 평균 시급은 5653원으로 전국 평균인 5448원보다 205원 높고, 강남 3구(강남, 서초, 송파)의 평균 시급은 5794원으로 서울 평균보다 141원 많다는 조사 결과도 나와 있다. 전국 평균 시급보다는 346원 높은 셈이다. 채용 공고가 가장 많았던 곳도 강남 3구로 전체 공고의 25% 정도를 차지했다.

사실 연애의 기본은 만나는 거다. ‘하늘을 봐야 별을 따는’ 것처럼 스쳐 지나가기도 하고 마주치기도 해야 역사가 시작될 테니까. 하다못해 층간소음 분쟁을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도 아이를 데려가는 거라지 않는가. 일단 아이의 얼굴을 보고 나면 항의하고 싶을 때마다 아이의 얼굴이 저절로 떠오르고, 그러면 그때 본 아이가 뛰고 있으려니 싶어서 약간은 낫다고 한다. 만나서 이야기하는 것은 그래서 중요하다. 서로의 존재를 알게 된 여우가 어린왕자가 올 시간을 기다리며 행복해했듯. 아무리 큰 조직이라도 아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는 곳과 없는 곳의 느낌은 천양지차인데 연애야 말해 무엇 하겠는가.

그런데 요즘은 ‘아는 사람’ 만들기가 쉽지 않다. 일단 사람과의 만남 자체를 부담스러워하는 사람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젊은 세대일수록 전화보다는 e메일, e메일보다는 문자 혹은 카톡을 선호하는 비율이 높다. 웬만한 용건은 미팅이나 전화 대신 e메일이나 문자로 처리한다. 기록이 남으니 나중에 다른 소리 하기 힘들다는 거다. 주문 전화 할 필요 없는 배달앱으로 음식을 배달시켜 먹는 것은 물론이고 배달원과 마주치는 것도 싫어서 아예 배달앱 내에서 결제까지 끝내는 사람도 많다. 깔끔하고 편리하지만 1% 부족한 느낌이 드는 건 나뿐일까.
곤란한 상황이 생기면 만나서 이야기하는 대신에 어떻게든 연락을 하지 않거나 대면하지 않고 도망가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도 그렇다. 헤어지자는 말조차 만나서 하지 않고 카톡이나 문자로 하는 사람이 그렇게 많다고 하지 않는가. 헤어지려고 생각하고 만났다가도 다른 일이 생기면 마음이 바뀔 수 있는 게 사람인데 아예 그럴 여지를 차단하는 거다. 워낙 파견과 용역이 일상화된 업종에서는 해고 통보를 문자로 받는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니라니 그거야말로 놀랄 노자다.

모든 역사는 누군가와의 만남으로부터 시작된다. ‘케미’(사람 사이의 화학반응·남녀 간에 강하게 끌리는 감정을 주로 지칭함)가 잘 맞는지 전화 통화나 문자로 확인할 수는 없는 법이니까.

정지은 사회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