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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에 사람이 붐비는 이유를 확인하라

신오덕 2015. 8. 24. 11:11
[세상사는 이야기] 이 남자의 인기 비결
기사입력 2015.08.21 16:18:37 | 최종수정 2015.08.21 17: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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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생겨도 참 못생겼습니다. 눈이 있어야 할 자리에 눈은 안 보이고 단춧구멍만 한 자국이 두 개 쭉 그어져 있고, 코는 납작코에 광대뼈는 또 왜 이렇게 튀어나와 있는지. 아무튼 못생겼습니다. 그뿐인가요. 아직 이렇다 할 직업이 없습니다. 몇 년째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어요. 이런 사내에게 여자친구가 있을 리가 없잖아요.

그런데 있는 거예요. 애인이 생긴 거예요. 편의점 앞 간이테이블을 점령한 동네 어르신들 모두 대체 무슨 일인가, 비결이 뭔가, 이 못생긴 사내에게 호기심을 갖게 됐습니다.

아니 편의점이 무슨 동네 구멍가게야? 익명성이야말로 서울 편의점만의 특성인데? 아마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아해하는 분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이 동네 편의점은 다른 동네 편의점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거, 왜 그런 동네 있지 않습니까. 이상하게 노인들이 많은 동네 말이에요.

대체 이 편의점 주변에는 왜 이렇게 할아버지 할머니만 많이 계신 걸까요.

일을 시작한 지 며칠 지나지 않아 사내는 그 이유를 알았습니다. 하필이면 편의점 맞은편이 쓰레기 분리수거장이었던 겁니다. 이 동네는 화·목·일요일에 쓰레기 분리수거를 하는데, 이날이면 동네 어르신들이 나와 쓰레기를 분리하는 것이었어요. 동네 어르신들 중에는 이렇다 할 수입이 없는 분들이 많았어요. 평상시에도 고물상에서 주워 온 유모차나 바퀴 달린 캐리어를 끌고 다니며 파지를 줍는 어르신들이 많습니다. 파지를 주우러 다니는 어르신들도 쓰레기 분리수거 날만 되면 편의점 맞은편에 있는 분리수거장으로 모여드는 겁니다. 주민들이 내다버린 쓰레기 중에 건져갈 것이 있을까, 하고요.

이렇다 보니 편의점 앞은 거의 매일 노인들로 붐볐습니다. 여름이 되자 편의점 앞 간이테이블은 아예 동네 어르신들 차지가 되었지요. 전기요금 걱정에 선풍기조차 틀지 못하고 여름을 견뎌야 하는 분들이었거든요. 사내는 사장에게 시달리기 시작했습니다. 편의점 앞 간이테이블에 노인들이 앉지 못하게 하라는 엄명이 떨어졌습니다.

못생긴 사내는 인상을 잔뜩 쓰며 편의점 밖으로 나갔지요. 간이테이블에 할머니 한 분과 아가씨가 앉아 있었습니다. 사내를 보자 할머니는 덥석 사내의 손을 잡았어요.

"이 총각이 바로 내가 말한 그 총각이야. 진짜 남자답게 생겼지?"

할머니는 사내가 편의점 밖으로 나오자마자 칭찬을 하기 시작했어요.

"일전에 내가 죽을 뻔했잖아. 왜, 갑자기 비는 오지, 머리에 이고 있던 박스는 떨어지지, 아예 앞이 안 보이더라고. 까딱했으면 트럭에 깔릴 뻔했는데 이 총각이 그냥 달려나와서는 멈춰, 멈춰, 하는데! 그날 이 총각 아니었으면 난 죽었다니까."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사내는 영 생각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런 일은 사내에게 하루에도 몇 번씩 있는 일이었으니까요. 어떤 할머니는 편의점에 들어와서 파지 묶는 걸 좀 도와 달라고 하기도 하고, 어떤 할아버지는 편의점 앞에 리어카를 놔둘 테니 잠시만 봐 달라고 하기도 하고, 쓰레기 분리수거를 하다 말고 들어와서는 비닐봉투를 묶어 달라고 하거나, 무거운 짐을 옮겨 달라고 하는 일도 다반사였거든요. 너무 목이 말라서 그러는데 물 좀 마실 수 있느냐고 부탁하시는 분도 꽤 많았어요. 그때마다 사내는 자기 돈으로 생수를 사서 드리기도 했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를 도와드린 일이야 사내에게는 셀 수도 없이 많았으니까요.

"어떠냐, 듬직하지? 자네, 잠깐 시간 좀 있나? 이 애가 우리 손녀딸인데 말이야."

할머니 성화에 사내는 할머니 앞에 앉았습니다. 그랬더니 할머니 옆에 앉아 있던 아가씨가 이 못생긴 사내를 향해 슬며시 미소를 지으며 묻는 거예요.

"혹시 커피 한잔 하시겠어요?"

그리하여 오늘도 이 편의점 앞 간이테이블에는 이 못생긴 사내의 팬클럽이 된 동네 어르신들이 잔뜩 앉아 계신답니다.

[이명랑 소설가·문학하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