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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이어령

신오덕 2006. 11. 22. 15:41

 

 

[만물상] ‘시인 이어령’

 


“헤밍웨이는 끊임없이
 
남성다운 면모를 보여줘
 
야 한다는 ‘마초(Macho)
 
강박’에 눌려 있다.
 
 
떡 벌어진 어깨처럼 그는
 
인조털로 가슴을 장식한
 
듯한 문체를 쓴다.”
 
 
이렇게 독설을 퍼부은 평론가는 ‘마초 맨’ 헤밍웨
 
이에게 흠씬 두들겨 맞았다.
 
 
체호프는 평론가를 “말 궁둥이에 붙어 괴롭히는
 
등에”에 비유했다.
 
 
체호프는 그러는 등에도 스스로 왜 그렇게 윙윙
 
대는지 모를 거라고 비웃었다.

 

 

▶공지영은 베스트셀러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

 

“얕고 감상적”이라는 평론가들에게 쏘아붙인다.

 

“그들은 언제나 잘 팔리는 책에 인색하다. 떠들어

 

라.

 

난 내 길을 가겠다.”

 

 

평론가는 언제나 작가보다 현명하다고 믿고, 작가

 

는 평론가들을 창작에서 낙오한 무리쯤으로 여긴

 

다.

 

“평론가들은 바보다.

 

칭얼대는 어린아이 하나 달랠 줄 모른다.”

 

 

황지우는 칭찬에 인색한 평론가와 그 평론가에게

 

좋은 말을 듣고 싶어하는 문인들을 한꺼번에 꼬집

 

었다.

 

 

▶등단 50년을 맞은 일흔두 살 원로 비평가 이어

 

령이 서로 갈라서서 냉소할 뿐 선뜻 가로지르지

 

못할 평론과 시(詩)의 경계선을 넘었다.

 

계간 ‘시인세계’에 2편을 실어 시인으로 데뷔했

 

다.

 

‘도끼 한자루’에선 이 시대 쓸쓸한 아버지상(像)을

 

연민한다.

 

‘어둠 속에서 너희들을 끌어안는 팔뚝에 힘이 없

 

다고/ 겁먹지 말라/ 사냥감을 놓치고 몰래 돌아와

 

훌쩍거리는/ 아버지를 비웃지 말라/ 다시 한 번 도

 

끼를 잡는 날을 볼 것이다.’

 

 

▶이어령은 “결국 시인이 되기 위해, 시를 통해 글

 

쓰기의 마지막 승리를 거두기 위해 50년 동안 글

 

을 써 왔다”고 했다.

 

 

‘바다 속에서 전복 따 파는 해녀도/ 제일 좋은 건

 

님 오시는 날 따다 주려고/ 물속 바위에 붙은 그대

 

로 남겨둔단다’(서정주·시론).

 

 

이어령은 “내게도 시는 미당의 전복 같은 거였다”

 

고 했다.

 

 

시인에의 충동을 평생 애써 아끼고 눌러 왔다는

 

얘기다.

 

 

▶이어령은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에선 시심(詩

 

心)이 용솟음치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저 무지한 사람들의/ 가슴 속을 풍금처럼 울리게

 

하는/ 아름다운 시 한 줄을 쓸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고희를 넘긴 이 새내기 노(老)시인의 갈증에서 “시

 

는 모든 지식의 숨결이자 정수(精髓)”라는 워즈워

 

스의 말을 실감한다.

 

 

장르의 벽이 유달리 두터운 우리 문단에서 이어령

 

의 ‘시 탐험’은 작지만 값진 자극이다.

 
김기철 논설위원 kichul@chosun.com
 
입력 : 2006.11.20 22:43 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