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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헌신을 동시에 받아라

신오덕 2014. 8. 11. 11:28

 

[매경춘추] 사랑의 혁명
기사입력 2014.08.08 16:15:10 | 최종수정 2014.08.08 20: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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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프란치스코 교황 덕에 덩달아 즐겁다. 교황 관련 책의 저자라는 이유로 인터뷰도 참 많이 했다. 받은 질문 중 대표적인 것이 "교황의 핵심 메시지는 무엇입니까?"였다. 묻는 이의 눈높이에 맞춰 나름 충실하게 답변을 해 주지만, 사실 이 물음은 나에게도 여전히 정리되지 않은 물음일 뿐이다.

정녕 프란치스코 교황의 핵심 사상은 무엇일까? 이렇게 새삼 물음을 던져보니 얼른 떠오르는 것이 교황께서 제창한 `사랑의 혁명`이다. 혁명이라는 말은 함부로 남발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사랑의 혁명`이라고 이야기한 것은 자본주의, 신자본주의 등 세계적인 흐름이 양산한 희생자들과 낙오자들을 대상으로 한 말이다.

그런데 `사랑의 혁명`을 이루기 위해서는 그것이 가능하도록 만들어주는 대전제가 있다. 바로 사랑의 대상에 내재된 존귀함과 아름다움을 보는 `눈`이다. 교황은 이에 대해 핵심을 관통한 언급을 한다.

"진정한 사랑은 언제나 관상적입니다. 이 사랑에 힘입어, 우리는 다른 이들을 필요나 허영심에서가 아니라 그들이 겉모습과 상관없이 아름답기 때문에 섬길 수 있습니다."(복음의 기쁨 199항)

여기서 `관상`(contemplatio)이란 볼 관(觀), 생각 상(想), 글자 그대로 `생각으로 바라본다`는 뜻을 지닌다. 쉽게 말해 `지긋이 바라보는 것`이다. 실로 자신 앞에 선 대상을 심미안으로 황홀히 응시할 때, 누구든지 상대의 숨겨진 아름다움과 선함에 몰입하는 관상의 경지에 들게 된다.

어떤 과정으로든 관상의 문턱을 넘게 되면 `겉모습`이 아닌 `내면`의 아름다움에 눈뜨게 된다. 그리하여 다음과 같은 귀결이 이루어진다.

"외양이 어떠하든, 모든 사람은 지극히 거룩하고 우리 사랑과 헌신을 받아 마땅합니다."(복음의 기쁨 274항)

의무감에서 하는 선행, 오래 못 간다. 관상적 사랑에서 나온 선행, 다함이 없다. 그리하여 교황의 사랑 리스트는 온갖 소중한 이름들로 빼곡하다. 노숙자, 중독자, 난민, 토착민, 점점 더 소외되고 버림받는 노인들, 이민자들, 인신매매 피해자들, 우리 사회 새로운 형태의 노예들, 무죄한 태아, 그 밖의 모든 창조물….(복음의 기쁨 210-213항)

사랑의 혁명은 특별한 이들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모두가 그 주역으로 초대받았다. 누구 하나 예외가 없다.

[차동엽 신부ㆍ미래사목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