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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년 만의 참회

신오덕 2005. 6. 18. 10:51

[만물상] 105년 만의 참회


 

오태진 수석논설위원 tjoh@chosun.com

 
입력 : 조선일보 2005.06.15 18:58 07'
 

‘오늘밤 니그로에게
 
교수형을’.
 
1921년 어느날 미국
 
오클라호마 털사의
 
지역신문이 뽑
 
머리기사 제목이
 
다.
 
 
유치장으로 몰려간 백인들은 흑인 구두
 
닦이 딕 롤런드를 끌어내 목을 매달 채비
 
를 했다.
 
그는 엘리베이터에서 백인소녀를 겁탈
 
하려 했다는 누명을 쓰고 갇혀 있었다.
 
 
인근 그린우드의 흑인들이 막으려 하자
 
백인들은 그린우드를 불태웠다.
 
백인 폭도 1만명은 경찰의 도움을 받으며
 
흑인 300명을 학살했다.
 
 

▶1930년 인디애나 매리언의 16세 흑인

 

소년 제임스 캐머런도 백인남자를 죽이고

 

아내를 강간했다는 누명을 썼다.

 

마을 광장에 끌려나간 그의 목에 밧줄이

 

걸렸다.

 

구경꾼 중엔 어린이들도 있었다.

 

음식 행상들은 손님을 불러댔고 사진사

 

는 사진을 찍어댔다.

 

다른 두 흑인소년의 목이 매달리고

 

캐머런의 차례가 됐을 때 누군가

 

“그 아이는 죄가 없다”고 외쳤다.

 

밧줄은 그의 목에 흉터를 남긴 채

 

풀렸다.

 

 

그는 그 밧줄 한토막을 평생 간직했다.

 

 

▶1882~1968년, 확인된 것만 4000명

 

가까운 흑인이 사형(私刑), 이른바

 

린치(lynch)에 희생됐다.

 

백인남자에게 말대꾸를 하거나 백인

 

여자를 쳐다봤다는 이유만으로도

 

살해됐다.

 

 

인간사냥 광풍(狂風)의 유일한 공식

 

생존자 캐머런이 엊그제 상원에 나와

 

105년 만의 결의안 통과를 지켜봤다.

 

 

20세기 벽두부터 상원에 숱하게 상정

 

됐던 흑인 린치 금지법을 끝내 만들지

 

못한 데 대해 용서를 구하는 결의안이다.

 

 

▶같은 날 미시시피 네쇼바에선

 

‘미시시피 버닝’ 재판이 40년 만에

 

재개됐다.

 

 

극렬 백인단체 KKK 단원 레이 킬런

 

등이 1964년 민권운동가 3명을 살해한

 

사건이다.

 

 

영화 ‘미시시피 버닝’(1988년)에선

 

FBI 요원 진 해크먼이 통쾌하게 자백

 

을 받아내지만 현실은 딴판이었다.

 

 

FBI는 무기력했고 나중에 피살자 시신

 

이 발견되면서 18명이 기소됐다.

 

백인 일색의 배심원들이 석방시켰던

 

킬런은 인권단체와 검찰의 끈질긴

 

노력으로 40년 만에 다시 체포돼

 

법정에 섰다.

 

 

▶1963년 앨라배마 버밍엄에서 흑인

 

교회가 폭파돼 여자아이 4명이 숨졌다.

 

이때 친구를 잃었던 흑인소녀 콘돌리자

 

라이스는 국무장관이 됐다.

 

미국은 더디, 그러나 많이 바뀌었다.

 

상원은 사죄결의안을 통과시키면서

 

“스스로에게 솔직해야 한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진실을 얘기

 

해야 한다”고 했다.

 

인간을 잔인하게 만드는 편견 중

 

에서도 가장 맹목적인 것이 인종 편견

 

이다.

 

 

남을 자기의 잣대로 재는 것이 아니라

 

남의 잣대로 스스로를 재는 겸허한

 

과거사 청산의 전범(典範)을 여기서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