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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의 히딩크 본문
[만물상] 농업의 히딩크
![](http://image.chosun.com/common/200410/sys/ico_blog.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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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하버드대학 졸업 후 일본에
외교관으로 와 있다가 1883년 한국 최초
의 대미(對美) 외교 사절인 민영익의
미국행에 통역관으로 따라간 것이 인연
이 돼 그해 말 한국에 왔다.
개화사상가 유길준이 보스턴 근처 세일럼
에서 최초의 국비 유학생이 되도록 주선
한 이도 로웰이었다.
미국으로 돌아간 후에는 천문학 연구에
몰두해 애리조나에 로웰천문대를
세웠는데, 이곳은 후에 명왕성을 발견한
곳으로 유명해졌다.
▶1876년 개항에 이어 1880년대 들어
서양과 잇달아 수교하면서 조선 정부
에는 조약, 세관, 차관 도입 등 실무에
밝고 조언해줄 수 있는 외국인 고문
(顧問)들이 필요했다.
1882년 독일인 묄렌도르프가 지금의
외교부에 해당하는 통리아문의 참의
(參議·정3품)로 처음 초빙된 것도
그래서였다.
당시 조선 정부는 일본으로부터 응당
받아야 할 관세(關稅)도 못 받을 정도
로 국제무역에 무지했다.
▶묄렌도르프는 임용된 지 한 달도
안 돼 협판(協辦·차관)으로 승진했다.
그 자신의 표현에 따르면 조선의 통리
아문 협판은 “동아시아에서 가장 좋고
영향력 있는 자리”였다.
19세기 말 서세동점(西勢東漸)의 상황
에서 한·중·일 3국의 운명은 서양인
자문관제도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활용했느냐에 따라 달라졌다.
1882년 일본에는 157명의 자문관
이 있었고, 그중 외무성에만 24명
이나 됐다.
▶앞서가는 나라를 배워야 할 필요성
은 지금 와서도 달라지지 않았다.
소련에서 독립한 신생 그루지야
공화국은 국내 경제 위기를 외교로
극복하기 위해 자국 주재 프랑스
여성 대사를 외무장관으로 영입했다.
홍콩 정부는 120명의 실·국장급 고위직
공무원 가운데 20명이 외국인이다.
▶농림부가 농산물 수입 개방 등에
따른 농업의 어려움을 넘기 위해
네덜란드인 윌브링크씨를 농업자문관
으로 영입키로 했다.
네덜란드는 국토 면적이 한반도의 5분
의 1밖에 안 되지만 낙농·꽃재배 등
으로 농산물 수출액이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농업 강국이다.
윌브링크씨는 “네덜란드 사람인
히딩크 감독이 한국 축구의 월드컵
4강 진출을 도운 것처럼 나도 한국
농업이 글로벌 마켓에서 경쟁력을
갖도록 돕겠다”고 말했다.
윌브링크 자문관의 포부는 한국 농업
과 한국 농민의 꿈이기도 하다.
그의 포부와 한국 농업의 꿈이 좋은
인연을 맺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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