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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길은 위험이 크다

신오덕 2015. 8. 31. 12:39
[매경시평] 원화의 국제화, 마냥 미룰 일 아니다
기사입력 2015.08.30 17:48:17 | 최종수정 2015.08.30 19:5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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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경제에 대한 불안감으로 세계 증시가 요동치고 있다. 이럴 때마다 현금출납기라고 불리는 한국은 불리한 입장에 처해지곤 했다. 외화 유출입이 빈번해지면 결제통화를 달러에 의존하는 한국으로서는 환율 변동에 신경을 곤두세우게 된다.

지금 4대 개혁 중 금융개혁이 가장 성공적이라는 평가가 있다. 그러나 현재 금융개혁은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한 것만 취급하고 있다. 금융감독 개편 또는 네거티브 시스템 도입과 같은 근본 문제를 다루면 거대담론에 빠져 진척이 없다는 이유 때문이다. 따라서 금융의 틀을 바꾸는 근본적인 변화가 없어 개혁의 체감도가 낮다.

거대담론에 빠지지 않으면서 금융의 틀을 바꿔 개혁을 실감할 수 있는 주제로 원화의 국제화가 있다. 원화의 국제화라고 해서 달러화와 같이 기축통화로 발돋움하겠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기축통화는 우리가 하고 싶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무역거래 내지 자본거래에서 원화 사용을 확대하겠다는 의미다.

사실 자본 자유화가 이뤄진 상태에서 원화의 국제화는 외국인이 원화를 보유하고, 또 원화로 결제하고 더 나아가 나라 밖에서 원화표시채권을 발행해 원화 조달이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할 따름이다.

현재 무역거래에서 원화 결제 비율이 2.9%에 머물고 있는데 원화 국제화로 이를 확대시킬 수 있다. 이렇게 되면 한국 기업들은 그만큼 환율 변동 위험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또 1997년 외환위기 또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보듯이 달러 고갈에 대한 걱정을 덜기 위해 막대한 외환보유액에 대한 부담도 없다. 굳이 달러가 없어도 결제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원화 국제화를 가로막은 요인은 투기자본에 의한 공격 가능성이다. 원화를 외국인이 보유하게 되면 그만큼 공격에 취약하다는 논리가 지배적이었다. 투기자본의 공격은 원화가치가 시장과 괴리될 때 발생한다. 원화가치가 지나치게 저평가돼 있으면 원화를 매입하는 세력이 있게 마련이다. 원화가치가 궁극적으로 올라가면 그만큼 차익을 취할 수 있기 때문인데 우리는 이를 투기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는 일종의 차익거래라고 볼 수 있다. 이는 원화가치가 시장과 지나치게 유리되는 것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정부가 원화가치를 인위적으로 조정할 의사가 없다면 이러한 투기세력의 존재를 무서워할 필요는 없다.

지금 원화 변동성이 큰 것은 원화 현물시장의 폭이 좁고 깊이가 얕은 데 원인이 있다. 그만큼 원화 현물시장이 미성숙됐다는 의미다. 원화를 보유하는 외국인이 많으면 많을수록 원화 현물시장 규모는 커질 수 있고, 그만큼 가격의 변동성은 줄어들 수 있다.

지금 원화 현물시장과 역외 선물시장인 NDF가 존재하고 있는데 가격 발견 기능은 현물이 아니라 선물시장이다. 선물시장에서는 거래 비용이 낮아 정보의 유입 속도가 현물시장보다 빠르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원화의 가격은 현물시장과 선물시장 사이의 재정거래에 의해 결정된다.

이 경우 외국인이 원화를 보유하면 할수록 재정거래가 활발하게 일어나 원화의 가격 발견 기능이 제고된다. 외국인의 원화 보유를 단순히 투기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은 한 면만 지나치게 강조하는 셈이다.

원화 국제화는 우리가 시도하지 못한 분야다. 낯설다고 무역 규모가 10위권인 한국이 언제까지 이를 미룰 수는 없다. 염려가 되면 단계적 도입도 고려할 수 있다. 원화가 투기적 공격에 노출돼서는 안된다는 집착에 사로잡혀 한국을 금융후진국으로 만들 수는 없다.

신문 보도에 따르면 정부에서는 원화 국제화를 검토하는 전담반을 꾸린다고 했다가 최근 금융시장이 불안해지자 이를 무기한 연기한다고 한다. 지도에도 없는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것이 바로 창조금융의 요체다.

새로운 길은 위험도 크지만 그만큼 돌아오는 보상도 크다. 창조금융이라는 큰 틀에서 원화 국제화가 다뤄지기를 기대한다 .

[이상빈 객원논설위원·한양대 경영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