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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ㅆ는 힘

신오덕 2005. 6. 10. 10:23

[만물상]‘읽고 쓰는 힘’


 

김태익 논설위원 tikim@chosun.com

 
입력 : 조선일보 2005.06.08 19:40 38'

일본의 주간 ‘다이아몬드’지(誌)가 ‘인사
 
부장이 솔직하게 선택한 대학 랭킹’이란
 
기사를 실었다. 600개 기업 인사부장에게
 
설문조사를 했더니 뜻밖의 결과가 나왔
 
다. 창조성이 있다(교토대학), 이해가 빠
 
르고 요령이 좋다(히토쓰바시대학), 정신
 
적으로 자립해 있다(와세다대학), 개성적
 
이다(도쿄예술대학)…. 일본 최고의 엘리
 
트가 모여 있다는 도쿄대는 12개 항목 중
 
어디에서도 1등을 못했다.
 

▶일본의 저널리스트 다치바나 다카시(立花隆)는 도쿄대 교양학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

 

면서 사정이 이렇게 된 이유를 깨달았다. 도쿄대 학생들 중 강의에서 참고서적을 한 권

 

이라도 읽는 학생은 100명 중 두어 명에 지나지 않았다. 나머지는 모두 강의 내용을 그

 

대로 외우는 식이었다. 기말시험 답안지를 보니 오자(誤字)에 문법을 무시하고 의미가

 

확실하지 않은 비문(非文)투성이였다. 원인은 ‘읽고 쓰는 능력’(literacy)을 기본으로 하

 

는 교양교육의 붕괴였다. 국립대학 중 유일하게 교양학부가 남아 있는 도쿄대가 이 지경

 

이라면 일본의 장래는 볼 것도 없는 것 아닌가. 다치바나의 ‘일본 지적 망국론’은 그렇게

 

해서 나왔다.

 

 

▶우리 입장에서 볼 때 다치바나의 한탄은 배부른 엄살의 측면이 있다. 우선 한국의 공

 

공도서관은 400개인 데 비해 일본의 공공도서관은 2700여개에 달한다. 국민 1인당 장서

 

수는 일본이 3권인데 한국은 0.47권에 불과하다. 한국은 2만여 출판사 가운데 1년에 100

 

권 이상의 신간을 내는 곳이 16곳이고 일본은 147개사에 이른다.

 

 

▶일본의 여야 의원 286명이 ‘문자·활자 문화진흥법안 요강’을 만들어 일본인들의 활자

 

이탈 현상에 대처하기로 했다. 인터넷 보급과 게임문화 확산으로 국민들의 읽기·쓰기 능

 

력이 현저하게 떨어지고 있으므로 공공도서관을 늘리고, 외국 출판물 번역을 국가가 지

 

원하는 등 여러 방법을 동원해 해결해 보자는 것이다. ‘문자·활자의 날’을 제정하자는 안

 

도 포함돼 있다.

 

▶인간이 지닌 지적 능력의 기본은 언어 능력에 있고, ‘읽기’와 ‘쓰기’는 언어 능력의 핵

 

심이다. 그것을 기르는 것은 법령 이전의 문제이긴 하지만 이렇게 해서라도 국민들의 읽

 

고 쓰는 힘을 유지하려는 일본 정치인들의 발상이 새롭다. 언제부턴가 우리 주변에선 남

 

의 글을 읽고 나만의 글을 쓰는 훈련이 사라져 가고 있다. 문제는 시선을 사로잡을 만한

 

잘 쓴 글, 재미있는 책이 드물다는 것이다. 인터넷이나 게임문화를 탓하기 앞서 활자의

 

매력을 극대화하는 일이 지금 우리에겐 더 시급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