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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일본TV에서 우익과 논쟁 벌이다

신오덕 2005. 8. 9. 12:09
[카무이 생각에는...]

 

난 비교적 일본에 대해 관대한 편이다. 어린 시절부터 거부감 없이 보았던 일본 만화를 비롯해서 현재 즐겨 접하는 일본 드라마, 영화, 문학 그리고 음악까지. 심지어 한일 문학을 통틀어서 가장 좋아하는 작가가 일본인 ‘다자이 오사무’다. 하지만 조선의 피가 흐르는 나는 일본의 우익에 대해서는 상당한 거부감을 갖고 있다. 일일이 언급하지 않아도 그들의 망언, 망발은 한국 사람이라면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일본의 망언이라고 알려진 것들이 모두 일본 우익의 짓이니까. 그리 길게 말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우리나라의 우익이나 일본의 우익이나 자신들이 저지를 반인륜적인 범죄에 대해 어떠한 역사적 책임도 지지 않고 냉전시대 힘의 균형에 의해서 우익의 탈을 쓴 쓰레기들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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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TV에서 우익과 논쟁 벌이다
<니혼테레비> 토론 프로그램 '제네레이션 정글' 출연기

 


▲ "제네레이션 정글" 녹화현장. 이번 "한류와 한일관계"에 대한 녹화분은 1월 29일 심야 12시 50분부터 2시간 30분동안 <니혼테레비>에서 방송된다.
 

2주 전 일본 동북지역 센다이에 방송 코디 일 때문에 나가 있는데, 전화가 걸려 왔다. 작년 취재차 약간의 협조를 부탁했던 방송관련 리서치 회사의 쿠사카리였다. 나보다 나이도 어리고, 취재로 만났을 때 꽤나 성실하게 도움을 준 녀석이라 호감을 가지고 있어서 바쁜 와중에도 전화를 받았다.

 

"형, 저는 쿠사카리입니다."

 

서투른 한국말이지만 나에게 전화를 할 때는 반드시 이렇게 시작한다. 웬일이냐며 용건을 묻자, "이번에 <니혼테레비>에서 한류 붐하구 한일간의 역사문제를 가지고 토론회를 하는데요. 좀 출연해 주세요" 한다.

 

이상했다. <니혼테레비>의 토론프로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한데 특별 프로그램인가 싶었다. 그런데, 이 녀석 말이 심상치 않다.

 

"한류에 대해서 한국측 대표 몇 명하구, 일본측 대표가 몇 명이 나와서 2시간 동안 토론하는 건데요. 한류에 대해서 형이 그간 느낀 것을 이야기하면 되는 거예요. 저번에는 '로리콘(로리타 컴플렉스)' 가지고 했었는데, 이번엔 한류라네요."

"혹시 그 프로그램 그거 아냐?"
"네. <제네레이션 정글>입니다."

 

<제네레이션 정글>. 일본 최고의 가수 중 하나인 '킨키킷즈'의 도모토 코이치가 진행하는 토론 프로그램이다. 토요일 심야에 방송되는, NHK의 '샤베리바'와 더불어 꽤나 높은 인기를 얻고 있는 젊은이들의 토론방송.

 

그런데 <니혼테레비>라는 점이 조금은 거슬린다. 한류 붐에 대해 말초적이고, 자극적인 흥미위주의 방송을 내 보내는 민영방송의 대표주자. 뻔히 정해진 스토리에 조역으로 들어가 이용당하는 것이 아닌가 조금은 걱정이다.

 

"그런 거 없어요. 이건 거의 생방송과 다름없는 녹화방송이에요. 절대 연출이나 그런 게 들어가거나 그러지 않고, 순전히 말발로만 대결하는데, 그걸 시청자들이 보고 판단할 거니까 전혀 문제가 없을 겁니다. 형! 한번만 도와주세요."

 

아주 잠깐 고민했지만 일본말로 '온가에시(은혜를 갚는다)'라는 말도 있고, 방송출연에도 흥미가 있었고, 아니 무엇보다 일본인 시청자들에게 한일문제에 관해 직접 말할 수 있다는 것에 매력을 느꼈다.

 

선술집에서 만나는 한두 명의 일본사람들에게 정신대 문제나, 원폭피해, 관동대지진에 대해 몇 시간씩 열변을 토하는 것보다 한번에 수십만, 수백만 사람들에게 그런 문제에 관해 이야기 할 수 있다는 것. 역시 매력적이다. 방송이 가진 파워라고나 할까.

 

이런 저런 사전조정을 거치고, 센다이에서 돌아오자마자 <제네레이션 정글> 녹화 스튜디오로 갔다. 가슴에 명찰을 붙이고, 무선 마이크를 부착하고 지정된 좌석에 앉았다.

 

한국에 대해 애정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유명한 코미디언 기무라 유이치가 게스트로 참가했다. 일본 최고의 여성 아이돌 스타 중 한명인 마나베 카오리가 내 옆자리.

 

1부와 2부로 나뉜 이번 방송은 1부가 한류 붐, 2부가 한일관계에 관한 것이다. 2부에나 출연하겠지 했는데, 아내가 일본인이라는 것이 작용했던 것일까? 1부에도 참여하게 되었다.

 

1부는 일군의 아줌마 부대가 참석했다. 물론 그들은 '욘사마'의 열렬한 팬. 개중에는 춘천을 몇 번이고 갔다오고, 욘사마가 방일할 때마다 공항, 호텔 등을 쫓아다닌 마니아급도 있다. 이런 그녀들의 욘사마 매력에 대한 일장연설을 일본인 젊은이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식으로 반응한다.

 

토론이 감정적으로 흐르진 않는다. 아줌마들은 욘사마의 매력에 대해 '자신이 왜 좋아하는지에 대해' 설명을 하는데, 젊은이들은 '욘사마가 어디가 좋냐?'는 식으로 되묻고 그럼 또다시 아줌마들은 설명을 한다. 하긴 이건 토론거리가 아니다. 이런 식으로 해서 방송이 될까? 프로듀서도 아닌데 괜스레 내가 걱정이 된다.

 

20분 동안 그런 말들이 오고 가고 있는 것을 지켜보고 있으니, 사회자인 코이치가 나에게 묻는다.

 

"한국인의 눈으로 봐서 욘사마의 매력, 그리고 지금의 한류 붐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겨울연가>에 나온 욘사마의 매력은 아마도 현대의 일본이 잃어버렸던 아련했던 옛날의 추억, 이를테면 순애보라는 것을 아줌마들에게 일깨워주었던 게 아닐까 한다. 그것이 드라마에 잘 나오는 여러 가족주의적인 설정들과 맞물리면서 한국인은 예의 바르고 친절하며, 부드럽다는 이미지를 심어준 게 아닐까 하네요."

 

여기까지는 좋았는데, 마지막 말을 덧붙이는 바람에 평온했던(!) 1부가 전쟁터로 돌변해 버린다.

 

"지금 젊은 일본 애들은 아무래도 가족간의 사랑같은 거 생각하고 있지 않는 성향도 있고, 개인주의적이고 또 애인한테 사랑한다, 같은 말을 잘 안하니까요. 특히, 남자애들은 쿨한 것이 좋은 것이라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는 것 같은데, 내면의 깊이가 없는 상태의 겉으로만 쿨하다는 것. 그거 별로 안 좋은 것 같습니다만."

 

참석했던 일본 젊은이들이 나에게 집중포화를 쏟아낸다.

 

"앞에 말한 겨울연가에 관한 것은 드라마에서 만들어진 이미지에 불과하고, 뒤의 것은 너무 개인적인 의견 아니냐?"

"개인적인 이미지든 뭐든, 실제 한국인들은 여전히 지금도 어른 앞에서는 담배 잘 안 피고, 술 마실 때는 반드시 옆으로 고개 돌리고, 가족들에게 안부전화도 자주 걸고 아무래도 일본인보다는 그런 친근감이 있지요. 그런데, 일본인들은 성인이 되니까 가족들과 별로 소통을 안 하는 것 같던데. 사랑한다는 말도 별로 안하는 것 같고. 외양상으로 쿨(Cool)해 보이는 본인은 어떠세요?"

 

되묻자, 이런 저런 반발을 한다. 가족이나 예의에 관한 것보다는 '사랑한다'는 말에 대해 이렇게 대답한다.

 

"한국 사람들은 사랑한다는 말을 많이 하는 것 같은데, 나는 그게 오히려 사랑한다는 말의 가치를 줄이는 것처럼 보인다. 보통 인생 최대의 승부를 걸 때 한 번 사랑한다는 말을 해야 멋진 게 아닌가?"
"(잠시)애인 있으세요?"
"없는데요."
"그러니까 없죠."

 

장내에 폭소가 쏟아진다. 물론 일리는 있다. 한국인, 일본인 구분을 뛰어 넘어서 나는 사랑한다는 말을 너무 많이 하는 것 같아, 어떤 때는 불안하기도 하다. 그런데, 아줌마들이 동의해 준다.

 

"난 사랑한다는 말을 듣고 싶어. 우리 남편은 결혼한 지 20년이 지났는데, 한번도 사랑한다는 말을 한 적이 없으니 이 사람이 정말 날 사랑하는지 아닌지 한두 번 생각해본 게 아냐. 역시 여자는 남자한테 사랑한다는 말을 듣고 싶어하는 게 아닐까?"

 

▲ 아내와 나는 코미디언 기무라 유이치의 왕팬이다. 그가 오늘 게스트로 출연한 것에 안도의 한숨을 내 쉬기도 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시종일관 유머와 합리적인 언변으로 좌중을 사로잡았다.

 

이후 욘사마 붐과 한류열풍이 한국문화를 아는데 일조를 하고 있다는 식의 스테레오(?) 타입으로 이야기가 흘러 1부는 끝이 났다.

 

문제는 "바람직한 한일관계"라는 주제로 시작된 2부였다. 나는 이 사람들이 게스트로 출연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불가사의한 나라, 한국"이라는 대표적인 일본 극우사이트의 관리자 '도롬파'와 전남대 교수로 활동하면서 일본에서는 ‘노히라 쥰스’라는 가명으로 한국을 비판하는 '한국인의 일본위사', '한국에서 반일소설 쓰는 법' 등의 책을 낸 미즈노 슌페이. 게다가 미즈노 교수는 한국 측 패널 석에 앉는다.

 

순간 출연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 우익과 접할 기회가 별로 없는 나에게 '일본우익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가' 들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고, 미즈노 교수의 경우 어떤 모습을 보일까 흥미진진했기 때문이다.

 

'도롬파'가 먼저 치고 들어온다. 한일합방에 관해서 그는 인구성장에 관한 그래프를 보여주더니만 이렇게 말한다.

 

"한국인들은 일본에 의해 식민지 시대를 겪었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그건 사실과 다르다. 합방과 식민지는 차원이 다르다. 먼저 이 그래프를 보라. 이 그래프는 1910년부터 1945년까지의 조선반도 인구성장에 관한 그래프다. 비약적으로 인구가 늘어났음을 알 수 있다. 보통 식민지를 체험한 나라, 이를테면 과테말라나 파나마 제도 등에서는 인구가 줄게 되어 있는데, 조선반도는 그렇지 않다. 경제발전 및 근대화에 일본이 조선에 대해 많은 정책을 시행했음을 알 수 있다."

 

순간적으로 흥분해 버렸다. 그다지 민족주의자가 아닌 나이지만, 저따위의 그래프 하나로 모든 것을 설명해버리는 우익의 단순함. 20세기 초 조선의 상황과 18~19세기의 중남미의 상황을 등치시켜버리는 무식함이란. 그런데, 이걸 다 설명하기엔 시간이 그다지 없다. 얼마 전에 보았던 제트로 백서의 통계표가 뇌리를 스친다.

 

"그럼 인도는? 인도도 인구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그런데 왜 간디나 네루 같은 이들이 인도독립을 주장했을까?

 

당신의 민족과 민족간에 있어 가해자와 피해자의 입장과 처지에 관해 전혀 고려하지 않고, 단순한 데이터만을 들이대고 있다. 그 민족들이 살아온 역사, 전통, 환경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일본정부가 행한 강제징용, 정신대 등에 대해서 전부 거짓말이란 말인가?"

"누가 강제징용을 했단 말인가? 그들은 다 돈을 받고 온 고용인들이었다."

 

이쯤 되면 참을 수가 없다. 90년대 초반 시모노세끼 판결(일본정부가 종군위안부 고용에 있어 육체적, 강제적 동원이 있었다는 것을 인정한 재판)과 고노 관방장관의 "국가의 강제동원 책임에 대해 사죄한다"는 발언, 그리고 노나카 전 자민당 간사장과의 인터뷰에서 나온 "나의 어린 시절 교토의 무기공장에는 조선반도에서 강제징용되어온 사람들이 갖은 학대를 받으며 일하고 있었다"는 발언 등을 언급했다.

 

그러나 그는 갑자기 다른 사진을 꺼내든다. 파고다 공원의 3·1절 기념탑에 절을 하고 있는 일본 고등학생들의 사진. 히로시마의 한 고교 수학여행에 있었던 일이라며 지금 한국에서는 일본 학생들을 강제로 절을 시키고 있다는, 다분히 감정적인 이야기를 꺼낸다. 그리고는 덧붙인다.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로 한 게 아니고, 당시 조선의 총리였던 이완용씨가 합방에 서명을 한 것이다. 정당한 절차로 인해 맺어진 합방조약인데 왜들 그렇게 흥분하는지 모르겠다. 한일합방은 조선이 원한 것이 아닌가?"

정말 욕이 나온다.

 

"그럼, 씨바(이건 한국말로 했다) 넌 고이즈미가 부시한데 일본 가져다주면 좋냐? 당시 한일합방이 조선전체 민중의 의지라고? 당신이 피해자의 입장이나 기분에 대해 고려하길 원하는데, 넌 전혀 그런 마인드가 안 되어 있어. 바꾸어서 생각해보자. 요즘 미국의 우익들이 간혹가다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폭에 대해 전쟁을 일찍 끝내서 오히려 일본을 도와준 것 이라고 떠드는데, 그 말을 히로시마 원폭 때문에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 들어봐. 그들 기분이 어떻겠냐?"

 

대화의 접점 자체가 없다. 똘레랑스(관용)를 베풀 상대가 있고, 아닌 상대가 있는데 이 사람은 물론 후자다. 우익이 말이 안 통한다는 말만 들었지, 이런 마인드를 지닌 사람들인가 하는 생각에까지 미치자 무섭기까지 했다.

 

게다가 미즈노 교수는 옆에 앉아서 이런 결정적 대화에 대해서는 가만있고, 자기 와이프 경험을 빌어 한국인은 성형을 너무 좋아한다는 식의 신변잡기적인 말만 늘어놓고 있다. 아! 어릿광대가 된 기분. 내 옆에 앉아 있는 한국 유학생들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다.

 

그래도 지명도가 있는 기무라 유이치가 '도롬파'의 의견에 대해 반박을 하면서 논리적 결함에 대해 지적한다. 관객석에서도 도롬파에 대한 야유의 목소리가 나온다.

 

물론 결론은 "한류 붐으로 시작된 한일관계를 긍정적으로 이끌어 나가자"는 식으로 끝났지만, 아무래도 기분이 진정되지 않는다. 이래서 한국인을 열정적이라고 하나 보다.

 

우여곡절 끝에 3시간에 달하는 녹화가 끝나자, '도롬파'가 수고했다며 손을 내민다. 당연하게 무시했다. 극우와는 대화하지 않는다가 내 철칙이니까. 그리고 그의 얼굴을 쳐다보면서 한국말로 이야기했다.

 

"네 홈페이지 조심해라."

 

홈페이지라는 말은 알아들었던지 멀뚱멀뚱한 얼굴로 날 쳐다본다. 조금 있으니, 방송용 모니터를 보고 있던 아내가 다가오더니 엘리베이터 쪽으로 사라지는 그를 보면서 "오빠가 이겼어. 저 사람(도롬파) 말은 신경 쓰지마. 나도 깜짝 놀랐어"라고 흥분한 목소리다.

 

난 평균적인 일본인의 마음가짐이 아내 정도일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렇지 않다면 일본에서 살아가기 너무 힘들어질 것 같다. ‘쿨’함에 목숨을 걸고 있는 젊은이들은 과연 한일의 역사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을까?

 

욘사마에 열광하는 한류 붐이 부끄럽다고 감정적으로 내뱉는 그들이 이대로 역사를 모르는 채 성장해 버린다면, 그러다가 우연히 '도롬파' 같은 부류의 인간들이 제시하는 편파적인 데이터와 감정적인 사진들을 그런가보다, 하고 받아들여 버린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아무튼 하고 싶은 말은 거의 다 한 것 같아 후회는 남지 않았다. 1월 29일 심야 12시 50분부터 <니혼테레비>에 이날의 수록분이 방송된다고 한다. 혹시 일본에 계신 분들이 있다면 꼭 보아주길 바란다.


 

오마이뉴스 2005/01/28 오후 2:55  ⓒ2005 박철현


 
가져온 곳: [꿈에서 도망쳐라...]  글쓴이: 카무이790 바로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