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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후 무엇을 먹고 살 것인가를 고민하라

신오덕 2014. 9. 3. 11:43

 

[매경포럼] 대통령과 재벌 총수
기사입력 2014.09.01 17:28:07 | 최종수정 2014.09.02 15:2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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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때 일이다.

경제정책에 관한 한 곧잘 좌회전 깜빡이 넣고 우회전 하기를 즐겼던 실용주의자 대통령에게 한 기업인 출신 참모가 은밀히 조언했다.

5대 그룹 총수들과 일대일로 만나라는 것이었다. 만나서 딱 3가지씩만 물어보라고 했다.

첫째, 현재 그룹의 주력제품이 무엇인가. 둘째, 그 제품으로 몇 년 동안 버틸 수 있는가. 셋째, 그 다음에는 무엇으로 먹고 살 것인가.

"총수들은 의심이 많다. 다른 총수가 있는 자리에서는 절대 속내를 털어놓지 않는다. 정 껄끄러우면 비서실장이나 경제수석을 배석시키면 된다. 염두에 둔 차세대 신성장 산업이 있다면 총력 지원하겠다고 약속하라. 그러면 총수들은 청와대 빠져나오는 차 안에서 바로 사장단회의를 소집할 것이다. 장관들 말은 안 들어도 대통령 말은 듣는다. 그게 대한민국 대기업의 생리다."

벤처, 중소기업 다 좋지만 수 조원대 투자를 실행하고 원하는 결실이 나올 때까지 10년, 20년 버텨낼 뚝심과 여력은 5대 그룹 외에는 없다는 현실론에 기초한 조언이었다.

당시는 조선, 중공업, 석유화학, 자동차, 철강, 전기·전자·반도체 등 대한민국 주력산업 대부분에서 `유효기간 만료`의 경고 불빛이 깜빡 거릴 때였다. 중국의 발빠른 추격 탓에 박정희, 정주영, 이병철 시대가 일군 신화의 끝이 보이고 있었다. 10년 후, 20년 후 대한민국을 이끌 신성장 동력, 차세대 먹거리의 발굴이 시급하다는 논의는 무성했으나 결과는 빈약했다. 정부는 박정희 시대에 대한 `동경`과 `트라우마`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했다.

결론적으로 노 대통령과 5대 그룹 총수 간 일대일 회동은 성사되지 않았다. 경제적 실익 보다 정치적 고려가 우선이었던 탓도 있고 정부 주도 산업 성장이라는 게 시대착오적 발상이라며 눈살을 찌푸리는 이도 적지 않았다.

역사에 가정법은 없지만 10년 전 그때 대통령이 총수들과 허심탄회 국가 경제의 장래, 한국 제조업의 미래를 논의했다면 어땠을까. 그 결과 한 두개 그룹이 한 두개 분야만이라도 전심전력 키웠다면 어땠을까.

2004년 한국 1만5921달러, 홍콩 2만4928달러, 싱가포르 2만7404달러 였던 1인당 국민소득이 딱 10년 후인 2013년에는 한국 2만5977달러, 홍콩 3만8123달러, 싱가포르 5만5182달러로 터무니없이 벌어졌으니 하는 말이다. 아시아 4룡 가운데 누구는 용이 되어 승천했는데 누구는 영락없는 이무기 신세다.

요즘 삼성전자가 중국 샤오미에 덜미를 잡혔다며 한국경제 위기론이 비등하다. 철강, 석유화학은 중국의 대공세에 무너진 지 오래고 조선, 중공업도 백척간두다. 자동차와 전자까지 위태로워지면서 한국 제조업에 `퍼펙트 스톰`이 닥쳤다는 불안감이 팽배하다.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극복법으로 경제살리기를 내걸었다. 안전 국가도, 선진 국가도 결국은 경제가 뒷받침돼야 가능하니 틀린 선택지는 아니다.

그런데 경제를 살리겠다, 투자가 중요하다면서도 정작 대기업그룹만 백안시하는 듯 하다. 지난 해 8월 10대그룹 총수와 청와대 오찬 이후 도통 교류가 없다. 대기업그룹들도 분위기가 싸늘하다. 정부가 이 정도 `경제 올인`하면 지금쯤 재계 차원에서 `투자 늘리겠다`, `경제 살리기 동참하겠다` 정도의 추임새가 나올 법도 한데 이제는 빈말 조차 하기 싫은가 보다. 일주일이 멀다하고 재계 총수들과 만나 조언을 구한다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극히 대조적이다.

하기야 삼성, 현대차, SK, LG, 롯데의 5대 그룹 중에 1위 총수는 병실에, 3위 총수는 감옥에 있고 5위 총수는 93세 초고령이다. 만나려고 해도 만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시간도 없다.

스타트업, 벤처, 중소기업, 중견기업도 중요하지만 한국 경제는 대기업이 움직여야 비로소 화룡점정이다. 대기업을 한쪽으로 제쳐둔 채 절대 지금 위기를 돌파할 수 없다.

이건희 삼성 회장은 "삼성 정도 규모면 이미 나라와 한 배를 탄 거다. 나라가 잘돼야 삼성도 잘 된다"고 했다. 다른 그룹들이라고 생각이 다르겠는가.

박근혜 대통령은 구글의 래리 페이지도 만나고 알리바바의 마윈 회장도 만났다. 이제는 5대그룹, 10대그룹 총수들과도 만날 때다. 이제라도 만나서 10년 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준비했던 3가지 질문을 던지고 같이 해법을 모색해보기 바란다.

[채경옥 논설위원]