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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님 코끼리 만지기식은 하지 말아라

신오덕 2015. 8. 26. 10:34

[광화문에서/이진]골방 속 양치기 소년

이진 오피니언팀장

입력 2015-08-26 03:00:00 수정 2015-08-26 03:00:00

 

 

 

이진 오피니언팀장

 

며칠 전 방송을 통해 잠깐 소개된 북한의 대남 선전용 인터넷매체 ‘우리민족끼리’의 뉴스를 듣고는 귀를 의심했다. 뉴스는 ‘지금 이 시각 남조선에서는 전쟁 공포증이 만연되고 있으며’로 시작했다. 이어 식용품 사재기 현상이며 예비군들의 훈련장 이탈, 입대를 피해 외국으로 대거 탈출 같은, 남한이 겪고 있다는 극도의 공포와 불안을 전했다. 하지만 남한의 이러한 ‘비상사태’는 어디서고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다. 이 뉴스는 수준이 아주 낮은 허위 동영상에 불과했다. 한 북한 전문가는 남한보다는 북한 주민을 상대로 한 선전으로 봐야 한다는 분석을 내놓을 정도였다.

북한의 거짓 선전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고 아마 마지막도 아닐 것이다. 북한이 지금까지 퍼뜨린, 가장 파급력이 컸던 거짓말은 무엇일까? 1950년 6·25전쟁을 남한이 북한으로 쳐들어간 ‘북침’이었다고 한 선전이라고 생각한다. 북한은 호전적인 이승만 도당이 북진하자 이를 물리치고 남한을 해방하려 했다는 식으로 6·25전쟁을 알려왔다. 정병준 이화여대 교수에 따르면 당시 박헌영 외무상은 서울에서 노획한 극비 문서를 북침의 근거라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제출했다. 전 세계를 상대로 북침설을 전파한 것이다.

세월이 흘러 미국과 중국, 러시아에서 6·25전쟁 관련 문서들이 공개되면서 진실이 밝혀졌다. 김일성과 박헌영이 스탈린과 마오쩌둥을 번갈아 찾아가 남한 침공을 허락받고 지원을 요청한 사실이 드러났다. 스탈린은 미국의 눈치를 보느라 겉으로는 중립을 유지하는 척했지만 공군을 지원했다. 스탈린은 ‘남한의 공격을 받아 반격했다고 하라’고 지침까지 내려보냈다. 마오쩌둥은 ‘상대가 원자폭탄을 쓰면 우리는 수류탄을 쓴다’며 미군에 맞설 각오를 밝혔다. 이런 후원에 의지해 38세의 김일성이 남한을 전면 공격한 것이다.

김일성의 손자인 김정은이 한때 준전시상태를 선포하며 한반도의 긴장을 끌어올렸다. 김정은은 6·25전쟁을 일으켰을 때의 할아버지보다 나이가 여섯 살 어리지만 기세는 그에 못지않았다. 모략극 운운하며 오히려 적반하장(賊反荷杖) 식으로 나오는 태도도 닮았다. 하지만 할아버지 때와는 주변 사정이 크게 달라졌다. 예전처럼 중국과 러시아에 기댈 수가 없게 됐다. 특히 대대적인 전승절 행사를 준비하는 중국은 김정은의 위협적 행동을 용인할 마음이 없다. 무엇보다 거짓 선전은 인터넷을 통해 즉각 허위라는 점이 밝혀진다. 우리민족끼리의 동영상이 말도 안 되는 선전이라는 점이 바로 확인되면서 북한을 못 믿겠다는 의식은 더 강해졌다. 남한을 흔들려는 이 동영상이 북한 지도부에는 오히려 부메랑이 된 것이다.

미국과 옛 소련이 한반도를 38선으로 나눈 뒤 분단 상태가 어느덧 70년째 이어지고 있다. 그동안 바깥 세계와 동떨어져 살아온 북한 주민들이 대한민국의 현실은 물론이고 세계의 움직임을 제대로 모르는 점이 안타깝다. 지하에서 유통되는 한국의 드라마나 가요만으로는 ‘장님 코끼리 만지기’ 식의 불완전한 지식을 얻을 뿐이다. 인터넷 사용을 제한하는 북한은 이번에 확성기 방송을 중단시켜 안도의 한숨을 내쉴지도 모른다. 하지만 북한 주민들을 언제까지고 외부 세계와 차단해 골방에 가둬 둘 수는 없다.

남북 주민의 격리 상태가 오래 이어질수록 통합의 과정은 더 힘겹고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제라도 북한은 개방과 소통을 통해 남북의 이질화를 좁히려는 노력을 한층 강화해야 한다. 김정은이 이번에 합의한 대로 이산가족 상봉을 진행하고 다양한 민간 교류를 활성화할 것인가, 아니면 골방에 앉아 양치기 소년처럼 거짓말을 계속할 것인가. 어느 쪽을 선택할지가 김정은의 본심을 알려주는 잣대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