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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눈이 즐거웠으니 이제 몸이 힘들 시간이다

신오덕 2017. 8. 11. 13:45

[여행] 화산섬의 거친 속살, 온몸으로 느끼다

이귀전 입력 2017.08.02. 21:10


가도 가도 새로운 제주.. 효돈천 트레킹 / 감귤꽃 가장 빨리 피는 효돈마을 / 한라산서 발원해서 흐르는 효돈천 / 비올 때만 물이 차는 마른 하천 / 현무암 기암괴석 사이를 타다가 / 숲 그늘서 쉬어가며 계곡을 오르니 / 화려한 바다풍광에 가려진 / 화산섬의 진면목을 비로소 만났다

두려움이 앞선다. 사람들의 발길이 많이 닿지 않은 곳이다.


계곡이지만 산을 올라가 만나는 곳이 아니다. 오히려 밑으로 내려가야 한다.



콸콸콸 흐르는 물줄기도 없다. 듬성듬성 놓인 다양한 형태의 큰 바위들이 위협적으로 다가온다. ‘어디 한 군데 다치지 않을까’, ‘갑자기 비가 내리면 어쩌지’란 불안감이 감싼다. 하지만 이 불안감과 두려움을 뒤로하고 갈 만한 이유가 있는 곳이다. 제주만이 가지고 있는, 제주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의 감동을 느낄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드넓게 펼쳐진 에메랄드빛 바다가 주는 위안, 곶자왈 등 원시림의 신비감 등 제주는 다양한 얼굴을 품고 있다. 하지만 이는 화산섬 제주를 덮고 있는 화장일 수 있다. 그 속내를 보고 싶었다.

제주 서귀포 효돈천은 건천이기에 거대한 바위들을 디디며, 때로는 지지대 삼아 양손, 양발로 버티며 제주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효돈천은 제주가 만들어진 후 비, 바람 등이 현무암을 갈고 닦아 만들어 낸 독특한 풍광을 품고 있다.
제주 서귀포를 흐르는 하천 중 효돈천은 한라산 정상에서 발원해 약 13㎞를 흐른다. 원앙폭포 등이 있는 돈내코 유원지를 지나, ‘쇠소깍’에 이르러 바다와 몸을 섞는다. 제주에서도 풍광 좋기로 손에 꼽히는 명소들이 효돈천에 있다. 편하게 즐길 수 있는 풍경을 뒤로하고, 남원읍 하례리로 향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따뜻한 곳으로 마을 주민들은 ‘감귤꽃이 가장 빨리 피어나는 마을’이라고 한다. 다디단 효돈감귤이 나는 곳이다.

이 마을 서쪽 편에 효돈천이 있다. 건천(乾川). 화산섬 제주의 하천은 메마르다. 비가 와도 하천에 물줄기가 흐르는 건 그때뿐이다. 그러기에 가능한 여행이다. 탐험이란 말이 더 어울릴 것 같다. 물이 없기에 하천에 박혀 있는 거대한 바위들을 디디며, 때로는 지지대 삼아 양손, 양발로 버티며 제주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제주의 속살을 보기 위한 시작은 이 마을에서부터다.

제주 효돈천 트레킹
혼자서는 위험하다. 하례리 마을주민들은 외지인들이 안전하게 효돈천 트레킹을 할 수 있도록 생태관광마을협의체를 꾸려 운영하고 있다. 마을 주민들이 인솔해 제주의 속살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최소 5명 이상이어야 트레킹이 가능하다. 개인적으로 간다면 주말이나 휴일에 다른 일행이 있을 때 같이 하는 것이 좋다. 보호용 헬멧과 등반용 벨트인 하네스는 기본이다. 차를 타고 포장된 도로를 따라가다 멈춘 후 수풀 안으로 들어가자 하천 아래로 내려가는 가파른 흙길이 나온다. 효돈천으로 내려가는 길부터 난관이다. 그것도 중간에 길이 꺾여 있다. ‘돌아갈까’, ‘괜찮을까’란 생각에 머리가 복잡해진다. 그렇다고 너무 겁을 먹을 필요는 없다. 설치된 안전줄을 잡고, 미끄러지듯 내려오면 ‘겁을 먹을 만큼은 아닌 구간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본격적인 하천 트레킹이 시작된다. 이런 하천을 제주에선 ‘내창’으로 부른다. 산에 있는 계곡도 아니고, 물이 계속 흐르는 하천도 아니다. 대지 아래, 비가 올 때만 물이 흐르는 독특한 곳이기에 제주의 표현이 더 와닿는다.

군데군데 물 웅덩이가 있고, 빠지지 않게 바위를 밟고 넘어간다. 평평한 바위면 고맙다. 하지만 울퉁불퉁 바위들이 대부분이다. 중심을 잃지 않고 다음 바위로 발을 옮기는 것이 중요하다. 앞사람이 어디를 밟았는지를 꼭 봐야 한다. 가장 안전하게 가는 방법이다.

그나마 이런 코스면 다행이다. 중간에 난코스들을 마주하게 된다. 경사가 심해 줄을 잡고 내려가거나,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쉽지 않은 바위길도 있다.

안 쓰던 근육들을 최대한 동원해 바위를 타다 보면 슬슬 주위 풍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효돈천의 바위들은 대부분 회백색이다. 비가 내릴 때 한라산에서부터 내려온 물살에 깎여 바위가 둥글둥글하고 매끄럽다. 하지만 이 바위들 역시 현무암이다. 검은 돌만 떠올리지만, 물에 닳고 닳아 우유 빛깔 현무암 기암괴석이 됐다. 제주 다른 곳은 화산 폭발로 만들어진 태곳적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효돈천은 섬이 만들어진 후 비, 바람 등이 갈고 닦아 만들어 낸 풍광을 품고 있다. 그러다 보니 기이한 형태의 바위와, ‘괴’라 불리는 동굴 등 독특한 지형이 생겨났다.

효돈천을 덮어 그늘을 만들어 주는 수풀을 벗어날 때쯤 만나는 곳이 ‘음려수’라 불리는 소다. 소 안을 보면 나무 한 그루가 가라 앉아있는 독특한 모습을 볼 수 있다.
눈이 즐거웠으니, 이제 몸이 힘들 차례다. 매처럼 생긴 바위가 나타나면 줄을 타야 하는 코스가 나온다. 이번엔 줄에 의지해 옆으로 이동해야 한다. 마치 타잔처럼 말이다. 안전하게 하네스에 줄을 연결한 뒤 전문 인솔자가 이동을 도와주기에 겁먹을 필요 없다. 이후는 평탄한 구간이다. 현무암이 우유 빛깔로 변색된 모습, 물웅덩이인 소를 여러 개 지나친다. 내창을 덮어 그늘을 만들어 주는 수풀을 벗어날 때쯤 만나는 곳이 ‘음려수’라 불리는 소다. 소 안을 보면 나무 한 그루가 가라 앉아있는 독특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이곳을 벗어나면 외부로 나온 듯한 생각이 든다. 하지만 여전히 내창이다. 좀 더 내려가 제주에서 제일 큰 소인 남내소를 만나면 그동안 알던 제주와는 또 다른 제주를 만나는 탐험은 끝이 난다. 트레킹은 2∼3시간이 소요된다. 비가 오면 못할 수도 있고, 수량에 따라 코스가 바뀔 수 있다. 협의체에 미리 문의한 뒤 탐험을 떠나는 것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