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철과 신념

부자의 삶은 행복합니다 본문

부자

부자의 삶은 행복합니다

신오덕 2005. 4. 30. 19:51

 


 

[만물상] 고우영


 

오태진 · 수석논설위원 tjoh@chosun.com

 
입력 : 조선일보 2005.04.26 18:35 17'
 

“엄마! 10원만.”
 
1960년대
 
코흘리개들은
 
엄마를 졸라
 
타낸 10원을
 
들고 동네 만화
 
방으로 내달려갔다.
 
 
책장 세울 곳도 없이 좁은 만화방이라
 
사방 벽에 고무줄이나 철사줄을 질러
 
만화책을 벽에 붙이듯 세워놓았다.
 
 
아이들은 등받이도 없는 긴 나무의자에
 
엉덩이를 걸친 채 만화 삼매경에 빠지곤
 
했다.
 
 
해 지도록 죽치다 엄마에게 귀를 잡혀
 
끌려가기도 했다.
 
 
가난에 찌든 그 시절 만화방은 중장년들
 
기억에 아스라한 ‘꿈공장’으로 남아있다.
 
 
 

▶‘라이파이’(산호) ‘엄마 찾아 삼만리’

 

(김종래) ‘의사 까불이’(김경언)

 

‘땡이’(임창) ‘도전자’(박기정)

 

‘만리종’(박기당) ‘보리피리’(엄희자)….

 

공책에 그려보던 만화 주인공들 가운데

 

짱구박사와 아들 짱짱이는 특히 인기

 

였다.

 

 

각진 머리와 몇 가닥 안 되는 머리카락을

 

단순한 선으로 묘사해 놓아 따라 그리기

 

쉬웠다.

 

 

짱구박사 부자의 순진하고 익살스런

 

소동은 어린이 코믹만화의 새 장(章)

 

이었다.

 

 

 

▶‘짱구박사’의 작가 추동성이 엊그제

 

떠나간 고우영이다.

 

가 이 만화를 그리기 시작한 것이 58년.

 

당시 다니던 동성고에서 필명을 땄다.

 

그는 아직 한창인 67세에 갔지만,

 

우리 대중 만화사(史)의 첫 걸음이라

 

할 ‘만화방시대’를 연 원로였다.

 

 

 

70년대엔 아예 만화시장과 만화문화를

 

단숨에 바꿔놓았다.

 

‘수호지’와 ‘삼국지’는 만화를 어린이

 

전유물에서 어른들의 것으로 확대 격상

 

시켰다.

 

고우영 스스로가 문화현상이었다.

 

 

 

 

▶익살맞은 비틀기, 걸쭉한 입담,

 

능청스런 외설.

 

그의 재주는 만물상 같은 고전 속 인간

 

군상들을 독특하게 각색해내는 인물

 

해석에서 특히 빛났다.

 

 

 

‘수호지’의 무대(武大)는 한국 만화에서

 

가장 빼어난 캐릭터로 꼽힌다.

 

리본으로 묶은 머리, 삐져나온 앞니에

 

단추구멍 만한 눈을 하고서 요부 반금련

 

과 어울리지 않는 커플을 이뤘다.

 

 

 

냉대받으면서도 선의와 진심을 잃지

 

않는 무대는 ‘반(反)영웅’으로 떠올라

 

대학마다 팬클럽이 결성될 정도였다.

 

 

 

 

▶‘수호지’는 73년 스포츠신문에 연재

 

되다 중단됐다.

 

 

부패한 조정과 관리에 대항한 양산박

 

호걸들 얘기가 불온하게 비쳤기 때문

 

이다.

 

 

관군이 뇌물에 매수되는 장면이 국가

 

권위를 실추시킨다고 해 원고 수정을

 

거듭하던 고우영은 붓을 꺾었다.

 

 

그는 말년까지 ‘수호지’ 완결에 매달렸

 

지만 암을 이겨내지 못했다.

 

 

그는 자기 캐리커처도 유비(劉備)나 무대

 

처럼 어리숙하게 그렸다.

 

 

특유의 장난기와 천진함이다.

 

 

그가 시대의 위선과 가식에 던졌던

 

조소(嘲笑)는 이제 고전(古典)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