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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론을 먹고 건강하라

신오덕 2015. 8. 19. 15:18

멜론은 서양 참외다. 향긋하고 달콤해서 인기가 높다. 특히 요즘 같은 무더위에 찾는 이가 많다. 멜론이라는 이름까지 감미롭게 들린다.

 

멜론(melon)의 어원은 고대 그리스어다. 잘 익은 박과 작물의 열매(melopepon)라는 뜻에서 비롯됐다. 직설적으로 표현하자면 늙은 호박, 내지는 늙은 오이라는 뜻이다. 프랑스어, 영어로 전해지면서 ‘잘 익은 박과 작물’이라는 수식어는 떨어져 나가고 열매(melo)라는 뜻만 남았다.

 

고대 멜론은 그러니까 달콤하고 맛있는 과일이 아니었다. 오이나 호박, 우리 토종 참외처럼 채소였다. 고대 그리스 로마에서는 실제로 과일이 아닌 채소, 샐러드 재료로 쓰였다.

 

그런데 15세기 바티칸의 로마 교황들이 멜론 맛에 푹 빠졌다.

 

대표적 인물이 제 211대 교황으로 1471년에 선종한 바오로 2세다.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는데 간접 사인으로 멜론이 지목됐다. 선종 당일에도 식후 디저트로 멜론을 잔뜩 먹고 쓰러졌다는 것인데 따지고 보면 평소 달콤한 과일을 너무 과식한 것이 성인병으로 이어진 것일 수도 있다.

 

멜론에 빠진 교황이 또 있다. 제 213대 교황인 이노센트 8세다. 얼마나 멜론을 좋아했는지 식사 전에는 멜론을 반으로 잘라 와인을 부어 멜론 향기가 스며들도록 해서 반주로 마셨고 아침에 일어나면 공복에 멜론을 서너 개씩 먹었을 정도로 멜론광이었다.

 

멜론은 과일도 아닌 채소였다면서 15세기의 교황들은 왜 이렇게 멜론 맛에 푹 빠졌던 것일까? 멜론이라는 과일 이름에 답이 있다. 멜론은 14~15세기에 품종 개량이 이뤄졌다. 머스크멜론(muskmelon)이다. 지금 현대인들이 먹는 멜론 품종의 대부분이 이 종류다. 왜 머스크라고 지었을까?

 

머스크(musk)의 어원은 페르시아어로 사향(麝香)이라는 뜻이다. 사향노루의 분비물에서 나오는 향수인 바로 그 사향이다. 개량된 품종의 멜론이 너무나 달콤하고 향기로웠기에 사향의 향기가 나는 멜론이라는 뜻으로 작명해 머스크멜론이 됐다. 15세기 종교와 세속적 권력을 동시에 쥐고 있던 로마 교황이 새로 나온 향기롭고 감미로운 멜론 맛에 탐닉했던 배경이다.

 

이후 유럽 전역으로 퍼졌는데 이유는 전쟁이었다.

 

머스크멜론이 처음 나왔을 무렵 마침 프랑스의 샤를 8세가 이탈리아를 침략했다. 이때 머스크멜론 종자를 구해 프랑스 남부도시 카바용에 심었다. 이 카바용의 멜론이 훗날 세계적으로 유명해지는데 19세기 프랑스가 낳은 대문호 알렉상드르 뒤마 때문이다.

 

소설 ‘삼총사’로 유명한 뒤마는 멜론을 몹시 좋아했다. 카바용시에서 공공도서관을 지으며 뒤마에게 작품 기증을 요청했다. 그러자 뒤마는 전집 400권을 흔쾌히 기증하면서 대신 카바용에서 재배하는 멜론을 해마다 12개씩 보내 달라고 요구했다. 얼핏 보면 사실상의 무료 기부였다. 카바용시는 뒤마의 제안을 기꺼이 받아들였고 죽을 때까지 해마다 빠지지 않고 멜론을 보냈다. 당대의 대문호 뒤마의 전집과 멜론을 맞교환해도 좋을 만큼 카바용 멜론이 가치가 있다는 소리다.

 

유럽인들이 서양 참외인 멜론에 빠져들어간 역사가 이렇게 멜론 품종의 이름 속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윤덕노 음식문화평론가 / 그래픽 : 정윤정]

 사향 향기 풍기며 교황의 과일된 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