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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

대학은 국가 경쟁력이다

신오덕 2005. 2. 27. 21:36

 


 

 

[ 성공 노트 ] 성공은 자신감이다

 

 

 

졸업생 ''홍수''… 인재는 ''가뭄''

 

 

 

 

 

 

 

 

 

 

 

 

 

 

 

 

 

 

 

 

 

 

 

대학은 국가 경쟁력 원천이다.

 

그러나 우리 대학의 국제 경쟁력은

 

초라하기 짝이 없다.

 

세계 100위권에 드는 대학이 한 곳도

 

없어 경제규모 세계 10위권이라는

 

우리나라 국제적 위상을 무색케 하고

 

있다.

 

게다가 현실과 동떨어진 교육으로 기업

 

에 엄청난 사회적 비용까지 부담케 하고

 

있다.

 

이제는 대학이 바뀌어야 한다.

 

대학이 변하지 않고는 선진국으로

 

진입할 수 없다.

 

‘애물단지’로 전락하다시피 한 대학의

 

문제점과 회생 해법을 4회에 걸쳐 짚어

 

본다.


편집자주

“한국 대학은 기업이 원하는 일꾼을

 

만들지도, 그렇다고 깊이 있는 학문을

 

연마한 교양인도 배출하지 못하고 있다.”

국내 한 대기업 최고경영자(CEO)의

 

이같은 준엄한 지적은 대학 교육

 

현주소가 어디에 있는지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기업인들은 대학 진학률이 80%를

 

넘는 데도 불구하고 쓸만한 인재가

 

없다고 하소연한다.

 

 

이 때문에 기업들은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기’ 만큼이나 어려운 경쟁률

 

을 뚫고 입사한 신입사원도 곧바로

 

현장에 투입하지 못한 채 재교육하는

 

데만 막대한 시간과 비용을 쏟아붓고

 

있다.

포스코 인사담당 관계자는 “신입사원이

 

최종합격하고 입사하기 전까지 관리

 

비용만 1인당 520만원 정도 들어가고

 

이후에도 계속 연수와 교육이 이어

 

진다”며 “입사 이전까지 배운 지식은

 

현장과 동떨어져 거의 무용지물이

 

된다”고 말해 대학교육의 현실성 결여

 

를 지적했다.

 

 

지난해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회원사 92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이공계 대학 졸업자를 숙련된 인력으로

 

양성하는 데는 2년이 걸리며, 비용은

 

1인당 1000만원 이상이 들어가는 것

 

으로 나타났다. 삼성그룹은 이공계열

 

신입사원 재교육에 연간 800억원 이상

 

을 쏟아붓고 있다.



전경련 산업조사실 이병욱 상무는

 

 

“기업인들은 신입사원이 대학에서

 

습득한 지식과 기술이 기업에서 필요

 

로 하는 수준의 26% 정도라고 생각

 

한다”며 “이는 대학과 산업계 간 정보

 

교류 등 연계가 이뤄지지 않기 때문”

 

이라고 지적한 뒤 “이공계 교수들이

 

기업의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것은

 

‘용역’을 쓰는 것일 뿐 진정한 교류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기업과 대학 관계자들은 대학과 산업계

 

괴리를 좁히기 위해서는 산학교류와

 

인턴십 등이 제도화돼야 한다고 말한다.

이를 위해서는 대학과 기업의 적극적인

 

참여뿐 아니라 정부의 제도적·재정적

 

지원이 필수적이라는 지적이다.

선진국들은 일찌감치 정부와 지방자치

 

단체가 나서 산학협력을 장려해 성공을

 

거두고 있다.

 

세계적인 국가경쟁력 평가기관인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의 2003년 산학

 

협력, 기술개발 및 상업화, 대학교육의

 

경제 유용성, 기초연구 분야 등의 평가

 

에서 각각 세계 1위에 오른 미국은

 

1980년 연방정부의 자금 지원으로

 

개발된 특허를 대학이 소유할 수 있도록

 

‘바이 돌(Bayh-Dole)’법을 제정, 대학이

 

기술이전을 주도하도록 해 연구력 향상

 

에 기여하고 있다.

 

또 94년에는 ‘학교 교육과 직업세계 연계

 

강화법’을 만들어 학교와 기업 간 연계

 

교육 프로그램을 강화했다.



이와 함께 연구 역량과 교수 질에 따라

 

미 전역 3500여개 대학 중 125곳을

 

연구중심대학으로 분류, 교육중심대학과

 

구분해 특화한 결과 미국 대학의 연구

 

개발 수준은 기업을 능가하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일본은 대학이 쌓은 연구성과를 상업화

 

하고 산학협력의 교량 역할을 하는 기술

 

이전 기관 설치를 허용하며, 국립대 교수

 

와 연구원들의 영리 목적 연구와 기술

 

상업화를 허용해 대학의 연구역량을

 

끌어올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

 

 

또 범 정부차원에서 산학협력 종합전략

 

을 수립하고 코디네이터와 지적재산권

 

전문가 1만명 이상 양성을 추진하고 있다.

산학협력을 국가 시책으로 추진하고

 

있는 중국은 대학이 기업을 직접 설립·

 

운영할 수 있도록 해 학생의 벤처 창업

 

을 적극 유도하고 있다.

 

정부도 산학협력 클러스터(집적단지)를

 

전국 각지에 조성했다.

 

그 결과 베이징대와 칭화대 등 40여개

 

대학이 직접 운영하는 ‘샤오반 기업’

 

총 매출액은 97년 4조2000억원에서

 

2001년 7조5000억원으로 급증했다.


자료 : 세계일보 2005. 2. 27

 

김수미·장인수·심재천 기자

 

한비자 [Hanfeitzu, 韓非子]중국 한 [漢] 철학자 | 브리태니커

한비자 요약정보

세부정보 확인
소속 국가 중국
소속 국가 부속정보 한(漢)
죽은 곳
죽은 때 BC 233.
직업 철학자
태어난 곳
태어난 때 ?
(병) Hanfeizi (웨) Hanfeitzu. ?~ BC 233.

중국의 법가 철학자.

진왕(秦王) 정(政 : 후의 始皇帝)은 그의 전제정부에 관한 이론에 깊은 감명을 받아 BC 221년 중국을 통일한 후 이를 통일국가의 정치원리로 삼았다. 그의 이름을 따라 한비자로 명명된 그의 저서는 당시 법가 이론의 총괄이다(→ 색인 : 중국철학).

한비자의 생애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그는 전국시대(BC 475~221)의 약소국이었던 한(韓)나라의 귀족 출신이었다. 한비자는 유가인 순자(筍子)의 문하에서 공부했으나, 나중에 순자를 저버리고 그당시 봉건체계가 붕괴되는 상황과 보다 밀접한 이론을 가진 다른 학파를 따랐다. 자신의 충고가 한 왕에게 무시당하자 한비자는 자신의 생각을 글로 쓰기 시작했다. 그는 말솜씨가 별로 없었기 때문에 자신의 이론에 대해 있을지도 모를 반론에 대한 논박도 글로 썼다. BC 221년 통일 후 시황제가 된 당시의 진왕 정은 한비자의 글을 읽고 이를 높이 평가했다. BC 234년 진은 한을 공격했고, 한왕은 한비자를 진에 협상자로서 파견했다. 진왕은 한비자를 보고 매우 기뻐하며 그에게 높은 직위를 주려고 했다. 진의 승상이자 이전에 한비자와 같은 스승 밑에서 공부한 이사(李斯)는 한비자가 자신보다 더 뛰어났기 때문에 왕의 총애를 잃을까 두려워, 한비자가 이심(二心)을 가졌다고 모함하여 그를 투옥시켰다. 이사는 한비자를 속여 그가 스스로 독약을 마시고 자살하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