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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실패에서 배우고 전진하라

신오덕 2014. 10. 13. 14:17

 

[매경시평] 한국이 `잃어버린 20년` 피하려면
기사입력 2014.10.12 18:12:47 | 최종수정 2014.10.12 21: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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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의 임기 5년 동안 일본 총리는 5명이 바뀌었다. 평균 임기는 1년을 20일 넘은 385일이었다.

1년마다 새 총리가 등장해 국정 운영을 처음부터 시작하는 `초기화`를 되풀이하다 보니 `잃어버린 20년` 탈출은커녕 외교력 저하로 이어졌다. 심지어 한국의 외교적 업적인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유치도 일본의 내정 불안이 보조변수로 작용한 게 사실이다. 2009년 봄 아소 다로 총리는 "G20 정상회의가 아시아에서 열린다면 일본이 우선"이라고 주장했지만 `정권이 곧 바뀔 텐데 무슨 소리냐`는 반론에 부딪혀야 했다.

이 무렵 발생한 도요타자동차 대량 리콜 사태(2010년)도 일본 국내 정치를 빼고는 설명하기 어렵다. 아소에 이어 집권한 하토야마 유키오 민주당 정권이 오키나와의 후텐마 미 공군기지 이전을 놓고 미ㆍ일 외교 갈등을 빚는 와중에 미국 의회와 정부, 언론이 함께 `도요타 때리기`에 나선 것이다. 그 여파로 도요타는 세계 1위 자리를 내놓아야 했다.

정치가 제 기능을 못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는 1997년 외환위기 때 우리도 몸으로 겪었다. 그해 연초 한보 부도 사태 이후 곳곳에서 경고 신호가 울렸지만 청와대는 대통령 아들 구속으로 `뇌사(腦死) 상태`였다. 여기에다 대통령선거를 앞둔 야당의 발목 잡기로 기아 사태 처리와 금융개혁법안 통과가 무산되자 국제신인도가 급락해 외국 자본의 대량 이탈 사태가 터졌다. DJ는 대통령이 되고 나서야 금융개혁법안의 골자인 금융감독 기능 통합을 단행했다.

그래도 한국 정치는 한때 일본에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1990년대 `일본열도 개조`를 주창했던 오자와 이치로가 자민당 장기 집권의 토대였던 중대선거구제도를 소선거구제로 바꾸는 정치 개혁을 추진하며 염두에 뒀던 모델 중 하나도 한국이었다. 필자도 일본 지인들이 YS의 금융실명제, DJ의 남북정상회담, MB의 금융위기 극복 등을 예로 들며 "한국의 정치 리더십이 부럽다"는 얘기를 하는 것을 종종 들었다.

그러나 이제는 모두 과거의 얘기다. 특히 세월호 사태 이후 5개월여 동안 `입법 제로`의 정치 부재 상황을 지켜보면서 한국 정치는 일본이 본받지 말아야 할 반면교사(反面敎師)가 됐다. 오히려 우리가 `세 개의 화살`을 앞세운 아베 신조의 과감한 경제 회생 대책을 벤치마킹해 재정지출 확대를 통한 경기 부양에 나서고 있는 판이다.

한국 정치의 경쟁력은 얼마 전 발표된 세계경제포럼(WEF)의 2014년 국가경쟁력평가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144개국을 상대로 한 평가에서 정치인 신뢰는 112위, 규제 개선은 113위. 그것도 대통령이 TV 생중계를 하는 가운데 마라톤 규제 개혁 장관회의를 두 차례나 주재한 끝에 받아든 참담한 성적표다.

요즘 부쩍 `대중국 수출 의존도가 높은 철강 석유화학 등 주력 수출 산업에 적신호가 켜졌다`는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이처럼 한국 경제가 `어떻게든 성장해나갈 것`이라는 환상에서 이제 깨어나야 한다는 경고가 곳곳에서 들린다. 문제는 창조경제가 됐든, 신경제가 됐든 새 진로를 모색하는 과정에서 필수불가결한 요소인 정치의 기능 회복이 아직도 요원하다는 점이다.

때마침 여야는 2016년 총선, 2017년 대선을 겨냥해 혁신 경쟁에 나서고 있다. 모든 것을 정치로 귀결시키는 환원주의(reductionism)로 치부해도 좋지만 그 논의의 중심을 부디 보여주기식 `혁신쇼`가 아닌 정치의 생산성과 경쟁력 회복에 뒀으면 하는 바람이다. 나중에 `잃어버린 20년`이 그때 시작됐다는 얘기를 듣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는 꼭 필요한 일이다. 결국은 정치 경쟁력이 국가 경쟁력이기 때문이다.

[이동관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