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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여행의 추억을 간직하라

신오덕 2006. 9. 22. 19:29

 

 

 

 

[만물상] 수학여행

 

 

 


30대 후반 작가
 
김연수가 초등학
 
교 6학년 때 1박
 
2일로 경주 수학
 
여행을 갔다.
 
 
친구들과 함께 탄
 
새벽 완행 열차, 목이 싸한 사이다,
 
더러운 이불에 천장이 울퉁불퉁한
 
방에서 수십명씩 자고, 잠든 친구 얼
 
굴과 사타구니에 사인펜으로 그림을
 
그리고….
 
 
수학여행에서 난생 처음 바다를 보
 
고 온 뒤 그는 동네 꼬마들과 더 이
 
상 어울리지 않았다고 했다.
 
 
그에게 수학여행은 조무래기를 벗어
 
나 중학생이 되는 관문이었다.

 

 

 

▶수학여행은 또래들끼리 집을 떠나

 

처음으로 바깥 잠을 자는 설레는 모

 

험이었다.

 

 

수학여행의 백미는 관광지 구경거리

 

보다 여관방이었다.

 

 

선생님들이 방을 돌며 “소등”을 외

 

친 뒤에도 아이들은 이불을 뒤집어

 

쓴 채 숨겨 온 술병을 돌려 마시거나

 

화투판을 벌였다.

 

 

사고만 치지 않으면 선생님들도 못

 

본 척해 줬다.

 

 

여관 앞 선물 가게를 기웃거리며 부

 

모님 드릴 효자손이나 안마봉을 고

 

르는 일도 가난했던 아이들에겐 색

 

다른 경험이었다.

 

 

▶수학여행의 기억 중엔 가지 못한

 

아이들의 것도 있다.

 

 

반마다 수학여행비를 못낼 만큼 형

 

편이 어려운 아이들이 어김없이 몇

 

명씩 있었다.

 

 

간혹 남 몰래 돈을 내주고 함께 데려

 

가는 선생님이나 급우들의 사연이

 

뒤따랐다.

 

 

남은 아이들은 계속 학교에 나가야

 

했다.

 

한 반에 모여 앉아 교과서 베끼기처

 

럼 지루한 자습이나 숙제를 하면서

 

여행 간 아이들 생각을 떨치지 못했

 

다.

 

 

▶올해 서울 경기 부산 대구 대전, 5

 

개 지역 고교 635곳 가운데 39곳이

 

수학여행을 해외와 국내로 나눠 갔

 

거나 갈 계획이라고 한다.

 

서울 어느 여고는 작년에 94만원 하

 

는 일본 여행과 71만원짜리 중국 여

 

행, 16만원짜리 국내 여행까지 세

 

가지 코스를 마련해 학생들이 고르

 

게 했다.

 

 

열 몇대씩 대형 버스에 나눠 타고 판

 

에 박힌 관광지를 건성으로 돌던 것

 

을 생각하면 세상 참 많이 달라졌다.

 

 

 

▶교육 당국은 2001년부터 수학여

 

행을 되도록 주제·학급별 소규모 단

 

위 교육활동으로 다양하게 진행하라

 

고 권한다.

 

 

하긴 어려서부터 부모 따라 웬만한

 

곳은 다 다녀본 아이들에게 경주나

 

설악산은 시들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행선지와 내용을 달리하는

 

‘테마 수학여행’이 많아졌다지만 비

 

싼 해외 여행까지 경쟁적으로 내세

 

우는 건 아무래도 지나치다.

 

 

못 가는 학생들의 가슴에 남는 상처

 

는 가난하던 시절보다 더 아플 수 있

 

다.

 

 

수학여행의 기억이 평생 소중한 것

 

은 모두가 함께하는 ‘공동 체험’이었

 

기 때문이다.

 
 
 
김기철 · 논설위원
 
 
 
입력 : 2006.09.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