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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

[스크랩] 王은 어떤 꿈을 꾸나

신오덕 2005. 3. 4. 08:30


photo : SHADHA님

    
    종일 햇빛 닿지 않는 곳 잔설殘雪은 시체 같다.
    새로운 계절이 이미 꿈틀거리건만 자리를 뜰 줄 모른다.
    나무는 가만히 촉수를 더듬어 땅 속 깊은 곳에 스민 맑은 물길을 찾는다.
    그리고 힘겹게 빨아올린 생명수를 가지 곳곳으로 보낸다.
    봄은 그렇게 오나 보다.
    王이라는 것이 좋은가.
    타고나지 않으면 썩 유쾌한 직책은 아니다.
    어느 화창한 날, 물이 올라 연두빛 생명이 오르는 가지를 잡고 감탄했다.
    저녁 무렵, 엄한 스승은 억제시키지 못한 임금의 감성 탓으로 몸소 매를 맞았다.
    몸짓이나 생각은 모두 정해진 곳에 맞추어져야 한다.
    한나절 일과를 마치는 대전 화랑은 무겁다.
    생각에 잠긴 임금을 위해 많은 나인들이 다소곳이 기다렸다. 
    진작 손을 휘저었어도 수족처럼 부려질 아이만은 물러나지 않았다.
    .....오늘 새삼스레 그 눈을 들여다 본다.
    어려도 꽃봉오리처럼 성숙해지는 모습을 보면 나날이 신선함을 느낀다.
    이제 갓핀 라벤다처럼 맑은 미소에 마주치면 설레인다.
    가만히 손 내밀어 본다. 
    마치 손에 닿을 것 같으므로...
    아이는 임금의 눈이 미치지 못하는 먼 곳으로 보내졌다.
    香이 강할수록 그 맛은 쓰다.
    王의 서정은 꺾였다.
    아침이면 공신들이 벌떼처럼 몰려와 머리를 조아린다.
    "王道를 걷지 않으면 결코 아무것도 허용될 수 없습니다." 
    체제(壁) 안에서 익힌 대로 행하는 일은 공허하다.
    지난 길과 걸어야 할 길에 주어진 것은 모두 내것이 아니었다.
    혼자 잠들 수밖에 없는 것은 숙명이다.
    무저갱처럼 벌린 아가리가 아득해도 뛰어들어야 한다.
    달리 주관하는 자 있기에.
    그 밤 꿈이 꾸어지지 않는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
    삶에 죽음의 본능(Thanatos)이 버티고 있다는 것이 오히려 다행이다.
    매듭으로도 삶과 죽음은 이어질 수 없는 것이어서.
    살아서 잃었던 것을 죽어서 얻었을까.
    이곳 宗廟에는 영면永眠을 방해받고 싶지 않은 무거움이 버티고 있다.
    그나마 흘러내린 구릉이 세상을 조금이나마 가린다.
    플라나리아처럼 미끈한 몸체 드러낸 나뭇가지가 헛간 거미줄처럼 벋었다.
    희뿌연 도심의 공기가 벽을 세우며 간극을 만든다.
    어쩌다 간신히 들린 새 소리마저 이리 낯설어야 하나!
    도시에 떠있는 이 외로운 섬까지 
    날개짓해 올 알바트로스처럼 강인한 가슴근육을 가진 새는 이제 세상에 없는걸까.
    王의 길을 걷던 者와 線상에서 王의 후손을 위해 마련되었을 왕비의 숨결은 멎었다.
    살아서 정해진 삶은 죽어서도 혼을 자유롭게 놓아두지 않았다.
    사십 度 가파른 물매 아래 구분되어진 각각의 신실로 삶은 구분된다.
    신실 한 칸마다 겨우 주어진 툇간을 안고 
    이어진 열아홉 칸으로 정전 전체가 아우러진다.
    과거의 영화가 더 이상 지탱될 수 없는 미래에 묻혀 망각 속에 스러진다.
    방형으로 받힌 주춧돌 위로 배흘림한 나무 기둥이 멋스럽게 솟았다.
    우러난 단순미가 저절로 마음을 가라앉힌다.
    가슴 아래 서늘하게 오른 감흥이 주칠마감과 녹색 마구리로 절제된다.
    암키와와 수키와가 얽힌 세로골이 시야를 가로막는다.
    지붕 꼭대기 용마루 위 양성 횟칠이 이승과 저승을 구분하는걸까.
    先代를 위해 기꺼이 무릎 꿇었을 후손이 잠시나마 머물렀을 자리에
    침묵과 정적이 고요하게 가라앉는다.
    그래도 이 宗廟 정전 바깥에 봄은 달려오고 있을 터인데. 
'Romance' Suite from 'the gadfly' Op.97a * Dmitry Shostakovich



아킬레우스의 화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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