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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살이가 힘든 이유

신오덕 2011. 8. 11. 13:29

[광화문]억대 연봉, 강남아파트 있어도 힘들다?

머니투데이 | 박창욱 생활경제부장 | 입력 2011.08.11 12:44




[머니투데이 박창욱생활경제부장]#. "아이고, 형님이 살기 힘들다고요? 그럼 세상에 안 힘든 사람이 없겠네요."

얼마전 만났던 한 선배의 엄살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증권사에 다니는데 연봉이 억대다. 강남 한 복판에 아파트도 있다. 그런데도 살기 힘들다니. '쳇, 이 양반이 누굴 놀리나.'

사정을 들어보니 대출을 많이 받아 산 집 때문에 힘들단다. 이자 내고 나면 강남에서 아이 교육시키기엔 생활비가 너무 모자라 허덕인다고 했다. 그래서 저축도 어렵단다. 집 때문에 생활 자체가 어려운 '하우스 푸어'까진 아니지만, 그 선배는 노후 걱정을 크게 하고 있었다.

교육환경이 좋다고 알려진 목동 같은 데로 집을 옮기면 어떠냐고 했다. 그럼 몇 억원은 남을 텐데, 투자 전문가이니 그걸 잘 굴리면 되지 않겠냐고 말이다. 그런데 그건 안 된단다. 특히 부인의 입장이 완강하다고.

그 선배 역시 "지금 힘들긴 하지만, 어떻게 강남에 입성했는데 다시 나갈 순 없다"고 했다. "여기와 몇 년 살아보니 교육 환경 자체가 다르고, 아이 엄마가 나가는 모임 구성원의 수준도 달라. 그리고 재산으로 강남 아파트만한 것도 별로 없고. 다른 건 다 떨어져도 강남 아파트만큼은 안 떨어질 테니."

#. 최근 내린 폭우에 강남 중심부 일대가 큰 물 난리를 겪었다. 산사태로 우면산 인근 전원주택지에선 목숨을 잃는 사람이 나오기도 했다. 이전까지 강남은 살기 좋고 안전한 곳으로 알려져 있었던 지라, 많은 사람들이 물난리 소식에 놀라워 했다.

한편에선 이렇게 물난리가 날 정도로 허술한 데, 강남 집 값이 지금처럼 비싸도 되냐며 성급하게 '폭락 가능성'을 거론하는 이도 나왔다. 그 이야기를 듣다보니 예전에 읽었던 책 '튤립, 그 아름다움과 투기의 역사'(마이크 대시 지음, 정주연 역, 지호)의 내용이 떠올랐다. 책에는 17세기 네덜란드에 불었던 튤립 투기 바람이 얼마나 허망했던 것인지를 보여주는 에피소드가 소개돼 있다.

암스테르담에서 온 한 상인이 비싸고 희귀한 튤립 구근을 샀다. 상점 계산대에 그 튤립 구근을 잠깐 올려놨는데 한 눈을 판 사이 구근이 사라지고 말았다. 미친 듯이 근처를 뒤져보니 배가 고팠던 선원이 그걸 먹어치우고 있었다. 그 선원은 비싼 튤립 구근이 양파인 줄 알았던 것이었다. 선원은 요샛말로 아파트 한 채 값을 순식간에 먹어버린 셈이었다.

영국인 여행가의 경우도 있다. 그는 부유한 네덜란드 사람의 집에 하루 묶었는데, 호기심에 온실에 있던 튤립 구근 하나를 주머니칼로 잘라 보았다. 그런데 그 튤립은 엄청난 고가였고, 여행가는 결국 법정에 서야 했다.

#. 장 보드리야르의 표현을 빌자면 대한민국에서 강남 부동산은 성공을 의미하는 가장 강력한 '시뮬라르크'(상징적 대체물)다. 부유층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고위공직자나 정치인의 재산공개 목록에서도 으레 강남 부동산이 첫머리에 나온다. 한 나라를 끌어가는 지도층의 경제적 시야가 안 그래도 작은 대한민국에서도 수도의 일부지역에 국한돼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정말 서글픈 일이다.

유럽과 미국에서 촉발된 최근 글로벌 위기 속에서 한국 증시는 가장 큰 타격을 입었다. 이렇게 된 주요 원인 가운데는 국내 투자 기반과 저변이 상대적으로 취약하다는 점이 자주 거론된다.

미·유럽계 투자자의 동향에 시장이 휘둘리지 않도록 정부와 전문가들이 이런 저런 대책을 고민하고 있지만, 앞으로도 이런 현상은 당분간 이어질 것 같다. 대한민국에서 성공의 시뮬라르크가 강남 부동산이 아닌 주식, 특히 대한민국 대표 우량주로 바뀌기 전까지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