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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 상품을 설계하는 기회자를 만나라

신오덕 2013. 11. 6. 10:56

주간조선] 갤럭시S와 갤럭시노트 모두 상품기획한 이 사람이 내다보는 3~5년 후...

 

입력 : 2013.11.06 10:25 | 수정 : 2013.11.06 10:32


	[주간조선] 갤럭시S와 갤럭시노트 모두 상품기획한 이 사람이 내다보는 3~5년 후...
삼성전자 본사가 있는 수원으로 향하던 지난 10월 25일 스마트폰에 뉴스가 떴다. 삼성전자가 지난 3분기 매출 59조834억원, 영업이익 10조1635억원을 올렸다는 뉴스였다. 이 중 모바일 사업을 담당하는 무선사업부(IM부문)는 매출 36조5700억원, 영업이익 6조7000억원을 기록했다. 삼성전자 전체 매출의 62%, 영업이익의 66%를 담당하는 경이적 수치였다.

삼성전자 무선사업부의 막대한 실적은 삼성전자 윤한길(51) 전무(공학박사)로부터 시작된다. 윤 전무의 직함은 무선사업부 전략마케팅실 그룹장. 삼성전자가 내놓는 스마트폰, 태블릿PC, 피처폰 등 모바일 기기 대부분의 글로벌 상품기획(PP)을 한다. 삼성전자 모바일 기기를 세계 1위로 끌어올린 갤럭시S와 갤럭시노트 등 양대 플래그십 시리즈도 모두 그의 손을 거쳐 탄생했다.

지난 10월 25일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삼성로에 있는 삼성전자 수원디지털시티 내 모바일연구소(R5) 1층 미팅룸에서 그를 만났다. 지난 6월 가동을 시작한 ‘R5’는 삼성전자 무선사업부의 모바일 연구 인력 1만명이 집결해 있는 두뇌에 해당하는 곳이다. 수원디지털시티에서 가장 철저한 보안을 자랑하는 지상 27층 쌍둥이빌딩으로, 기자를 안내한 삼성전자 커뮤니케이션팀의 고호진 대리도 연구소 상층부 접근이 불허될 정도였다.

R5 모바일연구소에서 윤한길 전무가 맡은 일은 ‘세상에 없는 제품 기획’이다. 또 기존에 있던 제품의 연장선상에서 창의력과 기술력을 더해 혁신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그가 이끄는 팀은 시장조사, 소비자조사, 기술조사, 디자인과 콘텐츠조사 등 제품 출시에 필요한 모든 조건들을 분석해서 상품기획을 올린다. 대략 갤럭시S 시리즈와 같은 상품 기획에 걸리는 시간은 1년에서 1년6개월 사이라고 한다.

삼성전자의 사실상 첫 번째 스마트폰 성공작인 ‘갤럭시S’ 역시 내부코드명 ‘갤럭시’ 아래 이 같은 과정을 거쳐 나왔다. 지금은 상반기에는 갤럭시S, 하반기에는 갤럭시노트 시리즈를 출시하는 전략을 쓰고 있다. 현재 판매 중인 갤럭시S4는 지난 4월에 나온 제품이고, 갤럭시노트3는 지난 9월에 출시했다. 그는 “5개월 만에 플래그십 모델을 연이어 내놓은 것”이라고 자랑했다.

그가 기획한 모바일 기기는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상대로 팔린다. 그는 “시장과 소비자 조사는 적어도 5~10개국을 훑어야 한다”고 했다. 각국별 트렌드와 시장조사를 바탕으로 ‘소구점(訴求點)’, 즉 ‘세일즈 포인트’를 마련하는 것이 첫 번째 임무다. 그는 ‘세일즈 포인트’에 대해 “고객이 ‘이 제품 뭐가 좋아요?’라고 물었을 때 대답할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이후 이 같은 ‘세일즈 포인트’에 따라 제품이 기획, 설계, 제조되고 마케팅과 광고, 판매원 교육도 이뤄진다.

예컨대 갤럭시S4가 지향한 ‘삶의 동반자’란 가치가 그것이다. 원래 전작인 갤럭시S3 때는 ‘사람을 위한 디자인’이란 뜻의 ‘디자인 포 휴먼’이었다. 이후 ‘휴먼’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간 ‘삶(Life)’이란 가치로 바뀌면서 남녀노소 누구나 생활 속에서 사용하는 헬스 관련 기능 등이 본격적으로 스마트폰에 들어갔다. 또 갤럭시S4의 광고 역시 ‘삶의 동반자’란 가치에 맞게 제작된 후 신문과 방송을 통해 전 세계로 퍼져나간다.

물론 ‘삶의 동반자’란 뜻의 ‘라이프 컴패니언(Life Companion)’을 슬로건으로 내놓기까지는 기획단계서부터 엄청난 격론이 오간다. 이후 무선사업부 최고책임자(신종균 사장) 선에서 최종 결재를 받아 제품 개발에 착수한다. 윤 전무는 “이건희 회장 선까지는 올라가지 않는다”고 했다.

서울대 컴퓨터공학과를 나온 윤한길 전무는 LG전자 정보통신연구소를 거쳐 미국의 IT 솔루션업체 오라클에서 일했다. 미국에 있던 그를 영입하기 위해 삼성전자 측이 접근했다. 당시 고국으로 돌아와야 할 필요를 느끼던 그는 영입 제안을 흔쾌히 수락하고 12년간의 미국 생활을 접었다.

2005년 삼성전자에 영입됐을 때만 해도, 윤 전무는 소프트웨어 개발을 담당했다. 2007년 거대한 변화가 삼성전자를 흔들어 놨다. 스티브 잡스가 이끄는 애플이 아이폰(2G)을 내놓았다. 사실 그는 “아이폰이 처음 나왔을 때만 해도 애플의 MP3 플레이어인 ‘아이팟’에 전화기 기능을 접목한 제품” 정도로 봤다고 했다. 사실 초창기 아이폰은 2G로 출시됐고 앱스토어도 탑재되지 않아 파괴력이 상대적으로 덜했다고 한다.

하지만 2008년 7월 앱스토어를 탑재한 아이폰3G 모델이 출시되면서 ‘쓰나미’가 밀어닥쳤다. 삼성전자는 마이크로소프트(MS)의 윈도모바일 운영체제(OS)를 탑재한 ‘옴니아’ 스마트폰을 출시하고 반격에 나섰지만 역부족이었다. 2010년 구글 안드로이드OS에 기반한 갤럭시 모델을 출시한 뒤에야 애플발(發) 쓰나미를 겨우 저지할 수 있었다고 했다.

◇ “과거 우리나라에서 PC를 다루던 인력들 지금은 거의 다 모바일 분야로 넘어와 있어”

그에 따르면 모바일 기기의 경우 산업 자체의 특성상 속도가 워낙 빠른 편이다. “회사가 명운을 걸고 출시하는 플래그십 모델의 경우 막대한 돈이 투입되기 때문에, 한번 실패하면 회사가 넘어갈 정도로 위험부담이 크다”는 것이 그의 말이다. 삼성전자는 갤럭시S 이후 출시한 모델들이 대부분 선전했지만, 모든 기업이 그런 것은 아니다. 그는 그 예로 구글에 넘어간 모토로라, MS에 피인수된 노키아를 거론했다.

그간 삼성은 ‘빅 스크린’을 앞세워 ‘스크린 경쟁구도’를 상당히 잘 써먹었다. 그는 “스마트폰은 기본적으로 휴대폰이기 때문에 휴대가 가능해야 하고 손에 쥘 수 있고, 주머니 속에 들어가야 한다”며 “스마트폰 사이즈에 한계가 있는 것은 기정 사실”이란 걱정도 했다. 이 사이즈 이상은 가방 속에 들어가는 태블릿PC로 넘어가게 된다.

대신 윤 전무가 가장 주목하는 것은 ‘카메라’ ‘네트워크’ 등 모바일 기기의 하드웨어 성능이다. 그는 “회사에서 퇴근한 뒤 집에서 PC를 거의 안 켜는 사람들이 많아질 정도로 PC컴퓨팅이 사실상 저물고 모바일 컴퓨팅이 대세가 된 이상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가 PC의 역할을 충분히 대신할 수 있을 만큼 성능적 발전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그는 “네트워크, 프로세서, 브라우징 환경 등이 기능적으로 ‘빵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에 따르면 과거 우리나라에서 PC를 다루던 인력들은 지금은 거의 다 모바일 분야로 넘어와 있다. 국내 모바일산업의 주력군을 형성하는 인력들도 당시 그와 함께 PC를 연구하던 인력들이라고 했다. 그는 “1980년대 말까지만 해도 PC가 지금의 모바일과 같은 위치였다”고 말했다.

“아직 좀 이른 감이 있지만 결국에는 모바일 기기가 웨어러블(Wearable, 착용가능한) 형태로 가지 않겠느냐”는 것이 그의 조심스러운 전망이다. 그 시기로는 향후 3~5년을 꼽았다. 삼성전자가 지난 9월 출시한 웨어러블 기기 ‘갤럭시 기어’를 손목에 찬 그는 “1981년 첫 등장한 IBM PC가 여전히 각 가정마다 있는 것처럼 스마트폰 자체가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며 “3~5년은 존재감이 커지는 시기”라고 했다.

웨어러블 기기의 대표로 갤럭시 기어 같은 손목시계, 구글 글래스 같은 안경이 있다. 그가 직접 상품기획에 관여한 제품은 아니지만, 삼성전자의 첫 웨어러블 기기인 ‘갤럭시 기어’도 그렇게 출시됐다. “사용자가 디스플레이를 직접 보며 사용하려면 손목시계 형태의 기기가 웨어러블 기기로 가장 적합하다는 판단 끝에 갤럭시 기어가 나왔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그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나왔던 기술들이 하나씩 실현되는 방향으로 갈 것”이라며 “무인항공기도 옛날 공상과학영화에 나왔던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가 향후 등장할 것으로 내다본 것은 언제 어디에서나 접근할 수 있는 디스플레이와 인터넷이다. 가령 길을 걷다 어딘가를 ‘툭’ 건드리면 가상 디스플레이가 뜨고 이를 통해 인터넷에 접근할 수 있는 영화 속 장면이 현실화된다는 얘기다.

이를 위해서 그는 “상품기획 과정에서부터 협력업체들과 기술적 부분에 대해서 수없이 미팅을 가진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단순히 기술만으로는 안 되고 유행 패션과 컬러 등 트렌드를 파악해야 하기 때문에 패션디자이너, 자동차디자이너, 심지어 전문의들까지도 상품기획 과정에서 만나는 대상이 된다고 했다.

그는 삼성전자의 경쟁력으로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분위기’를 꼽았다. 제품기획과 개발과정에서 불가능해 보이는 기능을 과감하게 집어넣는 것이다. 그 예로 지난 6월 출시한 ‘갤럭시S4 액티브’를 꼽았다. 이 제품은 스마트폰임에도 수심 1m 물속에서도 30분가량 견뎌내는 제품이다. “그간 방수되는 피처폰이 나온 적은 있었지만 방수되는 스마트폰은 이 제품이 처음”이란 것이 그의 설명이다.

방수 스마트폰은 윤 전무가 사내에서 최초로 제안한 제품이다. 개발비만 많이 들고 불가능해 보일 것 같은 방수 스마트폰을 만들어보자는 도전을 삼성전자는 흔쾌히 받아들였다고 한다. 이를 통해 여름철 해수욕장에 빠뜨려도 안심이 되는 방수 스마트폰이 탄생할 수 있었다. 그는 “혁신을 위한 혁신은 안 된다”며 “의미 있는 혁신, 진정성 있는 혁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과거와 달리 업계 리더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할 부분이 많아졌다”는 것이 그의 말이다. 애플마저 제치고 모바일 시장의 1등이 되면서 과거의 ‘빠른 추격자(패스트 팔로어)’ 전략을 쓸 수 없는 것. 무선사업부 내에서도 패스트 팔로어 전략은 없다는 것이 당연시된다고 했다. 그에 따르면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상품전략팀에서는 갤럭시S5와 갤럭시노트4 등 차기작 상품개발에 이미 착수한 상태다. 단 차기작의 상품 콘셉트에 대해서는 철저한 함구와 웃음으로만 일관했다. 윤한길 전무는 “상품기획은 그 다음 세대, 그 다음다음 세대를 미리 걱정해야 한다”며 “경쟁이 치열한 모바일 세상에서 살아 남으려면 먼저 생각하고, 먼저 움직여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