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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비록의 사례에서 배워라

신오덕 2015. 4. 1. 15:38
[역사의 향기] 청백리 유성룡
기사입력 2015.03.31 17:35:50 | 최종수정 2015.03.31 17:3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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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8년(선조 31년) 10월 2일, 징비록(懲毖錄)의 저자로 유명한 영의정 유성룡(柳成龍)이 사의를 표명한다. 그는 처참했던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끄는 데 크게 공헌한 인물이지만, 선조는 늘 그를 견제했다. 유성룡이 백성들의 지지를 한 몸에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선조의 속마음을 알고 있던 유성룡의 반대 세력들은 성균관 유생이었던 정급을 내세워 그를 부정 축재자로 몰아세웠다. 유성룡이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공공연히 뇌물을 받고, 친척들을 관직에 진출시켰으며, 훈련도감의 군사들을 훈련시킨다는 명목으로 군 자금을 받아 이를 횡령했다고 한 것이다. 그리고 서울의 자택이 소박해 보여도 안동의 본가에는 선물 꾸러미가 줄을 잇는 등 엄청난 재산이 쌓여 있다고 했다. 전란으로 백성 모두가 고통에 빠져 있는데 유성룡만 재산을 증식했으니 당연히 파직돼야 한다는 논리였다. 정급의 상소가 올라오자마자 사간원과 사헌부 등 서인 세력 모두 유성룡의 파직을 요청했고, 선조는 한 달 만에 그를 파직했다.

그런데 조정과 달리 이 소식을 접한 백성들의 분노는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검소하고 소탈한 유성룡의 실제 모습을 가까이서 보았던 백성들은 그가 청백리였을 뿐만 아니라 나라를 구하기 위해 온몸을 바쳤던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백성들은 유성룡을 탄핵한 서인 세력들을 욕하기 시작했고, 이런 분위기가 확대되자 서인의 중심 인물인 이항복이 나서 유성룡이 청백리였음을 인정하고 백성들의 심기를 달래기에 이른다.

얼마 전 정부가 고위 공직자들의 재산 신고 내역을 공개했는데, 전체의 절반 정도가 우리나라 상위 5%의 부자이고,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작년 한 해 동안 10명 중 7명의 재산이 증가했다고 한다. 1인당 평균 9540만원이 늘어난 셈이다. 계속되는 불황 속에서 서민들은 내 집 한 채 마련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인데, 고위 공직자들은 부동산으로 재산을 차곡차곡 늘려가고만 있으니 과연 이들이 국민의 어려움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 싶다. 대한민국의 공직자들 모두가 청백리가 돼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부디 자신의 권력과 지위를 이용해 재산을 늘리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김준혁 한신대 正祖교양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