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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부차기 잔혹사

신오덕 2006. 7. 11. 16:27

 

 

 

 

[만물상] 승부차기 잔혹사

 

 


오스카 와일드가 말했
 
다.
 
“축구는 섬세한 청년들
 
에겐 맞지 않다”고.
 
 
공이라는 둥그런 물신
 
(物神)이 영웅과 역적
 
을 가르는 축구, 거기
 
서도 가장 잔인한 것이 페널티킥이다.
 
 
 
키커와 골키퍼는 생사를 걸고 콜로세움에 외롭
 
게 마주 선 검투사들이다.
 
 
 
긴장으로 종아리가 터질 듯 팽팽하다.
 
서로 노려보건 공만 응시하건 둘은 굶주린 관중
 
앞에 번민과 두려움을 감출 수 없다.
 
 
인생을 굴리듯 공을 차 넣고 악운을 거스르려 몸
 
을 던진다.
 
그러곤 환호하거나 낙담한다.

 

 

 

 

▶1969년 동대문운동장에서 벌어진 멕시코월드

 

컵 예선 호주전에서 임국찬은 승부가 걸린 페널

 

티킥을 넣지 못했다.

 

 

한국은 월드컵 진출의 꿈을 접었다.

 

졸지에 역적이 된 임국찬은 미국으로 이민가야

 

했다.

 

 

 

1960년대 초반 페널티킥이 승부를 내는 수단이

 

되면서 이 ‘11m 러시안 룰렛’은 더욱 잔혹해졌

 

다.

 

 

 

월드컵에는 1982년 선을 보였다.

 

예전엔 연장전에서도 승부가 안 나면 재경기를

 

치렀다.

 

올림픽에선 동전 던지기로 승패를 가렸었다.

 

 

 

 

▶승부차기에서 시속 100㎞로 공을 차면 11m를

 

날아가는 데 0.4초 가량 걸린다.

 

 

 

골키퍼가 공을 보고 몸을 날리는 데 0.6초가 걸

 

리니 이론적으론 막아낼 수가 없다.

 

 

그러나 한일월드컵까지 승부차기 150개 가운데

 

116개만 들어갔다.

 

 

성공률 77%다.

 

 

승부차기는 과학이 아니라 피 말리는 심리전이

 

다.

 

 

 

원정보다 홈경기 승률이 2%쯤 낮다거나, 먼저

 

차는 쪽 승률이 6% 높다는 통계도 심리적 부담

 

을 말해준다.

 

 

유소년축구에선 승부차기를 금하는 나라가 적지

 

않다.

 

 

 

 

▶어제 승부차기까지 간 독일월드컵 결승에서

 

이탈리아가 프랑스를 제치고 우승했다.

 

 

승부차기로 우승을 가린 것은 1994년 미국월드

 

컵 이래 두번째다.

 

 

 

미국에선 이탈리아가 울었었다.

 

 

마지막 키커로 나선 ‘말총머리’ 바지오가 골대

 

너머로 공을 날려버린 순간 우승은 브라질 것이

 

됐다.

 

 

 

이탈리아는 미국월드컵까지 3차례 승부차기에

 

서 모두 졌었다.

 

 

15개 중 8개만 넣었을 뿐이다.

 

 

 

 

▶이탈리아가 불운을 넘는 사이 승부차기는 축

 

구사(史)에 또 하나 패자를 만들었다.

 

 

 

 

프랑스 키커 가운데 혼자 실축한 트레제게다.

 

 

경기 끝나고 시상식 때까지도 앙리, 사뇰, 바르

 

테즈를 비롯한 동료들이 트레제게의 머리를 만

 

져 주거나 껴안으며 위로했다.

 

 

 

동병상련.

 

 

 

그래도 트레제게는 풀이 죽은 채 입을 꼭 다물고

 

있었다.

 

 

 

그가 악마의 덫에서 벗어나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이다.

 
 
오태진 수석논설위원 tjoh@chosun.com
 
입력 : 2006.07.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