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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철과 신념
처세의 기본을 알고 나아가라 본문
삼국지에서 가장 저평가된 인물을 찾아라
<삼국지>는 가히 인재의 보고이다. 수많은 영웅호걸이 탄생하고 신화가 만들어진 공간이다. 그 중에서 가후라는 인물은 너무나 저평가되어 오히려 주목을 받는다. 그는 조조의 휘하에 들어가기까지 무려 5명의 주인을 바꾸면서 전란의 시대를 살았지만 그 어떤 사람에게도 공격받지 않고 77세에 자신의 집 안방에서 죽음을 맞이한 독특한 인물이다. 후대는 그를 삼국시대, 진정한 처세의 달인으로 평가하고 있다.
여기 한 직장인이 있다. 평범한 시골 출신에 집안은 그저 그런 형편으로 밥이나 겨우 먹고 사는 처지다. 우여곡절 끝에 지방대를 졸업했다. 조그만 회사에 취직했지만 뛰어난 능력으로 덩친 큰 경쟁사에게 치명타를 입히는 공적을 세웠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회사는 경쟁사에 M&A 당했다. 이런 정도의 이력이라면 그의 앞날은 뻔하다. 어디 한직으로 발령 난 뒤 ‘왕따’ 비슷한 처지에 놓이다가 몇 달을 버티지 못하고 스스로가 사표를 던지고 나가는 수순일 것이다. 하지만 그는 회사에서 주변의 누구도, 어디에도 적을 만들지 않으면서 회장의 각별한 신임 하에 승승장구했다. 부장으로 시작해 이사에 상무, 전무 그리고 계열사 사장까지 승진을 거듭했고 회장의 아들인 부회장이 회장이 될 때까지 2대에 걸쳐 사장으로 근무하며 그야말로 직장인으로서는 천수를 누렸다. 이 정도면 가히 처세의 달인이라 할 만 하다.
그가 바로 <삼국지>의 숨은 책략가 가후이다.
<삼국지>의 저자 진수는 ‘가후는 책략과 안목이 뛰어난 인물’이라며 높이 평가했다. 하지만 <삼국지연의>나 송나라 이후 주자학이 번창한 시기에 이르러 군신간의 의리, 신의를 중시하는 유교적 기준으로 인해 가후는 세를 저울질 해 주인을 바꿔 타는데 재주가 있는 모사꾼 정도로 평가절하 받았다. 하지만 가후는 천하대란의 시기에 무려 주인을 5번이나 바꾸면서도 77세까지 천수를 누리는 가히 복 받은 인생을 산 주인공이다. 그의 이런 이면에는 그야말로 피눈물 나는 처세의 원칙과 자신만의 엄격한 기준이 있었다. 이 점을 들여다 본다면 현대 사회에서 직장인들이 배워야 할 처세학의 표본이 될 것이다.
특히 가후에게서 돋보이는 것은 별 볼 일 없는 스펙, 내세울 것 없는 출신 성분, 회사에 막대한 피해를 입혔던 과거까지 온갖 불리함과 부족함 투성이를 극복한 비결이다.
뛰어난 순발력과 임기웅변의 달인
가후는 147년, 중원과는 너무도 멀리 떨어진 무위군에서도 변방인 고장현에서 태어났다. 출신 성분이 명문세가가 아니었던 탓에 젊은 시절에는 주위의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타고난 영특함으로 관직에 오르지만 재주에 비해 운도 따르지 않았고 게다가 병까지 얻어 고향으로 돌아간다. 여기서 가후의 능수능란한 임기웅변이 돋보이는 일화가 탄생한다.
고향으로 돌아가던 가후는 변방의 반란세력인 ‘저족’에게 사로잡히게 된다. 가후는 꾀를 낸다. 목숨이 위태로운 지경에 빠졌지만 특유의 침착함을 잊지 않았다. 가후는 당시 막강한 힘으로 저족을 타격, 저족 모두의 심장을 서늘하게 한 ‘단영’이 자신의 외할아버지라고 거짓말을 한다. 한 술 더 떠 저족의 족장에게 자신을 죽이더라도 다른 사람과 따로 매장했다 나중에 단영에게 자신의 시체를 주면 큰 돈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 말한다. 이에 단영의 후환이 두려웠던 저족의 족장은 가후를 살려준다.
몇 년 뒤 가후는 동탁의 사위의 부하로 들어가면서 관직을 맡는다. 하지만 동탁은 왕윤에 의해 살해당하고 동탁의 부하들인 이각과 각사는 각기 군대를 해산하고 도망갈 궁리를 한다. 이때 가후가 나서서 이각과 각사를 설득해 왕윤을 공격하게 하고 정권을 장악한다. 물론 ‘천자를 받들어 천하를 편하게 한다’는 명분을 세운다. 이각과 각사는 황제를 볼모로 권력을 손에 거머쥐자 그 공로로 가후에게 제후의 직을 하사하지만 가후는 받지 않는다. 그 후 가후는 자신의 거취를 놓고 고민, 결국 이각과 각사의 사람됨과 그릇이 자신이 모실 수 있는 수준이 아님을 판단한다. 가후는 벼슬을 버리고 화음의 단외에게 몸을 의탁하지만 곧 단외의 곁도 떠난다. 단외 역시 가후를 부릴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가후가 찾은 이가 바로 남양의 장수이다. 이때부터 가후는 장수를 도와 책사로 전국구에 이름을 떨치게 된다. 그 시작이 바로 조조와의 싸움이다.
조조는 장수를 치기 위해 군대를 이끌고 호기롭게 출전하지만 가후의 계략에 말려들어 자신의 아들인 조안민, 조카 조앙 그리고 아끼던 장수 전위까지 잃고 거의 죽을 지경에까지 떨어졌다가 겨우 목숨만 부지하는 참패를 당한다. 조조에게 이제 장수는 물론 그의 1급 참모인 가후도 철천지 원수가 되었다.
하지만 역사는 돌고 도는 것. 조조에게는 넘어야 할 산이 있었다. 바로 원소의 존재이다. 원소는 명문가 출신으로 강력한 세를 유지하고 있는 당시 중원의 최강자였다. 장수는 가후의 조언대로 유표와 동맹을 맺고 단단하게 자신의 영지를 지켰다. 이때 장수에게 원소와 조조에게서 동시에 사신이 당도한다. 각기 자신과 동맹을 맺자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세력으로 판단한다면 당연히 조조보다 강력한 군대를 보유하고 있는 원소에게 가는 것이 올바른 판단처럼 보이겠지만 가후는 장수에게 조조에게 갈 것을 청한다. 한때 자신이 죽음의 지경까지 몰아넣었던 조조, 즉 호랑이 굴로 스스로 들어가자는 소리에 장수는 놀라지만 가후는 설득한다.
그리고 그 이유로 세 가지를 든다. 조조가 황제를 볼모로 잡고 있으니 명분에서 앞서는 것이 그 첫째이고 두 번째는 세가 부족한 조조에게 가는 것이 사람과 군사가 차고 넘치는 원소에게 가는 것보다 대접을 더 받을 것이며 마지막으로 조조는 원대한 야망이 있기에 개인적인 악연을 문제 삼지 않는 큰 그릇이기 때문이라는 평가였다.
이런 가후의 판단은 그대로 들어맞았다. 조조는 장수는 물론 가후까지 따뜻하게 맞아 주었다. 상식적으로 아들과 조카 그리고 아끼던 장수까지 죽인 적장을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 않았겠지만 조조 역시 영웅으로서의 풍모를 보인 것이다.
여기서부터 가후의 뛰어난 처세학이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다. 이미 조조에게는 막강한 참모 군단이 있었다. ‘이순’이라 불리는 순유와 순욱은 물론이고 정욱과 곽가, 양수 등 천하의 기재들이 그야말로 우글우글할 정도였다. 그 중 핵심은 단연 순욱이었다. 비록 조조를 모시고 있지만 한황실에 대한 충성심이 살아있고 정도와 신의를 중시 여기는 순욱은 조조도 함부로 대하지 않는 인품의 소유자였다. 그런 순욱의 눈에 동탁, 이각, 각사, 단외, 장수를 거쳐 조조에게 귀순한 가후는 자신의 유리함을 위해 주인을 바꿀 수 있는 가벼운 모사꾼에 불과했던 것이다.
이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조조 주변의 질투와 무시 속에서 가후는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해나간다. 그러다 가후가 본격적으로 솜씨를 보일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다. 바로 조조와 원소의 관도대전이다. 팽팽하게 마주한 조조와 원소는 장기전으로 접어들고 조조군은 점차 사기도, 군량도 떨어지고 있었다. 고민하던 조조는 가후에게 방법을 묻는다.
가후는 조용히 조조를 설득한다. “공께서는 원소에 비해 비범하고 용맹하며 결단력도 있어 필히 승리할 수 있습니다. 단지 너무나 신중한 나머지 시간을 허비하고 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조조는 별동대를 조직해 30여리 밖에 진을 치고 있는 원소를 기습한다. 대승을 거둔 이 전투로 인해 중원의 패권은 조조에게 기울게 된다.
이처럼 가후는 조조의 기를 살리는 조언을 하는데 타고난 재주가 있었다. 그렇지만 항상 간접적인 화법으로 자신의 의견을 전달했다. 그것은 타고난 성품도 있었지만 상사에게 직접적이고 단정적인 설명이 주는 장점과 함께 조언과 계략이 들어맞지 않았을 때 닥쳐올 부작용, 즉 실패에 대한 희생양으로 죽어간 수많은 사례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적벽대전을 앞두고 가후는 신중론을 펼쳤다. 조조 휘하의 모든 무장과 참모들이 100만 대군을 휘몰아쳐 단숨에 유비와 손권을 쓸어버리자고 한 목소리로 조조에게 큰소리를 칠 때 유일하게 가후만이 반대를 한 것이다. 가후는 조조에게 ‘덕으로 다스린다면 결국 형주도, 손권도 조조에게 머리를 굽힐 것’이라고 조언한다. 조조는 가후의 조언을 무시하고 강공을 펼치지만 그야말로 대패를 당해 위, 촉, 오의 삼국이 정립하는 빌미를 주고 만다.
후퇴하던 조조가 “곽가만 살아있었어도 내가 이 꼴을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라며 눈물을 흘렸다는 일화가 있지만 실상은 조조가 가후의 능력을 간접적으로 인정한 일화인 것이다.
훗날 왕위에 오른 조조는 후계자를 정하기로 결심하고, 우직한 조비와 시와 문에 능하고 살가운 셋째인 조식 사이에서 고민한다. 조조는 가후에게 묻는다. “누구를 후계자로 삼으면 좋겠는가?” 가후는 즉시 답하지 않는다. 함부로 다음 대권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는 것은 자칫 목숨과 바꾸는 말임을 잘 알고 있는 가후였기 때문이다. 조조가 재차 묻자 가후는 이렇게 답한다. “잠시 딴 생각을 했습니다. 바로 원소와 유표를 생각했습니다.” 그러자 조조는 웃으면서 “경은 항상 직접적으로 대답을 하지 않는구나. 무슨 뜻인지 알겠다”고 답한다.
가후는 원소와 유표가 후계자로 장남을 지목하지 않아 집안에 분란이 발생했음을 알리면서 자신의 뜻을 간접적으로 조조에게 전달한 것이다. 물론 가후는 조비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조비는 가후에게 모든 것을 상의했고 가후는 조비에게 조조의 마음을 움직이는 꾀를 알려주었다.
조조가 군대를 몰고 출전할 때마다 조식은 항상 ‘아버지를 생각하는 효심 넘치는 시와 글’로 조조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조비는 조식에 비해 그런 면에서 능력이 미치지 못했다. 가후는 조비에게 조조가 출전을 하면 아무 말 없이 그저 말고삐를 잡고 눈물을 흘리라고 조언했다. 자신이 출전할 때마다 한결 같이 눈물을 흘리는 조비를 보면서 조조의 마음도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했고 결국 조비가 조조의 후계자로 왕위에 오르게 된다.
나설 때와 물러날 때를 판단하라
이처럼 가후는 상황 판단과 정세를 분석하는 능력에서 남들보다 뛰어난 재주를 보였다. 가후의 가장 큰 장점은 그의 능력이 아니었던 것이다. 게다가 절개를 지키고 신의를 목숨처럼 생각하는 곧은 선비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것이 단점으로 작용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물처럼 유연하게 자신의 생각을 바꾸는 융통성에서 뛰어난 처신을 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가후는 자신이 나설 때와 물러서야 할 때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당연히 공을 다투는 논공행상에 나서지 않았고 위로는 순응하고 옆으로 시기와 질투를 경계해 사사로운 인맥을 형성하는 등 쓸데없는 세를 절대 과시하지 않았다.
가후는 나중에 태위라는 높은 벼슬에 오르지만 자식들의 결혼에도 조심했다. 권문세가의 많은 요청에도 가후는 자신보다 낮은 벼슬 그리고 평범한 집안과 사돈을 맺으면서 사람들에게 경계심을 심어주지 않았다. 또한 부를 축적하거나 명예에 집착하는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강하고 큰 목소리를 내거나 고집을 부리지도 않았다. 보통의 사람들은 이런 행위 자체를 남자다움 혹은 선비의 자세 그리고 자존감의 표현이라고 말하지만 가후는 그것을 쓸데없는 만용과 자존심이라 생각했다. 조직의 논리와 상사의 뜻이 일치되어 갈 때는 그것이 비록 돌아가는 길일망정 급하게 물길을 바꾸려는 무모한 짓을 하지 않았다. 바로 이 같은 가후의 처세학이 조조와 조비 휘하의 약 100여 명의 참모 중에서 77세까지 장수하는 행운을 누릴 수 있었던 비결인 셈이다.
한결같은 충성심과 절개와는 거리가 먼 인물처럼 보이는 것이 바로 가후이다. 하지만 가후는 자신이 누군가의 신하로 있는 순간에는 최선을 다해 그를 모셨다. 동탁의 경우는 직접 휘하에서 지휘를 받은 것도 아니었고 이각과 곽사는 오히려 가후의 능력 자체를 버거워 해 그를 부하로 삼을 수 있는 그룻이 아니었다. 단외나 장수 역시 마찬가지였고 조조만이 가후의 인물됨을 알아보고 부릴 수 있는 상관이었던 셈이다. 그러니 가후를 배신과 변절의 일생을 보낸 것처럼 바라보고 그의 역할을 과소평가하는 것은 순전히 후대 사가들의 개인적인 선호에 의한 것이다. 정사에 가까운 글을 썼던 진수는 가후에 대해 상당히 후한 평가를 내렸고 후대의 일부 사가들은 가후를 삼국시대에 활약했던 많은 영웅호걸 중에서 제갈량보다는 한 수 아래이지만 순욱과 순유와 동급으로 여기기도 했다. 물론 그 아래인 정욱과 곽가와 비교하는 경우가 더 많았지만 그만큼 가후는 저평가되었고 그것이 가후가 편안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역설적인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나’보다 ‘우리’ 그것이 처세의 기본이다
직장에서 우리는 흔히 ‘실세’라는 표현을 쓴다. 오너의 신임을 받고 있는 특정 임원들을 이르는 말이지만 오해하지 말자. 회사의 실세는 오로지 오너 한 사람뿐이다. 나머지는 오너가 나누어준 일정한 권력의 대리자일 뿐이다. 그들 역시 한밤중에 걸려오는 오너의 전화벨 소리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는 고백을 하곤 한다.
직장은 때와 장소를 가려야 하는 가장 예민한 공간이다. 주관적인 생각을 발표하는 것, 특정한 사안에 대해 찬성과 반대를 표하는 것, 누군가와의 대화에서 상사나 동료를 안주 삼는 것은 금기다. 농담과 진담의 구분을 모호하게 하면서 점점 양치기 소년처럼 변해가는 것, 학연·지연 등 갖가지 이유로 파벌을 만드는 것, 자신의 주장에서 한 치도 물러서지 않는 것, 자신의 권리만 주장하고 의무와 희생 그리고 팀워크라는 단어를 잊어버리는 것…. 이런 모든 것들은 때와 장소를 가려야 하는 직장 생활에서 먼저 생각해야 할 상황들이다.
가후는 불리함을 극복했다. 물론 조조의 큰 그릇과 야망을 파악했기에 그에게 투항해도 목숨을 부지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것은 모험이었다. 조조는 당연히 가후를 받아들이면서 천하의 인재들에게 ‘하물며 가후도 받아들이는데’라는 인식을 심어주는데 성공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모을 수 있었다. 그 표본이 가후가 된 것이고 가후는 기꺼이 그 표본의 역할에 충실했다.
정규직 공채에 일류대는 물론 해외 유학파가 우글거리는 직장에 지방대 출신 경력직의 이력으로 이직한다는 것은 출세는커녕 생존의 가능성마저 희박한 것이 실제 상황이다. 하지만 이런 불리함을 지렛대로 삼아 승진가도를 달릴 수 있는 비결의 최선은 주변의 인식을 바꾸는 것이다.
‘설마 했더니 역시야’, ‘쓸데없는 소모품이야’, ‘일에는 관심 없고 오로지 살려고 줄만 찾는구만’ 등 이런 선입견으로 가득 찬 사무실의 나를 향해서 날아오는 날카로운 뒷담화를 뒤집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바로 가후의 처세학을 이용해야 한다.
‘나서지 말라,
공을 다투지 말라,
반항의 이미지는 독약이다,
작은 인연을 인맥으로 만들려 하지 말라,
자신의 생각을 누군가에게 강요하지 말라,
직접적인 표현으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지 말라,
회사를 심심해서 다니는 것처럼 가볍게 행동하지 말라,
남에 대한 평가를 쉽게 하거나 그 생각을 옮기지 말라’가
바로 핵심이다.
그렇다. 어쩌면 처세학을 그저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속마음을 숨기고 조금은 비굴해지라는 말과 동의어로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조금만 다른 각도로 처세학을 바라보면 처세의 달인들에게서 공통점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바로 나만, 내 생각만, 내 이익만이 아닌 나와 네가, 그리고 전체가 같이 가는 공존의 미덕이다. 직장은 도를 닦고 각성을 하거나 철학의 깊은 관념에 빠지는 곳이 아니다. 직장은 오로지 과정을 통해 결과를 만들어내야 하는 공장인 것이다.
지금, 당신의 상사가 당신에게 야단을 치거나 업무에 대해 깐깐한 지적질을 한다면 걱정을 덜고 안심하라. 그것은 당신의 ‘노 젓기’를 일단 인정하는 것이다. 오히려 당신에게 무관심하거나 새로운 일에 대한 업무 지시가 끊기거나 ‘오피셜한’ 관계가 더욱 ‘예의와 질서’ 하에서 이루어진다면 긴장해라. 상사는 혹은 직장은 당신에 대한 발전 가능성과 조직원으로서의 자격에 대해 이미 부정적인 평가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가후가 지금 이 시대에 살고 있다면 어떤 모습일까. 그는 아마도 넘치는 혹은 모자라는 상사와 같이 일하더라도 그를 탓하지 않았을 것이고 동료들에게는 항상 품위와 겸손 그리고 능력 있지만 같이 가기를 권유하는 좋은 직장인일 것이다. 그런 직장인을 만나는 것도 사실은 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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