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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

[스크랩] 로버트 라이시의 부유한 노예(The Future of Success)

신오덕 2006. 2. 22. 14:25
이 책이 그리고 있는 현재 미국의 모습은 암울하기 그지 없습니다. 그리고 그 모습은 신자유주의를 '世界化'로 받아들이며 앞으로 앞으로 열심히 나아가고 있는 우리 나라의 미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 책은 다음과 같은 의문에서 출발합니다.

"분명히 수십 년 전보다 더 잘 살게 되었는데 왜 우리는 예전보다 훨씬 더 많은 일을 해야 하고 늘 쫓기고 있을까?"

기술의 발달로 육체 노동에서 해방되고 물질적으로 풍요로와지면 인간이 보다 행복해질 것이라는 생각은 수백 년 전부터 있어왔습니다. 그런데 왜 물질적으로, 기술적으로 훨씬 더 풍요롭고 편리한 세상이 찾아왔는데 우리 삶의 여유는 늘기는 커녕 더욱 줄고 있고 미래는 갈수록 불안해져 가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굉장히 귀기울여 볼만한 질문이죠?
 
우리는 수요자이자 공급자, 저자가 밝히는 이유는 이렇습니다.

소비자 또는 수요자로서 풍요로움을 누리는 댓가로 우리는 공급자로서 심한 경쟁의 압박을 견뎌야 합니다. 본질적으로 우리는 소비자이면서 공급자이기 때문에 소비자로서의 편리함이 늘수록 부메랑처럼 공급자로서의 부담이 커집니다.

저자는 정보기술(Information Technology)을 비롯한 기술의 발달이 사실상 완전정보 및 전환비용 제로의 환상적인 구매 환경을 만들어 주고 있다는 점을 역설합니다. 요즘, 아무리 조그마한 물건 하나를 사더라도 매장에 그냥 덥썩 찾아가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인터넷상에서 클릭 몇 번만으로 구입하려는 제품이나 서비스의 종류와 장단점, 사용후기, 가장 싸게 파는 곳은 물론이고 온라인 상으로 바로 구입하는 것마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정보 비대칭이 거의 사라져가기 때문에 소비자로서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환경이면서 공급자에겐 이보다 더 힘든 환경이 없습니다. 저자가 'IT 혁명과 신경제'를 주창했던 클린턴 행정부 초기의 각료를 지내었기 때문인지, 책의 전반부와 중반부는 정보기술이 어떻게 소비자로서의 우리에게 커다란 혜택을 주고 있는지를 실감나게 그려내고 있는데요. 닷컴 붐이 한창일 때 얘기되던 '마찰 없는 시장'을 실감나게 그려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건 이미 현실이기도 합니다.

내 제품에서 다른 제품으로 손쉽게 옮겨타는 것이 가능해진 이 시대에 공급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따라서, 한없이 힘들고 고달플 수밖에 없습니다. 선두에 나서고 있더라도 언제 떠나버릴지 모를 고객 때문에 늘 불안에 시달려야 하며, 후발주자는 더욱 쫓아가기 힘든 상황에서 고전합니다.
 
기술의 발달은 비단 시장을 완전하게 만들어가는 데에 그치지 않고 사람이 하던 일 자체를 대체해 나가며 고용 불안을 야기합니다. 컴퓨터와 인터넷의 보편화 이후 사라져 버린 직종이 얼마나 많았던가요? 저자는 그 실상을 하나하나 구체적 예를 들어가며 보여줍니다. 빠른 기술 발전 속도와 변화하는 세태는 현재 좋은 직종에서 좋은 지위를 누리고 있더라도 활동 수명을 계속해서 줄여나가고 있습니다. 성공한 자는 성공한 자대로 '벌 수 있을 때 열심히 벌자'는 생각을 하게 되고 뒤쫓아가는 자는 더욱 더 초조해집니다. 양 쪽 모두 쉴 수 없습니다.

각자 자기 이름으로 승부한다

저자는 거의 모든 직종이 프로 스포츠 선수같은 성격을 갖게 되었다는 얘기를 합니다. 프로야구 선수처럼, 활동 가능 연령이 제한되어 있고 매년 성과에 따라 연봉 협상을 하며, '팀'이 아닌, 자신의 이름이 곧 자산인 시대가 이미 도래를 했다는 것입니다. 스타 플레이어는 회사측에서 모셔가고자 노력하고 커다란 보상을 받게 되지만, 크게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 선수는 기회도 잘 주어지지 않을 뿐 아니라 제한된 남은 활동기간 안에 성공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더욱 시달리게 됩니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이것은 이미 우리 곁에 성큼 다가선 현실입니다.

그러므로 성공하고 있든 그렇지 않든 더욱 열심히 일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일을 위해 자신의 모든 개인적 시간과 정신적 에너지, 가족과의 관계도 희생하려 합니다. 소비자로서 편리해진 만큼 공급자로서는 더욱 힘들어진 세상이 도래했다는 점이 물질적으로 훨씬 더 풍요로와졌음에도 불구하고 더욱 치열한 경쟁과 불안감 속에 살아가게 되는 첫번째 이유입니다.

승자 독식과 서열화

활동 기간은 짧아지고 지위는 위태로와진 반면, 성공하기만 하면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보상이 주어지기 때문에 우리는 더욱 쉴 수가 없습니다. 내가 어떤 분야에서 성공을 해서 수억 원, 수십 억원의 연봉을 받는 경우 일 년을 쉬는 기회 비용은 그렇지 않은 경우의 기회 비용보다 훨씬 큽니다. 승승장구하고 있더라도 바로 지금 더 열심히 해야 한다는 동기유발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일을 포기하고 여유를 찾음으로써 잃는 것이 너무 커져버렸습니다.

마지막으로 많은 것들이 서열화되어 가고 있다는 점 역시 우리를 쉬지 못하게 합니다. 사는 지역을 생각해 봅시다. 과거에는 지금처럼 좋은 곳과 나쁜 곳이 이렇게까지 편차가 갈리지는 않았습니다. 생활의 터전이란 대개 나고 자란 부근이 되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시대가 바뀌었습니다. 이제는 '어디에 살 것인가' 역시 하나의 상품이 되었습니다. 풍부한 정보를 바탕으로 얼마든지 선택할 수 있습니다.'좋은 지역'과 '나쁜 지역' 사이의 편차 역시 점점 더 벌어져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좋은' 지역에 살기 위해서는 많은 댓가를 치뤄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 나라의 현재 모습 이상의 예가 없을 것입니다. 대다수가 '서울', 그 중에서도 특히 '강남'에 진입하기 위해서 기를 쓰고 노력하는 이유는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 '강남'에서 살기 위해서 치뤄야 하는 비용은 갈수록 높아져 가고 있으며 그것은 곧 굳건한 진입장벽이 되어 신규 진입을 까다롭게 합니다. 양질의 교육 환경과 생활 환경, 고급 정보는 진입장벽내에서만 유통되며 이는 곧 교육과 문화적 자본을 통한 보다 더 은밀한 형태의 신분세습을 가능케 합니다.

서열화는 비단 사는 지역에만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 나라에서도 심각한 대학 서열화의 문제도 같은 맥락입니다. 미국도 점차 '좋은' 대학을 나온 경우와 그렇지 못한 경우의 진로와 대우의 편차가 커져가고 있어서 예전처럼 별 생각 없이 자기가 나고 자란 주의 주립대학으로 진학하는 경우가 자꾸 줄어들고 있다는 점을 저자는 얘기하고 있습니다. 어떤 학교를 나왔느냐가 너무나 많은 기회의 차이를 낳기 때문에, 즉 걸린 것이 많기 때문에, 그 '승부'에 임하는 학부모나 학생은 마음의 여유를 갖기 힘듭니다.
 
이것은 미국보다 우리 나라의 상황이 더 잘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유치원 때부터 학벌을 생각하며 '좋은' 또래 집단에 넣어서 '연'을 만들어 주려고 노력하는 것이 바로 너, 나, 우리의 모습이니까요. 저자는 개인적 차원에서는 단순하게 내 아이들과 내 형제들을 위해서 노력들을 기울이는 것이 전체적으로 모이면서 심각한 사회적 불균형을 낳게 됨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언제든지 쉽게 떠나버릴 수 있는 소비자를 어떻게 하든 붙잡아야 한다는 압박감,
성공한 경우와 그렇지 못한 경우의 차이는 전례가 없을 정도로 크다는 점,
조직의 이름이 아닌 나의 이름으로 승부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는 점,
모든 것이 서열화되고 있고, '좋은' 집단에 들어선 경우와 그렇지 못한 경우의 차이가 너무 크다는
점이 함께 작용하면서 우리는 일에 찌들어서 살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 과장이 아니죠? 책의 후반부 "Choice" 부분에서는 이러한 시대를 살아가는 한 개인이 어떤 선택을 할 수 있는지를 얘기하고 있습니다만 별로 희망적인 메시지는 보이지 않습니다. 이 책을 통해서 느낀 것은 후반부에 나오는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보다는 전반, 중반부에 묘사된 우리 시대 모습의 암울함이었습니다.

인간을 더욱 편리하게 만들어줄 것으로 생각했던 기술의 발달과 효율적 시장이 어떻게 우리 삶과 가족을 파괴하고 있는지, 사회를 분절화하고 공동체를 파괴하고 있는지 이 책은 구체적 사례를 통해 실감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출처 : 블로그 > 세상은 내게 말한다. | 글쓴이 : 내게 말해봐 [원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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