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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헌 뇌관을 조심스럽게 다루어라

신오덕 2014. 10. 24. 14:28

[매경데스크] 내년 개헌논의 `을미경장` 되려면
기사입력 2014.10.23 17:34:18 | 최종수정 2014.10.23 19: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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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한(漢)나라는 썩은 나무와 똥이 뒤덮인 담장과 같아서 잘 다스릴 도리가 없습니다. 거문고 소리가 조화를 못 이루면 마땅히 줄을 풀어 고쳐 매야 하는 법입니다." 중국 한나라 유학자 동중서는 무제에게 나라 기틀을 다시 세울 사회ㆍ정치 개혁안을 제시했다. 대개혁을 뜻하는 `해현경장(解弦更張)`이라는 고사성어가 여기서 유래했다.

쇠락해 가던 조선 중기에 율곡 이이는 임금이 귀찮아 할 정도로 `경장(更張)`을 입에 달고 다녔다. 건국 후 200여 년이 지나면서 관리들은 부패했고, 조세 군정 등 각종 제도도 시대상에 뒤처졌다는 이유에서였다.

현대판 경장은 바로 개헌이다. 정치권이 슬슬 불을 때기 시작한 2015년 개헌이 성사되면 `을미경장(乙未更張)`이라는 별칭이 붙을지도 모른다. 가깝게는 청와대 권력 구도 등 정치 지형에, 멀게는 통일 방식 등 남북 관계에도 엄청난 변화를 몰고올 수 있다. 검경 수사권 재조정이나 국회를 세종시로 이전하는 문제 등 개헌 밥상에 올려야 한다는 안건이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개헌파들이 내년을 거사 시점으로 꼽는 것은 모처럼 전국 선거가 없는 이유가 크다. 2016년 4월엔 총선이, 2017년 12월엔 대선이 대기 중이어서 내년에 못하면 또 차기 정권으로 넘어갈 공산이 크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베이징에서 뜬금없이 개헌 뇌관을 건드린 것도 이런 정치 스케줄을 염두에 뒀기 때문으로 보인다. 파장이 커지자 "더 이상 개헌 얘기는 않겠다"며 황급히 주워 담았지만 여전히 그는 개헌론자다. "선거에서 이긴 대통령이 권력을 독점하는 소위 `All or Nothing` 게임에선 적을 죽여야 내가 산다. 야당에서 `경제가 망해야 우리가 집권한다`는 극단론이 나오는 이유다. 해서 국민이 직접 뽑는 대통령과 다수당 의원들이 선출하는 총리가 권력을 적절히 나누는 오스트리아식 이원집정부제가 바람직하다. 소수당이 묵살당하지 않으려면 유럽형 연정과 다당제 도입도 시급하다." 김 대표가 `대통령 5년 단임제`를 근간으로 하는 1987년 헌법을 고쳐야 한다고 주장하는 핵심 논리다.

개헌파 원조 격인 이재오 의원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선진국 가운데 우리나라 대통령이 가장 세다"고 비판한다. 심지어 박근혜 대통령마저도 2012년 대선 후보 땐 소극적이나마 개헌에 찬성론을 폈다. 당 경선후보 토론회 때 "전부터 4년 중임제를 지지해왔다. 부패 문제나 정책 연속성 등 여러 가지를 생각할 때 그렇다"고 밝혔다. 개헌 자체를 부정한 것은 아니었다는 얘기다.

하지만 문제는 역시 타이밍과 우선순위다. 박 대통령이 최근 "개헌은 경제의 또 다른 블랙홀"이라고 강조한 메시지는 분명하다. 100여 개 경제살리기 법안이 아직 하나도 제대로 국회를 통과하지 못한 상황에서 막상 개헌 논의가 시작되면 모든 게 뒷전으로 밀릴 것을 염려한 것이다. 세월호특별법 합의를 이끌어내는 데만 3개월을 허비한 국회이니 충분히 나올 법한 지적이다. 오죽하면 김태호 최고위원이 사퇴의 변으로 "대통령이 경제살리기 골든타임을 외치는데, 국회는 개헌 골든타임이라며 염장을 지른다"고 일갈했을까.

설사 내년에 국회 개헌 논의가 봇물을 이룬다 해도 대통령이 소극적이라면 의원 3분의 2 동의를 이끌어내기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개헌을 성사시키기 위해서라도 경제살리기법안 처리가 우선이라는 얘기다.

개헌파들이 대통령 결단보다 더 신경을 써야 할 최우선순위가 있다. `개헌을 하면 과연 내 살림살이가 조금이라도 나아질까` 민초들의 이 단순한 질문에 `그렇다`고 자신 있게 답할 용기와 끈질기게 설득할 인내가 바로 그것이다.

율곡이 그렇게 경장을 외친 것도 각종 공물과 부세 제도를 개혁해 결국 백성들을 경제 파탄에서 구해내기 위해서였다.

[설진훈 정치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