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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딩뱅크로 다시 태어나라

신오덕 2015. 9. 1. 08:13

'외환 절대강자' 외환은행 48년 만에 역사 속으로

국책은행 → 시중은행 → 외국계 자본 → 하나은행과 통합연합뉴스|입력2015.09.01. 06:02|수정2015.09.01. 06:51

 

국책은행 → 시중은행 → 외국계 자본 → 하나은행과 통합

(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외환은행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 님은 갔지만 나는 아직 님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외환은행 본점 출입문 앞에 세워진 보드 판에 쓰인 직원들의 글귀다.

1일 KEB하나은행의 출범으로 지난 48년간 국내 외환업무의 절대 강자였던 외환은행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KEB(Korea Exchange Bank)라는 영문명이 남았지만 하나은행과의 통합으로 '외환'이라는 이름을 내건 은행은 이제 문서 상으로만 남게 됐다. KEB하나은행의 존속법인은 외환은행이다.

출범 D-1, KEB하나은행 새 CI 설치     (서울=연합뉴스) 홍해인 기자 = KEB하나은행의 공식 출범을 하루 앞둔 31일 오후 서울 중구 외환은행 본점 외벽에 새 CI(기업이미지) 부착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hihong@yna.co.kr
출범 D-1, KEB하나은행 새 CI 설치 (서울=연합뉴스) 홍해인 기자 = KEB하나은행의 공식 출범을 하루 앞둔 31일 오후 서울 중구 외환은행 본점 외벽에 새 CI(기업이미지) 부착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hihong@yna.co.kr

외환은행은 1967년 외국환 전문은행을 키우겠다는 정부 정책에 맞춰 한국은행 외환관리과에서 독립해 출범했다.

1970~80년대 정부의 수출드라이브 정책과 맞물려 국내 기업들의 해외시장 개척과 영업을 지원하며 외환과 무역금융에서 독보적인 지위를 굳혔다.

1972년 국내 최초로 온라인 보통예금을 취급하고 78년에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신용카드 업무를 시작했다.

1976년 수출입은행 업무를 대행하던 중·장기신용부를 분리해 한국수출입은행을 분가시켰다.

1986년 아시안게임과 88년 서울올림픽 공인은행으로 지정되는 등 국책은행으로서 수혜를 누리다 89년 외환은행법 폐지로 일반은행으로 전환됐다.

1994년 증권거래소에 상장했고 이듬해 일반공모 2천200억원을 포함한 자본금을 8천250억원으로 늘렸다.

1997년 국내 최초로 북한에 금호출장소를 개설하는 등 대북 금융 업무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그러나 외환위기라는 거대한 파고 탓에 1999년 최대주주가 한국은행에서 코메르츠 방크로 바뀜으로써 외국계 자본의 지배를 받게 됐다.

급기야 2003년에는 미국계 론스타펀드에 인수됐다.

외환은행은 이후 국민은행, HSBC 등에 매각될 뻔했으나 2012년 2월 하나금융에 인수됨으로써 하나금융지주의 100% 자회사가 됐다.

그로부터 3년 반 만에 하나은행과 한 몸이 되면서 은행 무대에서 사라지게 됐다.

외환은행의 한 직원은 "아쉽지만 외환은행의 영문명인 KEB가 남아 그나마 위안이 된다"며 "이제는 KEB하나은행원으로서 열심히 일하겠다"고 말했다.

 

자산 299조 ‘KEB하나’ 1일 출범… 리딩뱅크 4강 혈투

신민기기자 , 박민우기자

입력 2015-09-01 03:00:00 수정 2015-09-01 03:00:00

 

 

 

‘외환’ 간판 내리고 ‘KEB하나’ 달고
31일 오후 서울 중구 을지로 외환은행 본점에서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의 통합은행인 ‘KEB하나은행’ 간판을 다는 공사가 진행됐다. KEB하나은행은 1일 공식 출범한다. 뉴스1
1일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을 통합한 ‘KEB하나은행’이 공식 출범한다. KEB하나은행은 출범과 동시에 신한은행을 제치고 리딩뱅크(당기순이익 기준)로 올라서게 된다. KEB하나은행은 이날 오전 서울 중구 옛 외환은행 본점에서 김정태 하나금융그룹 회장과 함영주 KEB하나은행장 내정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출범식을 가질 예정이다. KEB하나은행의 출범으로 선도은행 자리를 차지하려는 은행권의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 KEB하나·신한·KB국민·우리 4강 경쟁구도




KEB하나은행 출범으로 국내 은행 경쟁구도에도 큰 변화가 생긴다. 올해 1월부터 6월까지 하나은행의 당기순이익은 5700억 원, 외환은행은 2400억 원으로 합치면 8100억 원이다. 이는 올해 상반기 가장 이익을 많이 낸 신한은행(7900억 원)을 앞서는 것이다. 리딩뱅크 자리를 두고 신한은행과 엎치락뒤치락하던 KB국민은행은 당기순이익 7300억 원으로 3위로 밀려난다. 자산 규모에서도 국내 최대 은행이 된다. KEB하나은행의 총자산은 298조8000억 원으로 현재 자산 1위인 우리은행을 앞선다.

KEB하나은행 출범으로 4강 구도가 만들어지면서 국내 은행들의 1위 다툼은 더욱 치열해지게 됐다. 특히 10월부터 시행되는 계좌이동제와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인터넷 전문은행 도입 등으로 은행을 둘러싼 금융환경이 급변할 것으로 예상돼 하반기 은행들의 자리다툼은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계좌이동제는 주거래은행을 옮기면서 기존 계좌에 등록된 자동이체를 한꺼번에 다른 계좌로 옮길 수 있는 제도다. 은행의 서비스에 따라 쉽게 주거래은행을 바꿀 수 있는 만큼, 은행들은 기존 고객을 지키면서 새 고객을 모셔오기 위해 총력전을 준비하고 있다.

다른 은행들은 KEB하나은행의 행보를 경계하고 있다. KB금융지주 관계자는 “두 은행이 가진 강점은 그대로 살리고, 중복되는 비용을 절감해 수익성을 높인다면 예상을 뛰어넘는 시너지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며 “다만 국민은행과 주택은행의 사례를 비춰 봤을 때 진정한 통합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 화학적 결합과 영업에 중점

KEB하나은행은 2006년 신한은행과 조흥은행 합병 이후 처음으로 이뤄지는 대규모 은행 간 합병이다. KEB하나은행이 외형상 대형은행으로 거듭나더라도 제대로 된 시너지 효과를 내려면 조직의 화학적 통합을 이뤄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함영주 내정자도 행장으로 내정된 후 첫 행선지로 외환은행 노동조합을 찾은 것도 하나은행과 외환은행 간 화학적 결합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 KEB하나은행은 변화추진본부를 신설해 통합된 기업문화를 정착시켜 나갈 계획이다.

이와 동시에 KEB하나은행은 조직의 영업 경쟁력을 높이는 데 집중할 방침이다. 영업통인 함 내정자의 발탁인사에서도 영업에 다걸기(올인)하겠다는 전략을 읽을 수 있다. 초저금리로 은행의 순이자마진(NIM)이 역대 최저로 떨어진 가운데 은행들은 영업에 사활을 걸었다. 함 내정자는 취임 후 목표에 대해 “규모에 걸맞은 영업력을 갖추도록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 간판 내리는 외환은행

외환은행은 KEB하나은행 출범과 함께 공식적으로 간판을 내린다. 외환은행의 시작은 한국은행 외환관리과였다. 국내 외환 관련 업무를 담당해오다 1960년대 수출 확대와 함께 외환관리를 전문으로 하는 은행이 필요해지면서 1967년 한은에서 분리돼 지금의 한국외환은행이 설립됐다. 1989년 12월부터는 한국외환은행법이 폐지되면서 국책은행에서 일반 시중은행으로 변신했다. 1997년 외환위기는 외환은행에도 시련을 안겼다. 경영난을 겪다 독일 금융그룹인 코메르츠방크에 매각됐고, 2003년에는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에 매각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 이후 론스타는 먹튀 논란을 일으키며 외환은행을 다시 하나금융그룹에 팔았다.

서울 보람 충청은행과 합병을 거쳐 온 하나은행과 달리 다른 조직과 통합을 경험한 적이 없는 외환은행 직원들에게 합병은 낯설기만 하다. 31일 외환은행 본점 앞에서는 간판이 사라지기 전 인증사진을 남기려는 직원들이 줄을 잇기도 했다. 한 외환은행 직원은 “간판 내리는 모습을 직원들과 함께 지켜보며 울컥했다”며 “두 은행 모두 뛰어난 실력을 갖춘 만큼 새로운 통합은행이 자산 규모뿐 아니라 실적에서도 국내 최고 은행이 될 수 있도록 뛰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