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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백이 술을 곁에 두고 명작을 남긴 것을 알아라

신오덕 2015. 8. 13. 11:23

[광화문에서/이동영]소주를 붙들어 매야 할 이유

이동영 사회부 차장

입력 2015-08-13 03:00:00 수정 2015-08-13 03:00:00

 

 

이동영 사회부 차장

 

한적한 경남 통영 바닷가 마을이었다. 어촌 체험 마을로 지정됐지만 식당은 하나뿐일 정도로 한적했다. 1층 식당을 세놓고 건물 2층에 사는 60대 내외는 평생 문을 잠그지 않아도 그날 전까지는 아무 탈 없이 지내 왔다. 남편은 주민 공동의 이익을 위해 어촌계장을 맡기도 했다.

 

이런 부부를 보며 주민들은 “바깥양반은 호인이고, 금실도 정말 좋았다”고 했다. 이 부부가 스물두 살 먹은 동네 청년이 휘두른 흉기에 무참히 살해됐다. 동네 어른에게 인사 잘했다던 청년은 경찰 앞에서 몸을 벌벌 떨며 자신이 왜 그런 짓을 저질렀는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떨궜다.

 


 범행 10시간 전인 9일 오후 5시부터 술을 마시기 시작한 이 청년은 자리를 3차로 이어 갔다. 10일 새벽 2시경까지 이어진 3차 술자리에서만 그는 소주 4, 5병을 마셨고 동석자로부터 외모 때문에 놀림을 당해 화가 났다고 했다.

 

그 앞뒤의 일은 기억하지 못했다. 새벽까지 엄청난 양을 마셨지만 대한민국 어떤 법규도 그의 폭음을 막지 못했다. 이게 작은 흥분을 통제불능 분노로 키웠고 엉뚱한 대상에게 범행을 저지르게 만든 건 아닌지…. 청년은 바지를 벗은 채 현장에서 나오다 경찰에 붙잡혔다.

어떤 상황에서든 이성을 가진 인간은 자유의지로 행동한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이태백이 술을 곁에 두고 명작을 남긴 것처럼. 하지만 ‘만취 상태에서…’로 시작되는 사건 기사는 매일 쏟아진다. 대학 신입생 환영회, 직장 회식, 동창회 등 어디든 술이 곁들여지고 과해지면 사소한 말싸움과 안전사고부터 성범죄까지 온갖 추태가 일어난다.

 

어둠이 깔리면 서울 광화문이나 기차역 주변, 해수욕장, 주택가 편의점 파라솔, 동네 놀이터에서도 태연하게 소주병을 꺼내 마시는 장면을 볼 수 있다. 밤늦게 올라탄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취한 채 소주병을 든 사람을 만나기도 한다. 물론 대낮에 마셔도 아무 탈 없다. 밥집에서도 소주를 무제한으로 팔고 손님이 시키면 근처 편의점에서 다른 술도 사다 준다. 금연 구역은 있어도 금주 구역은 없다. 소주의 천국, 음주의 유토피아 한국이다.

국민 건강을 위해 담배에는 ‘라이트, 연한, 마일드, 저타르, 순’과 같은 단어는 쓰지 못하게 법으로 금지돼 있다. 하지만 롯데의 소주 ‘순하리’는 아무 규제 없이 잘 판매된다. 소비자를 유혹하는 ‘참이슬’이나 ‘처음처럼’은 규제하고 ‘롯데소주’처럼 회사 이름만 쓰게 하면 어떨까.

담배가 유해물질이라면 술은 더 확실한 독극물로 봐야 한다. 들이마신 개인만 망가뜨리는 게 아니라 범죄로 이어질 위험성을 안고 있는 탓이다. 그런데도 소주를 비롯한 도수 높은 술의 이름, 판매 장소와 시간, 마실 수 있는 장소와 시간대 같은 규제는 논의조차 되질 않는다.

 

상인의 생존권도 중요하지만 국민 안전과 건강한 의식은 더 소중하다.

 

알코올의존증 환자 160만 명에, 과도한 음주로 인한 경제적 손실이 연간 20조 원이라는 통계를 무시할 순 없다.

 

미국의 상당수 주에서는 공공장소에서 빈 술병만 들고 다녀도 처벌하고 영국에서는 최근 알코올이 약간 함유된 탄산음료까지 규제할 움직임을 보일 정도다.

이제 소주나 도수가 그 이상인 술은 허가받은 전문 취급점에서만 판매하게 규제하고 길거리나 공공장소에서 술을 마시면 처벌하는 규정도 만들어야 한다. 주식거래에서 나오는 세금(연 3조 원)과 비슷한 규모로 술에서 세금이 나오기 때문에 정부가 주류 업계와 관련 규정에 손댈 생각이 없는 건 아닌지 의심스럽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